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티니 CEO인 다니엘라 판티니가 서울을 찾았다. 김백선과 협업한 수전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기업인이기 전에 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지닌 그녀에게서 물의 포용력을 느낄 수 있었다.
판티니 CEO 다니엘라 판티니
세계적인 수전 브랜드, 판티니
이탈리아 수전 브랜드 판티니 Fantini는 1947년에 설립된 회사로 피에몬테 산맥 사이에 위치한 작은 호수인 오르타 호숫가의 펠라 지역에 본사가 있다. 깨끗한 호수를 곁에 둔 회사인 만큼 물과 회사의 역사가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티니는 1977년에 디자이너 페드리체티와 메르카탈리가 만든 ‘이 발로키 I Balocchi’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동글동글한 손잡이가 특징인 이 발로키는 판티니의 시그니처 아이템이 되었다. 그 외에도 피에로 리소니, 엔조 마리, 킹&미란다, 프랑코 사르지아니, 베네디니 어소치아티, 마테오 튠 등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해 최고급 수전 제품과 샤워 시스템을 선보였다. 판티니는 자연환경을 디자인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긴다. 물을 공급하는 제품을 만드는 이들은 ‘깨끗한’ 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100 폰타네’ 캠페인이라든지, ‘어바웃 워터’ 프로젝트 등을 추진했다. 특히 ‘100 폰타네’ 캠페인은 아프리카 브룬디 공화국의 마장고 지역에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는 캠페인으로 주민들에게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식수를 제공한다. 또 같은 이탈리아 브랜드인 보피 Boffi와 맺은 파트너십인 ‘어바웃 워터’는 두 회사가 고품질의 새로운 수도꼭지와 샤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로 모든 제품에 납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친환경적인 소재로 만들어 위생적이고 부식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판티니는 이탈리아 브랜드 특유의 장인정신과 고집스러움으로 수전 시스템을 만들고 있으며, 나아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소중함과 평등함을 널리 알리고 있다. 설립된 지 70주년이 되어가는 오래된 회사지만 물이 존재하는 한 판티니는 끊임없이 활발하게 성장해갈 것이다.
판티니의 아이콘인 ‘이 발로키’판티니의 CEO, 다니엘라 판티니 Daniela Fantini를 만나다
판티니는 어떤 점이 특별한 브랜드인가?
판티니의 DNA는 디자인에서 나온다. 아버지가 경영할 당시에는 ‘이 발로키’ 제품이 보여주듯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판티니는 최초로 수전에 컬러를 입힌 브랜드인데, 사실 브라스 소재에 컬러를 입히는 게 쉽지 않았기에 혁신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기술적인 측면 외에도 우리는 오르타 호수를 정말 사랑하고 언제나 그곳에서 영감을 받는다. 또 이탤리언 디자인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과 오래된 노하우, 기술력이 있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시그니처 디자인이기도 한 이 발로키는 어떤 제품인가?
이 발로키는 장난감을 뜻한다. 수전 가운데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컬러를 입힌 제품으로 판티니의 상징이 되었다. 핸들 모양을 보면 둥글둥글한 디자인이 캐주얼하고 귀엽다. 회사에 큰 성공을 안겨주었고, 무엇보다 이 발로키의 판매 수익금 일부가 ‘100 폰타네’ 캠페인의 기부금으로 쓰여 더욱 의미 있다.
판티니의 역사와 함께한 오르타 호수
펠라 지역에 위차한 판티니 본사
‘100 폰타네’ 캠페인으로 깨끗한 식수를 공급 받는 마장고 지역 아프리카 식수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포토그래퍼인 친구를 따라 브룬디에 갔을 때 물을 길어오기 위해 신발도 없이 하루에 3시간씩 대여섯 번을 우물과 집을 오가는 아이들을 봤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길어온 물이 깨끗하지 않아 말라리아 같은 병에 쉽게 걸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런 경험을 회사에 얘기했고 마장고 지역에 취수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100개의 취수원을 마련한다는 ‘100 폰타네’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만큼 보람도 컸을 것 같다.
아름다운 일화가 있다. 죽음을 앞둔 노인 한 분이 은행에 와서 자식이 없으니 생전에 모은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고, 은행에서 판티니의 아프리카 캠페인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재산 2만5000유로를 우리에게 기부했다. 판티니는 취수원뿐만 아니라 밭을 경작하는 방법을 알려줘 그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금까지 마장고에 130개의 취수원이 생겼고 2만5000명이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캠페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
많은 이들이 내 진심을 이해했고 자신이 지원한 돈으로 회사가 무엇을 했는지 투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 그들에게 보람과 자긍심을 갖게 해준 것 같다. 자신이 프로젝트의 진짜 일원이 됐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이탈리아 최대 출판사인 몬다도리 사와 피에로 리소니도 언론에 이 캠페인을 소개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몬다도리 사는 디자이너를 후원해 브룬디에 가서 생활 가구 만드는 법을 가츠쳐줬다.
학고재에서 진행된 김백선 디자이너와의 협업 전시이번에 서울을 찾은 이유는 김백선 디자이너와의 협업 전시 때문인가?
그렇다. 그가 초대했고 흔쾌히 서울에 왔다. 한국인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책을 보고 한눈에 반해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백선 디자이너도 작업을 하며 판티니 제품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서로 호감을 갖고 만났다. 모던하면서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이번 수전 컬렉션은 시적이면서도 정말 아름답다.
좋은 수전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물이 잘 나오는 것이 기본일 거다. (웃음) 납 같은 유해 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제품이어야 하고 만드는 과정도 친환경적일 것, 오랫동안 튼튼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좋은 수전이라고 생각한다. 대량생산이나 OEM보다는 공들여 제대로 만든 제품을 좋아한다.
기대할 만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호숫가 근처에 작은 호텔을 짓고 있다. 방이 11개뿐이라 집 한 채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텐데, 내년 초 오픈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 밀라노, 뉴욕 쇼룸의 건축가가 설계했고 실내는 피에로 리소니가 전체 디렉팅을 맡았으니 기대해도 좋다. 또 4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10가지 새로운 라인을 론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