독일 미술가 안드레 부처를 두아르트 스퀘이라 갤러리에서 만났다.
컬렉터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사랑스러우면서도 강렬한 작품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그에게 직접 들어보자.
안드레 부처 Andre Butzer의 작품은 왜 인기가 있을까?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지만, 보면 볼수록 매혹적인 그의 작품은 지금 전 세계 네 곳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을 정도로 관심받고 있다. 마드리드의 국립 티센 보네미자 미술관, 슈반도르프의 케벨빌라 오버펠더 쿤스틀러하우스, 베를린의 살롱 달만, 브라가의 두아르트 스퀘이라 갤러리 Duarte Sequeira에서 동시에 그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안드레 부처는 그의 모든 전시 기획을 큐레이터에게 일임하는 작가는 아니다. 그의 개인전은 언제나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지만 그는 직접 전시를 준비한다. 작업 과정에서 발현하는 감각을 본능적으로 전시에 반영하는 것이다. “마드리드의 미술관 전시는 지난 25년간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회고전입니다. 반면에 슈반도르프의 미술관 전시는 그간 항상 생각해왔던 그림이 없는 전시예요. 이렇게 물리적 역사와 정신의 변화를 보여주는 두 개의 전시가 합쳐져 미술가로서의 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1999년 비엔나의 갤러리 에스더 프랜드에서 열렸던 첫 번째 개인전의 제목 <나는 뭉크이다 Ich bin Munch>가 힌트가 될 것이다. 절규하는 그림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미술가 뭉크와 자신을 동일시한 도발적인 제목은 그의 작품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미술사의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었고, 뭉크뿐 아니라 세잔, 마티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월트 디즈니 등의 선배 작가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윤회와 같다. 마드리드의 미술관은 영리하게도 그의 전시장으로 가는 길목인 상설 전시관에 뭉크 그림을 걸어 회고전을 더욱 빛나게 했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미술 애호가로 미술사에서 영감을 받고 있으며, 현대인을 둘러싼 역사와 정치, 대중문화와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외계인 같은 귀여운 캐릭터들에 대해 물었다. 예를 들어, 별 모양의 얼굴에 이빨이 귀여운 원더러 Wanderer는 뭉크와 독일 SS에서 비롯된 인물이며, 눈이 보이지 않는다. 월트 디즈니처럼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지만, 그는 캐릭터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림 속 캐릭터가 아니라 그림에 관심이 있습니다.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릴 뿐입니다. 어딘가에서 보았던 어떤 것에서 영향받기는 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은 아닙니다. 물론 작품 속 캐릭터들에는 이름과 특징이 있었지만, 이미 내 안에 들어와 그려진 그림에 대해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에 대해 여러분에게 잘 말할 수 있다면, 아마 그림을 안 그렸을 것 같아요.”
두아르트 스퀘이라 갤러리 전시의 특징은 처음 선보이는 컬러 필드 연작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형형색색의 비가 내리는 듯한 이 아름다운 연작은 강렬한 붓 터치나 캐릭터 없이 전시장을 서정적으로 물들였다. “이 새로운 연작은 오래전 종이에 그렸던 수채화 작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때 많은 이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리라고 조언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자연스럽게 때가 되어서 캔버스에 그린 스트로크 작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인 폴 세잔으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인지, 당시에는 컬러 블록을 독립적으로 그리는 작업을 했었다. 그림은 점점 검게 변해서 블랙 페인팅 연작에 이르렀고,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흰 바탕의 컬러 스트로크 연작은 안드레 부처 작품 세계 안의 요소가 서로 교류하는 듯한 느낌이다. 단순한 컬러와 붓 터치이지만, 그의 모든 작품의 DNA를 추출한 것 같은 존재감이 매력적이다. 또한 이 작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는 세상 모든 것을 파장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동석한 미술 사학자 크리스티안 말리차 Christian Malycha는 안드레 부처에 대해 현대인이 삶의 지상과 천국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탐구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그는 어떻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고뇌하는 작가입니다. 인간과 사회, 팝아트와 예술사의 개별성과 연속성을 캔버스에 펼쳐놓는 것이 바로 그의 작업이지요.”
유머러스하면서도 엽기적인 그의 작품에 이러한 고민이 들어 있다니 재미있다. 또한 그는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일 작가답게 ‘SF 표현주의’라는 사조로 자신을 설명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단색화와 연결되는 부분도 있다. “SF 표현주의는 내가 오래전 조합한 단어입니다. 독일 표현주의가 구식이 되어버렸기에, 이를 다시 한번 매혹적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표현주의의 과거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 SF와 조합한 것이지요. 표현주의는 삶의 원천이자 열쇠입니다. 단순한 미술 사조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표현이며, 요즘과 같은 AI 시대에는 더욱 표현이 중요합니다.”
SF 표현주의는 1920년대의 미술 사조에 멈추어 있지 않고, 반복의 고리를 뚫고 들어가서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반복적으로 비슷한 작품을 찍어내는 팝아트가 아니라, 단색화와 같은 종교적 수행의 반복이다. 예를 들어, 블랙 페인팅 연작은 검은색을 반복적으로 칠해서 완성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저 블랙 회화로 보일 뿐인 것. 안드레 부처는 거대한 작품 스케일로도 알려져 있다. 두아르트 스퀘이라 갤러리에서의 전시에서도 4m의 거대한 작품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는 크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큰 캔버스가 앞에 있으면 크게 그리는 것일 뿐 큰 작품을 그리려고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작품은 관람객을 포용하는 느낌이 있다면, 작은 작품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회사가 아니라 가정에 그의 그림을 걸기 위해서는 공간이 커야 하기 때문에, 작품 크기에 관심을 가진 수집가들이 많다. “나는 그림이 삶의 원천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인생이 그림으로 표현된다기보다는, 그림이 삶을 일으킨다는 것이죠. 항상 빛처럼 말입니다.” 안드레 부처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그에게 자연스럽게 들어왔다고 했다. 대리석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형상을 드러냈다고 하는 미켈란젤로의 명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세계의 미술 애호가들이 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 흥미로운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