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거 르쿨트르 랑데부 컬렉션
1833년 창립 이래 예거 르쿨트르는 기술적 정교함과 예술성의 표본이 되는 컬렉션을 발표해왔다. 리베르소, 마스터, 랑데부, 듀오미터, 지오피직, 애트모스 등 그 이름만으로 시계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컬렉션은 스위스 파인 워치 메이킹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여성 시계로 찬사 받는 랑데부 컬렉션은 다이얼 주위를 천천히 회전하는 북반구의 별자리와 황도 12궁, 눈부신 광채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베젤, 기요셰 패턴 위의 리듬감 있는 숫자 인덱스, 중요한 약속 시간을 다이얼 위에 표시할 수 있는 두 개의 크라운으로 시계에 무관심하던 여성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버버리 트렌치코트
군인들이 몸을 숨기는 참호 Trenches에서 이름을 딴 트렌치코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장교를 위해 만들어졌다. 총이나 망원경을 고정할 수 있는 어깨 견장, 물병과 야전 삽을 걸 수 있는 허리띠 고리, 지도를 넣기 위한 커다란 안주머니, 비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슴과 등 부분에 안장을 얹듯 묵직하게 덧댄 천 같은 디테일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트렌치코트의 핵심 디자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트렌치코트는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의상이 되었다. 중요한 역할을 맡은 탐정이나 스파이들은 코트의 칼라 깃을 세우고, 허리띠를 동여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트렌치코트에는 영웅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그러나 트렌치코트가 오랜 시간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결정적 이유를 꼽는다면, 이 옷이 지닌 기능성과 정장에서부터 청바지까지 모든 의상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패션 아이템으로써의 가치 때문일 것이다.
부쉐론 플륌 드 펑 컬렉션
1858년 파리 팔레루얄에 첫 부티크를 오픈한 부쉐론은 전 세계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중심지인 파리 방돔 광장에 매장을 연 최초의 컨템포러리 주얼러였다. 1866년, 프레데릭 부쉐론과 아틀리에 책임자였던 파울 르그랑은 공작새 깃털의 그래픽적 구조와 우아함에 매료되어 퀘스천마크 네크리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1883년 드디어 그 유명한 퀘스천마크 네크리스를 완성하면서 이 물음표 모양 목걸이는 부쉐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혁신적 주얼리 디자인의 표본이 되었다. 이후 부쉐론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공작새 깃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정기적으로 선보이고 있는데, 플륌 드 펑 컬렉션은 1883년에 제작된 오리지널 작품에 바치는 찬사이자, 각각의 깃털이 가볍게 바람에 날리듯 정교하게 세공한 목걸이와 귀고리는 부쉐론만의 기술을 한눈에 보여주는 걸작이다.
에르메스 스카프 까레
1937년, 에르메스의 4대 회장인 로베르 뒤마는 군인들이 지령이나 지도를 프린트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를 여성복에 응용하고 싶어졌다. 그는 곧 유명한 실크 기술공들이 많은 리옹 지역으로 가서 가로, 세로 90cm 정사각형의 여성용 실크 스카프를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에르메스의 실크 스카프 ‘까레’다. 까레는 프랑스어로 정사각형을 뜻하는데, 이름처럼 정사각형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에르메스의 첫 번째 까레는 1937년 마들렌과 바스티유 간 버스 노선 개통을 기념하여 만든 쥬 드 옴니버스 에 담므 블랑셰 스카프였고, 이후 매 시즌마다 여섯 가지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 지금까지 900가지가 넘는 디자인을 발표했다. 에르메스는 동물과 사물 등 다양한 모티프를 접목시켜 스카프를 예술적 아이템으로 승격시켰고, 패션 액세서리를 넘어 작품처럼 액자에 넣어 수집하는 마니아층까지 거느리게 되었다.
