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반복되는 일상이 모여 결국 거대한 업적이 탄생한다. 이악 크래프트의 전현지 실장은 성실한 삶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남동 주택가에서 세라믹 스튜디오 ‘IAAC’의 간판을 보곤 잠시 서성였던 적이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것이 ‘이악’이라 읽히며 ‘I am a ceramist’의 약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세라미스트란 뭘까. 도예가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인가? 의문이 또다시 꼬리를 물었을 때 이악 크래프트의 전현지 작가는 쉬운 말로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도예가가 조금 더 작가의 영역에 가깝다면, 세라미스트는 ‘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식기, 조형 작품, 인테리어 오브제 등 다양한 영역으로 선보이는 사람을 뜻해요.” 즉 세라미스트는 흙으로 많은 것을 해보겠다는 그녀의 열정이 담긴 단어다. 그녀는 패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캔들 오브제를 만들고, 제로컴플렉스와 라피네 등 유명 레스토랑을 위한 그릇을 제작할 뿐 아니라 다양한 클래스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녀의 일상이 보통 어떻게 흐르는지 물었다. “보통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스튜디오에 있어요. 퇴근 시간은 늘 다르고요(웃음). 규칙을 정해서 꾸준히 생활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아니면 쉽게 나태해지는 편이라서요.” 으레 예술가 하면 야행성에 불규칙하게 생활하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이에 반하는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작업이란 게 체력적으로 되게 많이 부담되는 일이에요. 미리미리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수습하기도 힘들더라고요. 한번에 몰아서 하려면 꼭 탈이 나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질 때도 많고요.” 반복되는 일상을 싫어했던 그녀도 불규칙한 삶을 살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연찮게 본 다큐멘터리 한 편을 통해 일상을 재정비하게 되었다고. “그래픽, 인테리어 등 다양한 디자이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그중 한 분이 창의력도 연습이다. 그래서 자기는 매일 작업실에 나와 스케치를 연습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규칙적인 일상을 갖는 게 생각해보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지칠 때도 있지만요.” 그래서 그녀는 프랑스와 영국으로 보름간의 출장 겸 휴가를 다녀왔다. 프랑스에서 메종&오브제를, 영국에서 런던 디자인 위크를 보고 휴식도 취하기 위함이다. 그녀는 이악 크래프트를 오픈한 뒤로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다녀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올해는 조금 슬럼프였던 것 같아요. 이번에 잠시 들른 프랑스 남부가 니체가 책을 집필한 동네였거든요. 그래서 니체의 명언집을 가져가 읽었는데, 고민했던 부분에 대한 답을 얻고 왔어요. 이번 여행을 통해 충분히 쉬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많이 느꼈네요.” 편안한 미소를 띠며 인터뷰에 응하는 전현지 실장의 머리 위로 ‘Makes Life’라는 이악 슬로건이 눈에 띄었다.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다양한 세라믹 작업뿐 아니라,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인생도 만들어가겠다는, 그녀가 오랫동안 고민한 인생관이 돋보이는 문구였다. 오랫동안 꾸준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호흡을 조절하며 페이스를 맞출 줄 안다. 전현지 작가의 10년, 20년 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