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시작된 조명 브랜드 보치는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제품을 내놓는다. 그 바탕에는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실험적인 디자이너 오메르 아르벨이 있다.
2005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시작된 조명 브랜드 보치 Bocci. 설립 이래 다수의 디자인 어워드를 휩쓸며 전 세계에 보치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언제나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대담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보치의 원동력은 대표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대표이기도 한 오메르 아르벨 Omer Arbel이다. 이스라엘 태생의 캐나다 디자이너인 그는 호기심과 열정이 대단하여, 때로는 디자이너라기보다 발명가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늘 실험적인 디자인을 고수하며, 현재 실현 가능한 테크닉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랜드 디자이너이지만 한때는 국가대표 펜싱 선수로, 지금은 건축가로도 활동하는 다이내믹한 배경만 봐도 그의 자유로운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워낙 경계가 없는 디자이너라, 2010년에는 캐나다 동계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는 유리를 주재료로 감성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이미지에 초점을 둔 디자인을 선보인다. 워낙 섬세한지라, 조명의 전원을 끄고 켰을 때의 모습부터 주변에 생기는 빛과 그림자까지 세세히 고려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오메르 아르벨의 작품은 모두 숫자로 표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디자인을 시작한 작품의 순번대로 표기해 숫자가 높을수록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보치의 베스트셀러이자 시그니처 제품은 14시리즈다. 숫자처럼 14번째 만든 작품으로, 여러 개의 유리 펜던트가 모여 하나의 캔들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하나하나 정확한 계산하에 특수 유리 공법으로 제작했다. 펜던트는 모두 핸드메이드로 만들어 더욱 특별하다. 한 개부터 구입이 가능해 미니멀한 스타일부터 독특한 샹들리에 연출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구성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꼽는 것은 28시리즈다. 풍선을 연상시키는 28시리즈는 오메르 아르벨이 사람들의 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70여 개의 다양한 색상과 구성, 길이로 선택 가능해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2013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기간 동안 런던에 위치한 왕립박물관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에 전시되어 유명세를 치렀다. 당시에는 280개의 조명을 설치해, 예술 작품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하기도 했다. 38시리즈는 식물을 넣어 쓸 수 있는 조명이다. 벽이나 천장에 설치하면 자연친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특히 보치의 장점은 조명이 꺼져 있을 때도 아름답게 고안된 것인데, 38시리즈 역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이한 것은 16시리즈다. 보통은 순번대로 작품을 완성한 반면, 16시리즈는 28시리즈보다도 훨씬 늦게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에 쏟은 시간이 길었기 때문인데, 무려 10년간 연구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나무의 형태를 닮은 16시리즈는 미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공법을 사용한 것으로, 오메르의 발명가적인 집념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최근 출시된 것은 2017년에 만든 87시리즈다. 재료의 무한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유리 안에 구리로 만든 그물 소재의 바스켓을 넣고 가열된 유리를 부어 성형했다. 하나의 펜던트를 만들기 위해 동시에 3명이 작업할 만큼 그 공정이 쉽지 않다. 예술과 혁신, 기술을 모두 요하는 87시리즈는 색감과 형태가 복숭아를 연상시키며, 은은하지만 존재감 있는 형태로 목재로 만든 가구나 공간에 매치하면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그 외에도 런던 바비칸 뮤지엄에도 전시됐던 알루미늄 소재의 44시리즈, 유기적인 형태와 패턴으로 완성된 73시리즈 등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수두룩하다. 회사가 설립된 지 이제 갓 10년이 넘었지만, 세계적인 브랜드로 우뚝 선 조명 브랜드 보치. 제품은 모두 밴쿠버 본사에서 만들며, 요즘은 베를린에서도 브랜드의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예술 작품 못지않은 조명으로 세계 유명 가구 쇼룸과 런던의 바비칸 박물관,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에 전시되는 영광을 누리며 주목받고 있다. 비슷한 테크닉으로 컨셉트와 형태를 흉내 내는 디자인이 아닌, 독보적인 철학으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보치의 88번째 작품이 몹시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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