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에 씨마크 호텔을 이어 새로운 랜드마크가 등장했다. ‘백색 건축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 미학을 계승할 마이어 파트너스에서 건축을 맡은 솔올미술관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는 자연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건축물과 백색의 미학을 담은 건축 철학으로 순수하면서도 미니멀한 공간을 선보여왔다. 그의 건축 스튜디오인 ‘리처드 마이어 앤 파트너스 아키텍츠 Richard Meier & Partners Architects’는 2021년 그가 은퇴하며 마이어 파트너스 Meier Partners로 사명을 바꾸며 새 출발을 했다. 리처드 마이어의 백색 건축 미학을 이어갈 파트너들이 모여 처음으로 선보인 프로젝트가 바로 지난 2월 강릉에 개관한 솔올미술관이다. 리처드 마이어와 30년 세월을 함께한 한국계 미국 건축가 연덕호 파트너가 수석디자이너이며, 그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총감독을 맡았다. 새하얀 콘크리트 외관에 투명한 유리가 어우러져 마이어만의 건축 언어를 고스란히 녹여냈다.
특히 솔올미술관은 한국 미술과 세계 미술을 연결하는 미술관을 지향하는데, 세계적인 거장과 한국 작가를 동시에 조명할 계획이다. 두 기획 전시가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도록 순환하는 동선을 고려한 것이 특징. 더욱이 백색은 모든 작품을 포용하는 중립적인 배경이 되며 예술을 위한 담론의 장을 펼친다. 현재 개관전으로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 Lucio Fontana의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 그리고 그의 공간주의 맥락을 같이하는 곽인식 작가의 전시 <In Dialog : 곽인식>을 4월 14일까지 선보인다.
ADD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원대로 45
INTERVIEW
마이어 파트너스 수석디자이너 연덕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앤 파트너스 아키텍츠’에서 30년간 일하셨는데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30여 년 전, 나는 커리어를 막 시작한 젊은 대학졸업생이었습니다. 열정이 넘치며 에너지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무수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죠.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은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건축가로서 그 경험은 다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 길을 걸어온 것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 스튜디오의 목적은 사용자에게 의미 있는 영향력과 영감을 주고, 환경에 기여하며, 영원히 기억에 남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하는 스튜디오에서 전 세계의 멋진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죠. 또한 최고의 클라이언트,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배울 수 있는 특권을 누려왔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씨마크 호텔에 이어 공교롭게도 강릉에서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솔올미술관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씨마크 호텔은 한국에서 진행하는 첫 프로젝트였고, 두 번째 프로젝트인 솔올미술관 역시 같은 강릉 지역입니다. 씨마크 호텔의 명성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솔올미술관의 경우 프로젝트 매니저 및 시니어 어소시에이트 Senior Associate인 오사라 Sharon Oh 건축가를 통해 설계 의뢰를 받아 함께 디자인했습니다.
솔올미술관은 설계할 때 어떤 점을 중요시했나요?
미술관이라는 건물의 성격, 대지의 특성과 입지 등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꼼꼼히 살펴서 솔루션을 찾아 설계해야 합니다. 특히 솔올미술관은 한국 미술을 조명하는 전시실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고려해 조용하고 서정적이면서 예술을 돋보이게 하는 건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도 영감을 얻으셨다고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변화하는 자연과의 관계성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더불어 한국의 추상 미니멀리즘 예술의 선구자들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한국 작가를 위한 전시도 열리는 만큼, 유교 영향을 받은 미술 작품이 전시될 가능성도 고려된 사항 중 하나였죠. 그래서 한옥 건축의 특성을 반영해 설계 했습니다. 중앙 마당을 건축물 세 동으로 감싸듯 설계한 이유입니다. 미술관 입구부터 투명한 유리로 마감해 안이 다 보입니다. 뒤쪽 마당까지 보이죠. 입구에서부터 마당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고, 미술관에 들어서면서 안과 밖의 경계가 흐려지게 됩니다.
이 대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상이 궁금합니다.
처음 사이트에 방문했을 때는 소나무가 많은 언덕이었습니다. 해발 62m으로 교동공원에서 가장 높은 장소입니다. 건물 위 전망대에 오르면 저 멀리 강릉 바다와 함께 우리가 작업한 씨마크 호텔도 보입니다.(웃음) 전망 좋은 언덕인 대지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특별한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꽤 높은 부지에 위치해서 그런지, 도심에서는 미술관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덕을 올라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는데, 의도한 요소인가요?
도심 속에서 미술관이 명확히 노출된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미술관으로 향하는 여정을 즐기기 바랐습니다. 주변 경관이나 자연에 의해 숨겨져 있다가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이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미술관이 위치한 언덕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미술관 전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경험이 미술관을 맞이했을 때 감동을 배가시킵니다.
‘솔올’이라는 이름도 직접 제안하셨다고요.
솔올이라는 이름은 미술관이 자리한 지역의 옛 이름으로,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솔올미술관 터에도 소나무가 많았고, 그 풍경에 깊은 인상을 받았죠. 그래서 미술관 이름을 솔올이라 먼저 제안했습니다.
입구에서 로비와 전시실, 마당까지 전시 동선이 자연스레 연결되면서 ‘순환하는 미술관’이라고 느꼈습니다.
미술관 내부 동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명암입니다. 각 구역의 명암 차이는 미술관을 좀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현재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루치오 폰타나> 전시 공간은 굉장히 어둡습니다. 작품에 맞게끔 설정된 상태인데, 전시실에서 나오면 아주 밝아집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이동하면서 동시에 유리창 너머의 바깥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자연광을 세심히 신경 쓰는 스튜디오답게, 솔올미술관 역시 따스한 빛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빛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건물에 숨을 불어넣습니다. 우리가 건축에 자주 사용하는 흰색이 이 미술관에도 쓰였습니다. 햇빛이 이 흰색 미술관의 인상을 크게 바꿉니다. 흐린 날이 개면서 환한 빛이 들어오고, 건물 색감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됩니다.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의 감정도 달라집니다.
내년 계획에 대해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까요?
현재 한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키움 파이낸스 스퀘어와 경기도 광주의 어린이 꿈자람센터입니다. 키움 파이낸스 스퀘어는 특별한 오피스 프로젝트인데, 유연하면서 효율적인 업무공간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어린이 꿈자람센터는 아이들의 종합학습 시설로, 건축물 내부와 외부 공간이 주변 자연경관과 상호작용을 이루고자 한 프로젝트입니다. 솔올미술관과 비슷하게 건물이 구릉지에 배치되어, 곡선 형태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역동적인 건축물입니다.
자료제공: 솔올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