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의 회장 클라우디오 루티가 서울을 찾았다. 이탈리아의 유명 리빙 브랜드 대표로서 카르텔을 이끌어온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디자이너와의 소통이다.
1 한국가구 카르텔 쇼룸을 찾은 클라우디오 루티 회장. 2 10년간 가장 잘 팔린 조명인 ‘부지’. 3 신제품 ‘피우마 암체어’. 피에로 리소니가 디자인한 것으로 약 3년간의 연구 끝에 2.4kg의 의자를 만들 수 있었다.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카르텔 Kartell은 1949년에 설립되었으며 그전에는 생활용품에 사용된 플라스틱을 활용해 가구와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왔다. 설립자 줄리오 카스텔리는 1988년에 클라우디오 루티 Claudio Luti에게 카르텔의 경영권을 넘겼다. 그 후 지금까지 카르텔의 수장으로 클라우디오 루티는 이탈리아 가구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고 세계적인 디자인 축제였던 2015년 밀라노 엑스포의 홍보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카르텔 회장이 되기 전 그는 패션 브랜드 지아니 베르사체 Gianni Versace의 설립 파트너였다. 패션 분야에 몸담고 있다가 가구 브랜드의 CEO 자리를 맡게 된 그의 경력이 특이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우려와 달리 클라우디오 루티는 가장 카르텔다운 디자인을 잘 알고 있으며 카르텔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카르텔은 특히 디자이너와 영민하게 협업하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디자이너 선정은 물론 제품 디자인과 공정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기로 유명하다. 회사 경영 못지않게 디자이너와의 협력 관계도 중요시한다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다. 이탈리아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은 강했지만 겸손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던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플라스틱이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서울을 찾은 이유는 무엇인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카르텔의 파트너와 대리점, 플래그십 스토어 등을 둘러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다. 처음 서울을 찾은 것은 베르사체에 있을 때인데, 서울 올림픽 전이었다. 지금의 서울 모습과 굉장히 달랐고 수입자율화가 되지 않아서 해외 브랜드도 거의 없었을 때였다. 한국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패션 쪽에서 일하다 카르텔을 맡게 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패션과 리빙은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패션과 리빙은 속도는 다르지만 큰 흐름은 비슷하다. 특히 밀라노에서는 많은 사람이 패션에 몸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리빙 쪽에도 관여하고 있다. 내게는 다른 두 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
브랜드를 이끌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회장으로서 단지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디자인을 함께 개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단발성으로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디자인 경력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왜 디자이너들이 카르텔과 협업하고 싶어할까? 나는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가져오길 바라지 않는다. 디자이너와 재료와 과정, 기능, 카르텔의 정체성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 필립 스탁과는 3주에 한 번씩 만나 아이디어를 공유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제품에 스토리가 담기길 바라는데, 디자이너들도 이런 점을 좋아하는 것 같다. 또 전 세계에 리테일숍이 많아서 제품이 하나만 출시돼도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다.
4 투명한 표면으로 빛을 화려하게 반사하는 ‘플래닛 조명’. 5,6 카르텔의 홈 프래그런스 라인. 7 체어와 포즈를 취한 클라우디오 루티 회장. 8 올해 처음 선보인 카르텔의 키즈 컬렉션.
카르텔 제품으로 인테리어를 할 때 조언을 한다면? 아무리 좋아도 카르텔로 다 채우지는 말 것! 다른 소재나 디자인의 제품을 반드시 믹스매치했으면 좋겠다. 몇 개의 카르텔 제품만으로도 공간에 위트를 줄 수 있다. 우리 집은 앤티크 가구와 카르텔의 플라스틱 가구가 뒤섞여 있고 마스터 체어와 어머니가 쓰셨던 의자를 함께 두었다.
매년 살로네 델 모빌레의 카르텔 부스는 기대가 된다. 어떤 점을 신경 쓰나?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프로젝트 같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성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이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카르텔의 파트너들에게도 어떻게 운영하고 연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팁이 될 수 있다. 신제품을 내세우긴 하지만 하나의 카탈로그를 보듯 카르텔 제품군 전체를 아우르고자 한다.
복제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거의 매일 복제품에 관해 법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판매하는 곳은 확실하지만 누가 생산하는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복제품은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 오리지널 제품을 구입한 이들에게 가격 면에서 혼동을 줄 수 있다. 오리지널 제품을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 교육이 강화되면 좋겠다.
좋은 디자인이란? 20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디자인. 그러면서 많이 판매되는 제품이 좋은 산업디자인인 것 같다. 감동을 주는 디자인이라면 더욱 좋겠고, 쇼윈도에서도 시선을 확 사로잡아야 한다. 너무 까다로운 기준인가?
카르텔은 늘 새롭고 도전하는 브랜드 같다. 페루치오 라비아니가 디자인한 펜던트 조명 플라이 FL/Y는 컬러를 입힌 플라스틱 조명 갓으로 공간에 컬러 빛을 불어넣었다. 그전까지는 주로 흰색 빛이거나 아주 고가의 수작업으로 만든 컬러 조명 갓이 있었을 뿐이다. 카르텔은 플라스틱을 활용해 가격을 낮춘 대중적인 펜던트 조명을 만들어냈다. 부지 조명 역시 3개로 나눠진 부품을 조립해 합리적인 가격대의 화려한 테이블 조명으로 10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다. 올해는 카르텔의 키즈 제품도 출시했는데, 이렇게 기술적으로나 디자인적인 면에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이 카르텔의 장점이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대학 강의를 나가면 학생들이 카르텔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얘기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카르텔에서 일할 수 있는지를 묻는가?” 라고 말이다. 혼자만의 디자인을 만드는 것보다는 일단 좋은 브랜드나 회사에 들어가서 경력을 쌓고 디자인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최근의 리빙 트렌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러 가지 스타일이 공존하는 것. 브랜드마다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는 추세이고 독창적인 디자인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품질을 만드는 것이 최근 많은 브랜드가 갖고 있는 고민이자 트렌드 같다.
한국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열풍인 북유럽 디자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북유럽 디자인은 하나의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유행처럼 돌고 돌 수 있지만 카르텔은 스타일을 창조하기보다는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우리만의 기술과 감각으로 생산해내는 브랜드다. 때문에 특정 스타일의 열풍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년 신제품에 대해 살짝 얘기해달라. 밀라노 가구 박람회 계획은 아직 구체화하기 전이다. 가부키 조명을 비롯해 조만간 신상품이 소개될 예정이고 키즈 컬렉션이 생산에 들어갔다. 또 필립 스탁의 미니멀한 신제품과 1월에는 식물성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의자도 출시할 예정이니 기대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