리바이스 501 블루진
1873년,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젊은 상인 리바이 스트로스는 금광을 캐는 노동자들을 위한 작업복을 생산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언젠가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입는 의상이 되리라고는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거칠고 다루기 힘든 캔버스를, 나중엔 프랑스 님 Nimes 지방에서 수입한 세르쥐 데 님(미국에서는 이 직물을 ‘데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이라는 소재로 생산한 이 바지는 처음부터 대성공을 거두었다. 데님이 파란색을 띠게 된 이유는 당시 인디고 남색으로 염색하는 비용이 저렴했던 데다 색깔도 오래 지속됐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블루진은 오랫동안 노동자나 모험가, 카우보이들의 의상에 국한되었다가 1950년대에 제인스 딘이 몸에 꼭 끼는 진을 입고서 영화 <에덴의 동쪽>과 <이유 없는 반항>에 출연하면서 젊은이의 반항을 상징하는 의상이 되었다. 140여 년 전 내구성이 뛰어난 작업복으로 시작된 옷이 이제는 모든 사람이 즐겨 입는 옷으로 진화한 것이다.
컨버스 올스타
기능 면에 있어서 현대 스포츠 신발의 선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컨버스 올스타는 100년에걸쳐 스니커즈의 아이콘이 되었다. 농구 선수를 위한 스포츠 슈즈로 개발했던 이 신발은 바닥이 갈색 고무로 되어 있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길이에 끈을 매어 신는 질긴 캔버스 소재의 신발로 탄생했는데, 이 디자인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17년, 컨버스는 유명 스타에게 협찬하면 판매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일찍이 알아차렸다. 그래서 전설적인 농구 선수 척 테일러에게 이 운동화를 협찬하면서 그의 사인을 올스타 마크 안에 넣었고, 척 테일러는 중요 경기마다 이 신발을 신으면서 컨버스 올스타는 기능성 스포츠화로 인기를 얻게 된다. 미국의 10대들이 컨버스 올스타를 운동화가 아닌 캐주얼 슈즈로 신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였으며, 1990년대에 마돈나와 같은 팝스타들이 컨버스를 신고 뮤직비디오를 찍고, 뉴욕의 힙스터들이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컨버스를 신으면서 올스타는 비약적 인기를 얻으며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이 되었다.
생로랑 르 스모킹
1889년은 스모킹 룩이 태어난 해다. ‘담배를 피우기 위한’을 뜻하는 르 스모킹은 신사들이 저녁식사 후에 모이는 흡연 살롱에서 시작되었다. 클래식한 스모킹 룩은 깃을 실크로 장식한 재킷에 넓은 공단 밴드로 옆 봉합선을 덧대 장식한 바지를 매치한 것이다. 거기에 스탠드 칼라나 턴다운 칼라의 스모킹 셔츠와 블랙 타이라 불리는 검은색 나비넥타이를 함께 착용했다. 남자들의 패션이던 스모킹 룩을 여성에게 입힌 건 바로 천재적인 디자이너 이브생 로랑이었다. 1965년, 이브 생 로랑은 여성을 위한 르 스모킹 턱시도를 선보였으며, 이 의상은 마지막 남은 남성들의 영역을 정복한 패션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생로랑의 르 스모킹 턱시도는 이브생로랑 하우스의 역사와 전통적인 테일러드 스타일을 보여주는 유산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생로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왔으며, 매 시즌 새롭게 재해석되어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펜디 바게트백
바게트백은 전 세계 가방 트렌드가 오버사이즈 백이었던 1997년에 탄생했다.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실비아 벤추리니는 대세를 거스르며 겨드랑이에 꽉 끼는 작은 바게트백을 만들어 예상을 깬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냈다. 바게트빵처럼 옆구리에 낄 수 있다는 뜻에서 바게트백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 핸드백은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들이 애용하면서 전 세계 패션 인플루언서들의 필수품으로 등극했다. 40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꾸준히 선보이는 바게트백은 판매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60만 개가 넘는 제품이 팔렸고, 지금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