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주목받는 디자이너 리스트에는 김진식이라는 이름이 항상 있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수면으로 떠오를 디자이너라는 예감이 드는 그가 첫 개인전을 연다. 그만의 디자인 이면에 있는 감각의 근원이 궁금했다.
김진식은 2013년 스위스 디자인 스쿨 에칼 Ecal에서 마스터 디자인 럭셔리&크래프트맨십 코스를 졸업한 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까지 글로벌 브랜드인 크리스토플 Christofle, 바카라 Baccarat, 볼론 Bolon, 에르메스 Hermes, 네슬레 Nestle와 협업해 작업했으며, 국내에서는 갤러리 서미의 소속 작가로 활동했다. 그간 해온 작업은 디자인 마이애미, 밀라노 가구 박람회, 파리 메종&오브제, 뉴욕 디자인 위크 등에 전시했다. 대표작인 하프앤하프 Half&Half 컬렉션은 2016년 벨기에 인테리어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발상은 ‘기능의 발견’이 아닌 ‘숨은 형태의 발견’이다. 무엇보다 선진 디자인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이 아닌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담은 작품 세계가 있는 디자이너라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것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디자인적 완성도를 가졌다는 확신과 함께. 5월 24일부터 6월 28일까지 역삼동 소피스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다.
첫 번째 개인전인데 소감은요? 성격 탓에 감정의 기복이 없는 편이라 첫 개인전이지만 특별한 감정은 없어요(웃음).
자신을 어떤 작가라고 생각하나요? 물성을 디자인하고 연구하는 디자이너라는 꼬리표가 있지만 어떻게 하면 사물을 천천히 알아가고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작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해외 명품 브랜드와 많은 협업을 해왔는데 그들의 마음을 훔친 비결은 뭔가요? 학부 때 프랑스 유명 실버 웨어 브랜드 크리스토플과 함께한 테이블 컨테이너는 지금도 프랑스에서 판매되고 있어요. 당시 마케팅 총괄 수석은 다른 말 없이 ‘파워풀하다’라고만 말했어요. 처음 작업할 때는 전시용이었는데 시판까지 되면서 저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어요.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파워풀함이 무기가 아닐까요.
작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월페이퍼 핸드메이드 전시에 출품한 ‘원포인트’도 인상적이었어요. 20여 명의 디자이너가 브랜드와 조인해 호텔 관련 제품을 만드는 미션이었어요. 스웨덴 PVC 카펫 회사 볼론과 스페인 대리석 브랜드 쿠에야르 스톤과 협업해 5개 홀의 미니 골프 코스를 제작했어요. 지형과 능선을 본뜬 금속판을 곡선으로 만들고 공중에 띄우기 위해 대리석 받침을 썼고요. 잔디를 대신해 볼론의 PVC 카펫을 마감해 현대적인 골프 코스로 디자인했어요. 늘 봐온 디자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새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2016 헤럴드 디자인 포럼’에서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로스 러그로브와 함께 강단에 섰죠. 어떤 내용이었나요? 주제는 ‘혁신과 가치 창출의 원천, 콜라보의 성공 스토리’였는데, 로스 러그로브와 함께 강단에 선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자리여서 뜻깊은 기회였어요. 강연의 큰 맥락은 사물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법이었는데, 지속 가능한 디자인은 결국 얼마나 단순하게 표현되는가에 달려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디자인 방향성을 이야기할 때는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요. 하프앤하프 시리즈와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거울 시리즈는 처음에 봤을 때는 기능이 명확하게 캐치되지 않아요. 이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그 가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천천히 알아갔으면 해요. 천천히라는 의미는 곁에 두고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은 것과도 일맥상통해요.
개인전의 주제가 ‘선의 균형’인데 어떤 의지가 담겨 있나요? 새로운 형태에 대한 탐구는 언제나 선에서 시작돼요. 기능이 있는 선을 만들고 그 기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선이 첨가되죠. 곡선과 곡선 혹은 직선과 곡선이 만나 안정적인 형태를 만드는데, 이런 선의 교차가 최소화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하프앤하프나 거울 시리즈는 어떤 소재로 만들었나요? 하프앤하프 컬렉션은 숱한 세월에 걸쳐 응축된 대리석이 기우뚱한 금속판을 떠받들도록 디자인되었어요. 금속의 파인 부분에 대리석 파트가 합체되면서 가구가 되는 거예요. 매끈하고 광택 있는 금속의 재질감과 묵직하고 자연스러운 패턴을 지닌 대리석이 강한 대비를 만들어내죠. 거울 시리즈도 같은 맥락으로 디자인했지만 슈퍼 미러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해 사물의 형상이 뚜렷하게 보여요.
이 두 개의 작품은 마치 3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미래적인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보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도 다수에 포함되지 않는 디자인 그리고 순수한 선을 조합한 조각이라고 생각해요.
신작으로 거울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왜 거울이었나요? 하프앤하프 시리즈를 만들 때부터 리플렉션되는 형상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리플렉션되는 것의 1차적인 형태가 거울이고, 거울 하면 동그라미 혹은 원형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형태는 기본적인 것을 따랐지만 구조적으로는 추상적인 형태를 가미했어요.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7개월 정도요. 구상은 금세 하는데 작품을 만들어 두고 시간을 가지고 선의 비례를 계속 살펴봐요. 시간을 두고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