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이벤트와 볼거리가 풍성했던 헬싱키 디자인 위크. 세계적인 인테리어 가구 박람회 하비타레를 비롯해 디자인 위크 기간에 만난 핀란드 브랜드와 현재 주목받고 있는 신진 디자이너를 소개한다.
북유럽 디자인의 본고장을 가다
세계적인 인테리어 박람회인 하비타레 Habitare를 참관하러 지난 9월 12일부터 16일까지 핀란드 헬싱키에 다녀왔다. 9월은 헬싱키가 디자인 축제의 장으로 변신하는 ‘헬싱키 디자인 위크’가 열리기 때문에 생활 전반의 디자인을 다각도로 볼 수 있었다. 헬싱키 디자인 위크는 유럽의 밀라노와 파리에서 열리는 디자인 위크와 같은 형태로 열리는데, 시내 곳곳에 있는 뮤지엄, 디자인숍, 갤러리, 디자이너의 아틀리에 등 좁은 골목까지 디자인의 열기로 가득했다. 헬싱키 디자인 위크를 둘러본 소감을 결론부터 말하면, 핀란드 국민에게 디자인은 공기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 안 되는 필수 불가결하면서도 소중한 존재처럼 말이다. 북유럽 디자인의 철학에 대해서는 줄줄 외우고도 남을 만큼 들어왔지만 본고장에서 만난 북유럽 디자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휠씬 더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또한 자국 브랜드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맹목적인 사랑이 오늘의 핀란드 디자인을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가 열광하는 아르텍이나 마리메꼬, 이딸라 제품이 공공장소에 무심히 놓여 있고 TV를 켜면 방송 세트의 소파에 마리메꼬 쿠션이 놓여 있다. 허름해 보이는 작은 식당에서도 이딸라 컵과 아라비아 핀란드 접시를 사용하니 이들에게 디자인은 일상이다. 보통 핀란드 하면 휘바휘바, 자일리톨, 사우나 정도가 연상되겠지만 핀란드는 디자인을 빼놓고는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는 나라다. 유럽이 유로화로 통합되기 전 핀란드 지폐에는 디자이너 알바 알토 Alvar Alto의 인물화가 새겨져 있었다. 디자이너를 지폐에 새길 정도라니 국민들의 디자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도 가늠할 수 있다.
이번 헬싱키 디자인 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핀란드 디자인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디자이너 이루요 쿠카푸로 Yrjö Kkujapuro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것이다. 1964년 아르텍에서 출시한 카루셀리 Karuselli 라운지 체어를 디자인한 인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그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이 의자를 디자인하는데 4년이 걸렸어요. 사람이 앉았을 때의 최적화된 치수를 찾았고 신체의 구조와 비율에 따라 기대고 앉았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했어요.”라고 대답했다. 북유럽 디자인의 핵심 키워드는 간결하지만 실용적이며 인간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다. 북유럽 디자인이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 가능한 디자인으로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올해로 84세가 된 디자이너의 말에서 다시 한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