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stic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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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의 회장 클라우디오 루티가 서울을 찾았다. 이탈리아의 유명 리빙 브랜드 대표로서 카르텔을 이끌어온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디자이너와의 소통이다.


1 한국가구 카르텔 쇼룸을 찾은 클라우디오 루티 회장. 2 10년간 가장 잘 팔린 조명인 ‘부지’. 3 신제품 ‘피우마 암체어’. 피에로 리소니가 디자인한 것으로 약 3년간의 연구 끝에 2.4kg의 의자를 만들 수 있었다.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카르텔 Kartell은 1949년에 설립되었으며 그전에는 생활용품에 사용된 플라스틱을 활용해 가구와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왔다. 설립자 줄리오 카스텔리는 1988년에 클라우디오 루티 Claudio Luti에게 카르텔의 경영권을 넘겼다. 그 후 지금까지 카르텔의 수장으로 클라우디오 루티는 이탈리아 가구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고 세계적인 디자인 축제였던 2015년 밀라노 엑스포의 홍보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카르텔 회장이 되기 전 그는 패션 브랜드 지아니 베르사체 Gianni Versace의 설립 파트너였다. 패션 분야에 몸담고 있다가 가구 브랜드의 CEO 자리를 맡게 된 그의 경력이 특이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우려와 달리 클라우디오 루티는 가장 카르텔다운 디자인을 잘 알고 있으며 카르텔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카르텔은 특히 디자이너와 영민하게 협업하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디자이너 선정은 물론 제품 디자인과 공정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기로 유명하다. 회사 경영 못지않게 디자이너와의 협력 관계도 중요시한다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다. 이탈리아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은 강했지만 겸손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던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플라스틱이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서울을 찾은 이유는 무엇인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카르텔의 파트너와 대리점, 플래그십 스토어 등을 둘러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다. 처음 서울을 찾은 것은 베르사체에 있을 때인데, 서울 올림픽 전이었다. 지금의 서울 모습과 굉장히 달랐고 수입자율화가 되지 않아서 해외 브랜드도 거의 없었을 때였다. 한국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패션 쪽에서 일하다 카르텔을 맡게 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패션과 리빙은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패션과 리빙은 속도는 다르지만 큰 흐름은 비슷하다. 특히 밀라노에서는 많은 사람이 패션에 몸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리빙 쪽에도 관여하고 있다. 내게는 다른 두 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 

브랜드를 이끌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회장으로서 단지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디자인을 함께 개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단발성으로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디자인 경력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왜 디자이너들이 카르텔과 협업하고 싶어할까? 나는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가져오길 바라지 않는다. 디자이너와 재료와 과정, 기능, 카르텔의 정체성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 필립 스탁과는 3주에 한 번씩 만나 아이디어를 공유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제품에 스토리가 담기길 바라는데, 디자이너들도 이런 점을 좋아하는 것 같다. 또 전 세계에 리테일숍이 많아서 제품이 하나만 출시돼도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다.

   


4 투명한 표면으로 빛을 화려하게 반사하는 ‘플래닛 조명’. 5,6 카르텔의 홈 프래그런스 라인. 7 체어와 포즈를 취한 클라우디오 루티 회장. 8 올해 처음 선보인 카르텔의 키즈 컬렉션.

 

카르텔 제품으로 인테리어를 할 때 조언을 한다면? 아무리 좋아도 카르텔로 다 채우지는 말 것! 다른 소재나 디자인의 제품을 반드시 믹스매치했으면 좋겠다. 몇 개의 카르텔 제품만으로도 공간에 위트를 줄 수 있다. 우리 집은 앤티크 가구와 카르텔의 플라스틱 가구가 뒤섞여 있고 마스터 체어와 어머니가 쓰셨던 의자를 함께 두었다. 

매년 살로네 델 모빌레의 카르텔 부스는 기대가 된다. 어떤 점을 신경 쓰나?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프로젝트 같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성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이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카르텔의 파트너들에게도 어떻게 운영하고 연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팁이 될 수 있다. 신제품을 내세우긴 하지만 하나의 카탈로그를 보듯 카르텔 제품군 전체를 아우르고자 한다. 

