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난 4월 2일부터 9일까지 축복받은 화창한 날씨 속에서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러진 2017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다녀왔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크게 외곽에 위치한 로 피에라 Rho Fiera 전시장에서 열리는 이 살로네 I Salone와 밀라노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푸오리 살로네 Fuori Salone로 나뉜다. 이탈리아 건축가 마시밀리아노 푹사스 Massimiliano Fuksas가 설계한 외계 행성 같은 21만㎡ 넘는 로 피에라 전시장에는 3000여 개가 넘는 참가 업체가 24개의 전시관에 나뉘어 전시된다. 한마디로 세계를 주도할 최고의 디자인 브랜드들이 펼치는 경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는 격년으로 열리는 조명 전시회 ‘에우로 루체 Euro Luce’가 열려 LED 조명의 진화라는 큰 흐름을 볼 수 있었다. 3년 전에 비해 조명들은 대체로 심한 다이어트를 한 듯 가늘어졌고 자연을 형상화한 시적인 디자인, 여성의 주얼리나 리빙 소품처럼 디자인된 제품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였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등용문인 살로네 사텔리테 Salone Sattellite에서는 지난 20여 년간 사텔리테를 거쳐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한 이들의 작품을 전시해 그 위상을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박람회장에서 발품을 팔아야 하는 바이어나 유통업체 관계자 중 상당수가 이 기간 치솟는 비싼 숙박비를 감수하며 일주일 가까이 머문다. 그 이유는 바로 밀라노 시내 구석구석에 알짜배기 구경거리인 푸오리 살로네가 있기 때문. 두오모 산 바빌라, 포르타 누오바 이솔라&브레라, 포르타 베네치아, 카도르나&티치네세, 포르타 로마나, 람브라테&센트럴 스테이션, 토르토나 포르타 제노바&나빌리 이렇게 7개의 거리에서 열리는 전시들은 개성 만점의 인테리어가 돋보여 전시 공간만 봐도 흥미로운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일 브론제토의 시작은 어떠했나? 1963년 초대 창업자인 아버지 안토니오 칼치나이가 피렌체에서 시작한 브랜드가 일 브론제토다. 아버지는 오직 브론즈 소재만을 다뤄 귀족들 집의 문고리나 장식품을 만드는 브론지스타였다. 청동에 특화된 직업이었던 브론지스타는 그 당시 유럽에만 있던 직업이었고 우리 가족은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피렌체에 아직까지도 일 브론제토의 공방이 있나? 물론이다. 층고가 높은 500년 된 건물인데 옛날에 병원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아치형 구조가 아름다운 공간으로 입구는 좁지만 내부에 여러 개의 굴처럼 방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모벨랩에 전시된 일 브론제토의 새로운 조명 컬렉션을 보니 어떠한가? 쇼룸의 배경 컬러가 어두운 편이라 가구나 조명이 눈에 잘 띈다. 나무는 브라스처럼 따뜻한 컬러의 소재이기 때문에 북유럽 빈티지 가구와 조명이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또 일 브론제토의 조명 갓 컬러가 공간에 포인트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든다.
디자인이나 의사 결정은 누가 하는가? 디자인팀이 따로 있나? 내가 최종 결정자이지만 소규모 가족 경영의 장점을살려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도 하고 의견도 공유한다. 큰 브랜드나 회사처럼 팀이 나눠져 있진 않다. 각자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기도 하지만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고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동생들과 함께 새로운 조명 라인을 론칭했는데 마음이 잘 맞았나? 동생인 피에르 프란체스코는 제품 생산 쪽을 담당하고 있고 사촌 동생인 미켈란젤로는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전공해 기술적인 부분을 개발한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괴짜 같은 친구인데, 삼성 TV를 결합한 핀볼 머신을 직접 만들기도 했을 정도다!
시그니처 조명인 웜홀 조명은 어떻게 탄생했나? 친구 집을 놀러 갔을 때 창고에서 발견한 아주 오래된 앤티크 전등갓을 봤다. 그걸 보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내가 가야 할 길을 본 것 같았다. 앤티크 전등갓의 디자인에서 발전시킨 것이 지금의 웜홀 조명이다. 웜홀은 일 브론제토에서 가장 유명하고 유럽에서도 베스트셀러다. 특히 베이지 그레이 컬러가 인기다.
경영을 하면서 트렌드의 변화를 직접 느끼는가? 당연히 사람들의 취향과 유행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5년 전만 해도 디자이너들이 브라스나 브론즈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는데 요즘엔 금속 제품이나 금속이 포인트인 제품이 유행이다. 그동안 조명을 만들 때 니켈이나 크롬도 적용해봤지만 역시 요즘엔 브라스 제품의 반응이 가장 좋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노하우 같은 게 있나? 아버지는 토요일마다 나를 데리고 공방에 가셨다. 어릴 때부터 원석이나 공방에 널브러진 소재 등을 갖고 놀면서 자랐기 때문에 좋은 소재만큼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질 좋은 소재는 일 브론제토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요소다. 나 역시 9살 된 딸을 공방에 데리고 가는데, 아이가 청동 금속덩이에 줄칼로 무늬를 내는 등 재미있게 논다.
브론즈나 브라스의 매력은 무엇일까? 금속 중에서도 따뜻한 컬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자 매력인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부분인데 최고급 명품 핸드백의 중요한 부분을 만들 때도 브라스가 단골 소재다. 또 연성이 있어서 원하는 형태로 성형하기에도 매우 수월하다. 포용성이 큰 소재랄까. 브라스 소재를 겉에만 코팅하고 안에는 철을 채워 만드는 이들이 있는데 정말 화가 난다. 브라스 제품은 정말 100% 브라스를 사용해야만 한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색마저도 매력적이다.
다른 소재에 대한 호기심도 있는가? 소재의 세계는 정말 흥미롭다. 물론 브론지스타의 후손으로 기본 소재는 금속이지만 마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떤 소재와 결합할 것인지 등을 생각한다. 조명의 베이스 부분을 대리석이 아닌 나무로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 여름휴가 때 화산이 있는 동네에서 화산석을 봤는데 조명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구멍에서 빛이 새어나오면 아름다울 것 같지 않나?
핸드메이드 조명 브랜드는 이미 많다. 일 브론제토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맞는 말이다.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는 이탈리아에도 정말 많다. 하지만 많은 브랜드가 점점 수작업의 비중을 줄이고 있고 대를 이어온 장인들과의 협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일 브론제토는 소규모 가족 경영으로 브랜드를 이끌고 있지만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소통 방식과 사람 사는 냄새도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어떤 방법으로 브랜드를 홍보하나? 새로운 조명 라인을 론칭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브랜드를 전체적으로 정비하는 중이다. 사촌 동생 미켈란젤로가 들어오면서 조금씩 젊은 활기를 띠어가고 있다. 메종&오브제나 살로네 델 모빌레의 조명 전시인 에우로루체, 상하이 박람회에도 꾸준히 참가한다.
집 안에도 일 브론제토의 조명을 두었나? 인테리어는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아내의 영역이다(웃음). 아내가 컬러를 좋아해서 가구에 칠을 하면 내가 금속으로 손잡이 만들곤 한다. 웜홀 조명의 터쿠아즈 컬러를 거실에 두었고 화장실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새틀라이트 조명을 벽에 달아두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들도 처음에는 공방에서 장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왔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일 브론제토가 디자인에만 치중하는 브랜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 우리 제품을 봤다면 기꺼이 손으로 만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손으로 만든 것에서 느껴지는 금속의 감도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우리 제품에는 대를 이어온 가족들의 열정과 영혼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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