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들어온 예술 작품 같은 조명.
우리 집에 들어온 예술 작품 같은 조명.
에디터
끊임없이 다작 多作을 하는 작가처럼 오르에르 김재원 대표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희한하다. 분명히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그에 열광하니 말이다.
문화 공간 겸 카페 자그마치, 오르에르와 오르에르 아카이브, 편집숍 더블유디에이치(WDH) 그리고 철물점 개념의 인벤타리오와 문구점 포인트오브뷰까지 김재원 대표는 성수동에 붐을 일으킨 주역으로 늘 언급되는 인물이다.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그녀가 연이어 오픈한 공간은 사람들을 성수동으로 불러모았다. “성격상 뭘 해야지 하고 계획해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자그마치는 다른 학과 교수님의 일을 돕다가 시작된 일이었고, 오르에르와 오르에르 아카이브도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곧 오르에르 2층에 문구점을 오픈할 예정인데, 이 역시 정말 하고 싶어서 해보는 거예요.” 김재원 대표는 영국 런던에서 텍스타일을 전공했고, 건국대학교에 출강을 하고 있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사람도 아니다. 계획에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지만, 어떤 작은 시작점이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건 아닌지 궁금했다. 마치 빅뱅처럼. “자그마치 오픈을 돕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요. 그런데 저는 바리스타도 아니고 커피에 대한 조예가 아주 깊지도 않았죠.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디자인이었어요. 그래서 자그마치 때도 다양한 전시나 행사를 많이 기획했는데 아무래도 자그마치는 카페의 역할이 컸어요. 카페랑 전시 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오르에르를 오픈하기로 마음먹었죠. 오르에르의 이름은 에디터 뒤에 붙는 ‘or’과 디자이너의 ‘er’이 붙어서 편집을 하는 사람들,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해요.” 김재원 대표가 맡은 공간은 늘 세간에 화제가 됐다.
어느 날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이 놀랄 만한 공간을 선보여온 그녀는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더 확고해졌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는 딱히 제 관심사도 아니었고, 취향도 아니었지만 친구들이 하자면 하는 대로 묻어갔던 것 같아요. 그때는 외면당하는 것이 걱정되는 나이었으니까요. 친구들은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싶어했지만 제 머릿속엔 이베이에서 구입하고 싶은 물건의 경매 종료 시간이 계속 생각났죠(웃음). 처음 자그마치를 시작하고 오르에르를 오픈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반응에 엄청 예민했어요. 후기도 일일이 다 찾아볼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편해졌어요.” 유행이나 예견된 트렌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했을 뿐이라는 김재원 대표. 그녀는 언젠가 공간에 흥미를 잃어서 다른 걸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덕후’ 기질을 자극할 무언가를 결과물로 계속 생산해내는 과정만큼은 변함없을 거라고 전했다. “결국엔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해요. 오르에르 근처에 아주 작은 과자점을 낼 건데요. 이후에는 조금 쉬어가려고요. 귀여운 패키지나 포장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져요.” 조금 쉬어가겠다고는 했지만 김재원 대표는 쉬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했다. 뭔가를 끊임없이 찾고, 생산하고, 공부하는 일. 그것이 그녀에게는 쉬는 일이란다. 본인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그녀에게 ‘메이커’라는 수식어가 제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공간이든, 물건이든, 문화든 상관없이 김재원 대표는 그녀가 꽂힌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것이고 우리는 기꺼이 즐길 준비를 하면 된다.
프렌치 감성의 옷을 직접 디자인해서 소개하는 페르마타의 최혜진 대표는 디자인과 일, 휴식과 균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삶의 여행자다.
페르마타의 최혜진 대표는 남편이자 그녀가 디자인한 옷의 패턴을 만드는 모델리스트 윤권진 대표와 함께 일하고 있다. 이제 어엿하게 자리 잡은 편집숍 대표이지만 그녀의 SNS 계정에는 일에 관한 내용이 거의 없다. 오히려 좋아하는 여행지나 함께 살고 있는 반려동물의 모습, 얼마 전에 지은 집과 마당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랫동안 살았던 집을 개조해서 두 번째로 오픈한 지금의 페르마타 공간에는 부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외국 바이어들이 주요 고객이었던 초창기 페르마타의 옷은 이제 ‘페르마타 스타일’이란 수식어로 소개될 만큼 국내 멋쟁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나아가 라이프스타일 제품까지 갖추고 있다. 국내 기성품에서는 보기 드문 내추럴한 페르마타 옷은 여성스럽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옷을 입으면 왠지 서울이 아닌 파리의 어느 골목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부부의 안목으로 고른 신발과 프랑스 라소우플레리의 유리 제품, 직접 구입해온 빈티지 제품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서 매만진 공간에 놓여 있다. 디자이너 없이 오로지 두 사람의 힘으로 디자인하고 고친 페르마타의 공간은 기존 단독주택이 연상되지 않을 만큼 감각적으로 변신했다. 이곳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최혜진 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최근에 워라밸이라는 말이 생겨났지만 제 삶에서 일과 휴식의 균형은 아주 중요해요. 사실 최근에는 일에만 매달리고 있어서 지쳐 있어요. 어떻게 하면 일과 휴식을 편안하게 나눌 수 있을지 늘 고민해요. 일만 하면서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최혜진 대표는 남편과 함께 서울에서 벗어난 곳에 직접 집을 지었고, 틈만 나면 마당에 식물을 가꾸며 몽구와 일레븐이란 이름의 반려견 두 마리와 반려묘 미유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바쁜 출장 일정에도 사람들한테 잘 알려지지 않은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느릿느릿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들 부부가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다. 페르마타의 옷이 여유롭고 편안하면서 멋스러운 것은 이들 부부의 삶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다음 페르마타의 숍은 작게, 더 소박하게 하고 싶어요. 우리의 디자인과 생각, 가치를 잘 알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그녀는 자신의 삶과 꼭 닮은 옷을 입고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어로 정류장을 뜻하는 페르마타는 어쩌면 최혜진 대표에게 있어 잠시 머무는 하나의 정류장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보여줄 또 다른 정류장은 어떤 모습일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