복제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거의 매일 복제품에 관해 법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판매하는 곳은 확실하지만 누가 생산하는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복제품은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 오리지널 제품을 구입한 이들에게 가격 면에서 혼동을 줄 수 있다. 오리지널 제품을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 교육이 강화되면 좋겠다. 

좋은 디자인이란? 20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디자인. 그러면서 많이 판매되는 제품이 좋은 산업디자인인 것 같다. 감동을 주는 디자인이라면 더욱 좋겠고, 쇼윈도에서도 시선을 확 사로잡아야 한다. 너무 까다로운 기준인가?

카르텔은 늘 새롭고 도전하는 브랜드 같다. 페루치오 라비아니가 디자인한 펜던트 조명 플라이 FL/Y는 컬러를 입힌 플라스틱 조명 갓으로 공간에 컬러 빛을 불어넣었다. 그전까지는 주로 흰색 빛이거나 아주 고가의 수작업으로 만든 컬러 조명 갓이 있었을 뿐이다. 카르텔은 플라스틱을 활용해 가격을 낮춘 대중적인 펜던트 조명을 만들어냈다. 부지 조명 역시 3개로 나눠진 부품을 조립해 합리적인 가격대의 화려한 테이블 조명으로 10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다. 올해는 카르텔의 키즈 제품도 출시했는데, 이렇게 기술적으로나 디자인적인 면에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이 카르텔의 장점이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대학 강의를 나가면 학생들이 카르텔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얘기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카르텔에서 일할 수 있는지를 묻는가?” 라고 말이다. 혼자만의 디자인을 만드는 것보다는 일단 좋은 브랜드나 회사에 들어가서 경력을 쌓고 디자인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최근의 리빙 트렌드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러 가지 스타일이 공존하는 것. 브랜드마다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는 추세이고 독창적인 디자인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품질을 만드는 것이 최근 많은 브랜드가 갖고 있는 고민이자 트렌드 같다.  

한국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열풍인 북유럽 디자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북유럽 디자인은 하나의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유행처럼 돌고 돌 수 있지만 카르텔은 스타일을 창조하기보다는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우리만의 기술과 감각으로 생산해내는 브랜드다. 때문에 특정 스타일의 열풍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년 신제품에 대해 살짝 얘기해달라.  밀라노 가구 박람회 계획은 아직 구체화하기 전이다. 가부키 조명을 비롯해 조만간 신상품이 소개될 예정이고 키즈 컬렉션이 생산에 들어갔다. 또 필립 스탁의 미니멀한 신제품과 1월에는 식물성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의자도 출시할 예정이니 기대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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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박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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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의 후예들

목수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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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인 미하엘 토네트가 개발한 벤트 우드 기술을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미가 조화된 가구를 선보이는 오스트리아 브랜드 GTV. 고전적인 스타일에 멈추지 않고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독창적이고 아름다우면서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고 있다.


1 스웨덴 여성 디자이너 그룹 프론트 front가 2015년에 디자인한 라운지 의자 ‘하이드아웃’. 2 감프라테시가 디자인한 기품 있는 자태의 ‘트라가 소파’. 3 화사한 색감이 돋보이는 ‘크체히 Czech’ 의자. 4 너도밤나무를 구부려 만든 ‘아치 커피 테이블’.

   


5 눈동자를 굴리는 듯한 모습이 개성 넘치는 ‘아이 샤인 미러 Eye Shine Mirror’. 6 미하엘 토네트가 1849년에 출시한 N.1 의자. 고전 중의 고전이지만 지금 봐도 세련되어 보인다. 7 단순하지만 우아한 곡선미가 느껴지는 ‘비너 슈툴’. 8 GTV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디자인의 흔들 목마 ‘푸리아 Furia’는 2016년에 프론트와 함께 완성해냈다. 

