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험이든 의미 있는 첫 번째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억의 남은 첫 번째 리빙 아이템을 소개한다.
스타일리스트 고은선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때 당시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베르너 팬톤의 ‘플라워 팟 조명’이에요. 오랜 시간 스타일리스트 일을 하다가 한 회사에 소속된 때였죠. 회사에 입사하고 나니 여러 가지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때 밝은 오렌지 컬러와 둥글둥글한 디자인의 플라워 팟 조명을 보며 위로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전구가 돔에 반사되어 은은한 빛을 내는데 밤에 켜두고 있으면 몸과 마음에 안정을 줬거든요. 저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조명이랍니다.
<긱>편집장 이은석
그릇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도쿄에서 열린 ‘수퍼정크쇼’를 보았던10년 전부터예요. 그 뒤로 주말마다 황학동에 들락거리며 그릇을 사모았죠. 새 물건보다는 누군가의 손을 거친 물건에 흥미를 느꼈어요. 그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 재미있거든요. 최근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자주 보는데 멜리타 사의 6인용 커피잔 세트도 그렇게 먼 독일에서 제게 왔어요. 원두를 비롯해 커피 도구를 파는 멜리타 사에서 기념품이나 이벤트용으로 제작한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기하학적인 무늬와 정교하지 않은 프린트의 투박함이 마음에 들어요. 아내도 좋아하는 이 세트는 커피와 우유를 담는 저그 2개, 프림통, 컵과 소서, 개인 접시 6개 등으로 구성되는데 21개의 그릇을 불과 10만원에 구입했으니 더 정이 갈 수밖에요.
포토그래퍼 임태준
인테리어 포토그래퍼로서 많은 가구를 보며 디자인 의자를 모아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구입하게 된 첫 번째 디자인 의자가 바로 톤 사의 ‘토넷 체어’예요. 앉았을 때 착석감도 좋았고 구부러진 나무로 이뤄진 등받이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죠. 밝은 오크색으로 4개를 구입했는데 어린아이가 두 명 있는 집이라 무게가 가볍다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주었죠. 6년 동안 우리 집 식탁 의자로 활약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수향 대표 김수향
저의 첫 번째 리빙 아이템은 비슬리의 철제 서랍장입니다. 평소 구획을 나눠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서랍이 여러 개로 나눠진 비슬리의 철제 서랍장에 첫눈에 반했지요. 색상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요. 처음 구입한 비슬리 서랍장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데, 맨 위 서랍은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지갑만 넣는 칸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미신인데 서랍 한 곳을 지갑의 전용 공간으로 남겨두면 그 서랍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돈이 생긴다고 하네요.
자그마치 김재원 대표
돈을 모아 디자이너나 브랜드의 리빙 제품을 사기 시작했던 것은 대학생 때였어요. 런던에서 대학교를 다녔기에 좋은 브랜드와 디자이너 제품을 자주 접할 수 있었죠. 가장 처음 관심을 가지고 구매했던 브랜드는 비트라였어요. 프라이빗 세일 기간엔 런던 비트라 매장 앞에서 밤을 새우며 줄을 섰던 기억도 있습니다. 조지 넬슨이 디자인한 ‘나이트 클락’ 역시 비트라 제품이에요. 이름도 마음에 들었고 1949년에 디자인된 제품이지만 모던하고 황동 소재의 시크함과 볼록한 디자인이 귀엽기도 하고요. 책상 위에 두었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오블리크 플라워 김영신
공학도였던 대학 시절 우연히 한가람미술관에서 <드로흐 디자인 Droog Design> 전시를 보았어요. 그 이후 수학과 공학보다는 더치 디자인과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에 빠져들게 되었죠. 좀처럼 네덜란드에 갈 기회가 없었는데, 작년 겨울 드디어 네덜란드를 방문할 시간이 생겼고, 암스테르담의 ‘Droog Design’을 방문했답니다. 수많은 디자인 제품 중 저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고전적인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스 촛대였어요. 평소 작업실에 두고 사용하면서 네덜란드를 여행했던 추억을 되새기곤 합니다.
팔린드롬 그래픽디자이너 남무현
작업실을 새로 오픈하고 방문하는 손님이 많아졌어요. 손님이 앉을 의자와 테이블 등을 찾던 중 이베이에 올라온 ‘카스텔리’의 ‘플라톤 데스크’과 ‘플리아 체어’를 좋은 가격에 낙찰 받았습니다. 평소 지안카를로 피에티의 디자인을 좋아해 의자를 하나 갖고 있는데 그 의자와도 잘 어울리고, 작업실 분위기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러워요. 평소에는 간단한 그래픽 작업을 하는 용도로 사용하지만, 손님이 방문하면 테라스로 옮겨 아웃도어 테이블로도 활용하고 있어요. 접이식이라 이동이 편리하거든요. 지안카를로 피에티의 제품을 하나씩 구입해서 작업실을 꾸밀 계획이에요.
태오양스튜디오 양태오
어릴 때부터 장난감이나 인형보다는 각 나라의 토속품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버지가 출장을 가실 때면 항상 토속품을 사달라고 요청하곤 했죠. 어처구니라고도 불리는 이 답상은 중학교 때 어머니와 인사동에서 구입했어요. 답상은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 형상이 대부분인데, 이 답상은 사오정 형상을 하고 있어 더욱 특별해 보였거든요. 아파트, 빌라 등 이사를 다니다 최근 한옥에 스튜디오를 구해 처마에 올려두었답니다. 저보다 오래 산 물건은 자신의 의지와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마치 답상이 이곳을 위해 오랜 시간 흘러온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도 여기에 두고 갈 생각입니다.
밀라노 디자인 빌리지 이지은
‘리델 블랙 타이 보르도’는 아찔한 블랙 크리스털 스템이 특징인 보르도 와인 전용 와인잔이에요. 소믈리에 버건디 그랑크뤼의 50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블랙 타이 시리즈 중 하나로 뉴욕 현대미술관에도 영구 소장돼 있는 모델이지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는 섹시하고 날렵한 실루엣과 그저 그런 와인마저도 나름의 향과 맛을 가장 이상적으로 끌어올리는 마법의 와인잔입니다. 와인을 즐기는 나를 위한 호사랍니다.
포스트포에틱스 조완
코끼리 저금통인 ‘드럼보 Drumbo’는 1970년 드레스덴 은행을 위해 루이지 콜라니가 디자인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어린이들의 저축하는 습관을 장려하기 위해 나눠준 플라스틱 저금통을 도자기로 만든 것이지요. 20대 초반 동경의 빈티지 매장에서 처음 보고 마음에 들었지만 당시에는 비싸서 구입하지 못했어요. 그 후 독일 이베이에 매우 저렴한 가격에 올라온 것을 보고 구입했어요. 최근 취향이 바뀌어 아기자기한 물건에 손이 가지 않아 상자 안에 넣어두었는데 가끔 이런저런 촬영 소품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