  금형 안에 넣은 나무를 증기로 쪄서 구부리는 기술인 ‘벤트 우드 Bent Wood’ 기법을 창시한 목재 기술자이자 가구 디자이너 미하엘 토네트 Michael Thonet. 그의 후손들은 오스트리아 가구 브랜드 GTV(Gebruder Thonet Vienna)를 만들고 혁신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미하엘 토네트의 정신을 지켜나가고 있다. GTV의 전신은 미하엘 토네트가 다섯 명의 자녀들과 함께 1853년에 설립한 회사 ‘게르뷔더 토네트 Gebruder Thonet’다. 1842년에 독일을 떠나 비엔나에 정착한 그는 벤트 우드 기법을 특허 받고, 장인들이 수제로 만들던 의자를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기계화했다. 1860년 출시한 N.14는 다리, 상판, 등받이를 부품처럼 만들어 배송한 다음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제품이다. 유통, 공급의 편의성과 비용 절감이라는 여러 장점을 포용한 이 의자는 1930년까지의 기록만 5000만 개가 넘는 수량이 생산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형태와 기술력, 조립식 가구라는 당시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결합된 N.14는 ‘토넷 의자’의 아이콘이 되었고 이를 통해 회사는 성공가도에 올랐다. 1865년, 게르뷔더 토네트는 전 세계에 22개 매장을 운영하고 6000여 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한 거대한 회사로 성장한다. 또 얼마나 많은 제품을 보유하고 있었나 하면 1911년도 카탈로그에 980개의 모델이 수록되었을 정도였다.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쇠퇴하게 된다. 훌륭한 디자인과 품질 좋은 가구를 생산하는 제조 방법도 중단되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각 나라에 흩어져 있던 회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미하엘 토네트의 가족들 중 오스트리아에 남아 있던 증손자 프리츠 야코프 토네트 Fritz Jakob Thonet와 그의 식구들도 가구에 대한 경험과 열정만 갖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비엔나에 있는 옛날 창고에서 사업을 재개하고 1976년에 지금의 이름인 GTV로 바꾼다. 오늘날 GTV는 덴마크 디자인 스튜디오 감프라테시 GamFratesi, 일본 디자인 그룹 넨도 Nendo,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건축가 겸 디자이너 미켈레 데 루키 Michele de Lucchi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모색한다. GTV는 벤트 우드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한층 우아해진 곡선미와 현대적인 감각을 결합해냈다. 또 내구성과 목적성을 고려해 목재를 선정하고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원단을 매치해 세련미 넘치는 배색으로 가구를 완성한다. 미하엘 토네트가 그랬듯이 새로운 기술력으로 아름답고 견고한 가구를 생산하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있다.    

곡선의 재해석

유명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만든 GTV의 가구들. 벤트 우드 기법으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Traga Sofa 2015년에 출시한 은은한 색감의 패브릭과 곡선의 나무가 조화된 ‘트라가 소파’는 감프라테시가 디자인했다.

   


Allegory Desk 감프라테시가 2015년에 디자인한 ‘알레고리 데스크’. 앞쪽에 달아놓은 원형 판은 파티션 또는 메모판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Brezel 이탈리아 디자인 그룹 루치디 페베레 Lucidi Pevere가 2014년에 디자인한 의자 ‘브레첼’. 독일 빵 프레첼과 닮은 모양의 등받이가 눈길을 끈다.

   


Single Curve Stool 2015년 출시한 ‘싱글 커브 스툴’은 넨도의 오키사토가 디자인한 제품으로 직선과 곡선이 교묘히 어우러진 형태가 돋보인다.

   


Arch Coffee Table 스웨덴 디자인 그룹 프론트가 2016년에 디자인한 ‘아치 커피 테이블’. 너도밤나무를 구부려 만들었으며 상판은 나무, 유리 두 가지 버전이 있다.

   


Ruhering 옷걸이와 스툴이 결합된 독특한 디자인의 ‘루에링’. 이탈리아 디자이너 프란코 멜로 Franco Mello와 레안드로 아고스티니 Leandro Agostini가 2016년에 선보인 제품이다.

   


Waltz 빙글빙글 춤을 추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행거 ‘왈츠’는 감프라테시와 함께 만든 것으로 2016년에 출시되었다.

   


Morris 고전적인 디자인을 새로운 비율로 제시한 ‘모리스’. 2015년에 감프라테시가 디자인했다.

   


Cirque 원형 고리가 등받이와 다리 받침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툴 ‘서큐’. 마르티노 감페르 Martino Gamper가 2015년에 디자인했다.

   

Made by Thonet 

미하엘 토네트와 그 후손들이 디자인한 아름다운 의자들.   


1849

N.1 미하엘 토네트가 비엔나에 있는 슈바르첸베르크 궁전을 위해 디자인한 의자. 가장 유명한 N.14보다 먼저 출시된 제품으로,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는 등받이 곡선이 포인트다.

   


1860

N.14 토넷 의자의 전형이 된 제품. 20년간의 연구 결과 끝에 탄생한 N.14는 견고한 너도밤나무의 부품들로 이루어졌다.

   


1885

Schaukelstuhl 흔들의자 ‘샤유켈슈툴’은 GTV 제품의 특징 중 하나인 ‘비엔네제 스트로 Viennese Straw’ 방식으로 만든 등나무 짜임과 다리 부분의 우아한 라인을 결합해 만들었다.

   


1904

Wiener Stuhl 우아하지만 편안하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제품으로 만들고자 한층 단순화된 형태로 제작된 ‘비너 스툴’.

   


1908

Vienna 144 카페 공간에 다양하게 활용되기 위해 시트와 팔걸이 등 다양한 구성으로 디자인한 비엔나 144.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로스 Adolf Loos가 1898년에 만든 ‘로스 카페 뮤지엄 Loos Cafe Museum’이 이 의자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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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나세티의 예술 여행

포르나세티의 예술 여행

포르나세티의 예술 여행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 피에로 포르나세티의 방대한 작품이 밀라노, 파리에 이어 한국에 도착했다. 이번 포르나세티 특별전을 기획한 그의 아들 바르나바 포르나세티와 만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 바르나바 포르나세티의 지휘 아래 탄생된 아이템으로 채워진 전시장 마지막 방. 2 콜앤선 Cole&son과 협업해 만든 띠벽지 ‘물티플레테 multiplette’. 3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비정형적인 건물과 묘하게 어울리는 포르나세티의 일러스트. 4 정교한 핸드 드로잉으로 완성한 테이블과 의자들. 5 손을 반복해서 그려 넣은 페이퍼 바스켓 ‘마니 Mani’.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낸 이탈리아 예술가 피에로 포르나세티 Piero Fornasetti는 뛰어난 예술성과 다재다능한 실력으로 화가,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다 1만3000여 점의 작품을 남기고 1988년에 세상을 떠났다. 시간이 흘러 2013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의 전시가 열렸다. 아들인 바르나바 포르나세티 Barnaba Fornasetti가 기획한 <포르나세티 프랙티컬 매드니스 Fornasetti Practical Madness>는 좋은 성과를 거두며 2015년 파리 장식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한번 선보이게 된다. 포르나세티의 예술성을 드높인 이 순회 전시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된다. 3월 19일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대부분 밀라노에 있는 포르나세티 아카이브에서 선정한 1300여 점의 작품으로 마련되었다. 전시장은 주제에 따라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뉜다. 먼저 피에로 포르나세티가 미적으로 영감을 받았던 이미지와 문서, 직접 만든 책을 볼 수 있는 방에서 출발한다. 포르나세티의 재능을 꿰뚫어본 건축가 지오 폰티와 함께 제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방을 지나 포르나세티의 작업실에 도달하면 그의 드로잉 원본, 일러스트를 감상할 수 있다. 포르나세티의 그림에는 고전주의에서 영향 받은 흔적이 역력하지만 작품의 내용은 역사적인 요소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웠다. 맥락에서 벗어난 이미지를 병치시키고 형이상학적인 페인팅으로 초현실주의에 가까운 작품으로 승화해냈다. 전시는 그가 숨을 거두기까지의 작품은 물론 바르나바가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새롭게 만든 최근의 작업물까지 아우른다. 바르나바는 1980년대부터 아버지와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피에로 포르나세티의 감각을 물려받은 그는 작업의 비법을 전수 받고 포르나세티 아카이브를 만들어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현재 포르나세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 포르나세티의 전통을 이어가는 그를 전시장에서 만나봤다.    


6 1980년대부터 포르나세티를 이끌고 있는 바르나바 포르나세티. 7 작품 배치뿐만 아니라 전시장 공간 연출에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8,9,10 카발리에리를 모티프로 만든 ‘테마&베리에이션 Thema&variation’시리즈의 장식장과 접시, 의자. 고전적인 스타일에 현대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다. 

 

밀라노, 파리에 이어 다음 전시 국가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한국은 미래지향적인 나라다. 동양 문화권에 있지만 다른 나라의 예술과 문화에도 관심이 많고 첨단 기술에도 열려 있다. 이런 한국에서 포르나세티의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회를 통해 영감을 받았으면 했다. 복제품이 아닌 다양하게 재해석된 디자인, 예술 작품이 나오기를 바란다.

전시가 열리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다. 장소 특성상 고려할 것들이 있었을 듯한데, 전시를 연출하면서 어떤 점을 신경 썼나? 웅장하고 멋지고 이색적인 느낌이 드는 이 건축물에서 전시를 열게 된 게 뿌듯했다. 이 전시는 각각의 ‘방’을 잘 구성하는 게 관건인데, 건물 벽이 곡선이라 어려운 점이 있었다. 온통 새하얀 벽이라 프로젝터 영상으로 연출하기는 수월했다. 밀라노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인 비르질리오 빌로레시 Virgilio Villoresi가 포르나세티 작품을 촬영한 초현실적인 영상은 한국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포르나세티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템을 꼽는다면 단연 포르나세티의 뮤즈인 오페라 가수 리나 카발리에리의 얼굴이 그려진 접시다. 그녀를 뮤즈로 삼게 된 계기는? 어느 날 아버지가 오래된 잡지를 보다가 리나 카발리에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때는 그냥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림을 그렸다가 나중에서야 그녀가 아주 유명한 오페라 가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장인정신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아름답고 도전적이고 당시 매우 혁신적인 인물이었고 다양한 테마로 확장해 나가는 포르나세티의 뮤즈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포르나세티는 일일이 핸드 드로잉을 해서 가구나 소품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클래식하지만 고루하지 않고 오히려 패셔너블한 느낌도 든다. 제작에 관한 포르나세티만의 기준이 있나? 사람 손만큼 정밀하고 정확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다른 패션 디자이너들을 제치고 1950년대에 미국의 니만 마커스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그래서 가끔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패션 브랜드로 오해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포르나세티는 패션에 호의적이지만 빠르게 변하는 패션과 달리 우리는 느리고 천천히 한다. 

새로운 아이템을 디자인할 때 당신은 어디서 영감을 받는가? 나는 아버지가 했던 것에서 자극을 얻는다. 아버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작품은 사인이 없어도 어느 누가 봐도 본인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데, 그런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낸 그가 존경스럽다. 

아버지와 추억이 많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달라. 아버지는 펜 하나로도 모든 걸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나에게 항상 화가가 되라고 계속 권유하셨다. 나중에는 그게 자신을 위해 일해달라는 뜻인 걸 알고 아버지 밑에서 일하면서 많이 배웠다. 

포르나세티에서 당신의 임무는 무엇인가?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전통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포르나세티 스타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무대를 디자인하는 거다. 나는 다양한 통로로 사람들이 포르나세티를 감상하고 느끼길 바란다.

이 전시를 통해 가장 이야기하고픈 것은? 포르나세티의 조형물에는 이탈리아적인 영감과 문화가 녹아들어 있다. 창의적인 디자인,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물건을 통해 생활 그리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느꼈으면 좋겠다.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차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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