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9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19는 현재 우리의 삶과 밀접한 환경문제부터 또 다른 차원의 세상까지 극과 극으로 나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했다. 디자인 트렌드의 현재와 미래를 경험해본 <메종> 기자들이 뽑은 10가지 키워드를 소개한다.
벤투라 센트랄레에서 진행된 아리아 Aria의 <Come to Light>. ⓒClaudio Grassi
01 IT’S TIME TO SAVE THE EARTH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모든 산업에서 상위 이슈다. 밀라노의 갤러리스트 로사나 오를란디 Rossana Orlandi는 <Guiltiless Plastic> 프로젝트로 남용되고 버려지는 플라스틱 문제를 제고하고, 디자인적으로 재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는 로사나 오를란디가 주최한 ‘로 플라스틱 프라이즈 Ro Plastic Prize’의 최종 후보에 오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으며, <Ro Plastic Master’s Pieces>에서는 하이메 아욘 Jaime Hayon, 마르셀 반더스 Marcel Wanders 등 유명 디자이너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아름다운 작품이 전시됐다. 코스 COS, 프라이탁 Freitag 등의 패션 브랜드에서도 환경을 주제로 한 전시를 열어 경각심을 일깨웠고, 에일린 피셔 Eileen Fisher 역시 로사나 오를란디 갤러리에서 <Waste No More> 전시를 통해 제로 웨이스트 Zero-waste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스위스의 백팩 브랜드인 퀘스천 Qwstion은 100% 바나나 잎으로 만들어 친환경적이고 견고한 바나나텍스 BananantexⓇ 섬유로 만든 가방을 제안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로 플라스틱 프라이즈 최종 후보 전시에서 눈길을 끈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즈 Arsenio Rodriguez의 작품.
로 플라스틱 프라이즈를 수상한 데이브 하켄스 Dave Hakkens의 작품.
로 플라스틱 프라이즈 최종 후보에 오른 정수기 물통 오브제.
퀘스천에서 선보인100% 생분해되는 바나나텍스Ⓡ 소재.
02 디자이너의 호텔&레스토랑
디자인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을 직접 사용해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브랜드의 남다른 행보가 반갑다. 수준 높은 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식스 갤러리 Six Gallery에서는 오는 9월, 같은 빌딩 내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시스터 호텔 Sister Hotel을 오픈한다. 커플 디자이너인 데이비드 로페즈 퀸코세스 David Lopez Quincoces와 패니 바우어 그렁 Fanny Bauer Grung의 작품으로, 9개의 룸으로 구성되며 높은 수준의 디자인과 예술, 음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호텔에 비치된 물건을 대부분 구매할 수 있어 식스 갤러리의 예술적인 에디션을 직접 경험하고 소장할 수 있게끔 했다. 네덜란드 브랜드 렌스벨트 Lensvelt는 아티스트 마르텐 바스 Maarten Baas와 함께 팝업 레스토랑인 ‘바 바스 Bar Baas’를 오픈했다. 이는 유명 바인 ‘바 바소 Bar Basso’를 오마주한 것으로, 마르텐 바스가 렌스벨트를 위해 디자인한 101 체어로 장식된 공간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디자이너 바스턴 레이 Basten Leijh가 디자인한 모듈러 라이팅 인스트루먼트 Modular Lighting Instrument의 한정판 조명 메다드 Medard도 장식돼 레스토랑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 관찰할 수 있던 유쾌한 경험이었다.
렌스벨트와 마르텐 바스가 협업한 ‘바 바스’의 전경.
오는 9월 문을 여는 식스 갤러리의 ‘시스터 호텔’.
03 GREEN AND PEACE
식물로 주변 환경을 꾸미는 플랜테리어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은 잎이 넓적한 관엽식물에서 식물의 선과 형태에 집중하는 쪽으로 유행이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플랜테리어는 밀라노 시내 곳곳을 싱그럽게 만들어주었다. 최근 문을 연 밀라노 스타벅스 리저브 앞의 테라스라든지, 이미 너무나 유명한 10 꼬르소꼬모의 정원 등 식물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는 예시가 많았다. 리나센테 백화점과 두오모 광장 사이에 꾸며진 올리브나무 거리가 대표적일 것이다. 독일 아티스트 자빈 마르첼리스 Sabine Marcelis가 리나센테 백화점의 의뢰를 받아 작업한 ‘더 그린 라이프 The Green Life’는 100년 넘은 거대한 올리브나무 16그루로 거리를 조성해 광장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평안과 휴식을 선사했다. 백화점 내부는 아크릴로 만든 오브제와 식물을 함께 배치해 색다른 분위기를 냈다.
자빈 마르첼리스가 작업한 올리브나무 거리.
식물을 활용한 다양한 조형물이 리나센테 백화점에 전시됐다.
04 청각에 집중하는 시대
올해는 청각을 일깨우는 전시가 속속 등장해 재미를 선사했다. 데님 브랜드 이스코 Isko는 월페이퍼 핸드메이드 X Wallpaper Handmade X 전시에서 흥미로운 체험 전시 <Denim Sound Textures>를 선보였는데, 데님의 종류에 따라 손을 대면 각기 다른 진동과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이스코는 데님을 입을 때마다 촉감 못지않게 소리에도 관심을 갖기 바란다는 위트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로사나 오를란디에서는 스튜디오 만달라키 Studio Mandalaki가 뱅앤올룹슨과 협업해 빛과 소리가 융합된 <Celebration of Light> 전시를 진행했다. 뱅앤올룹슨의 헤드폰을 끼고 사운드 아티스트 세르지오 라티 Sergio Ratti가 이번 전시를 위해 작곡한 음악을 들으면서 LED 조명으로 태양의 모습 등을 표현한 신비로운 빛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일로 러그 ILO Rugs는 손을 대면 조명이 꺼지거나 켜지면서 음악이 나오는 독특한 카펫을 소개했고, 이케아 Ikea는 스피커 브랜드 소노스 Snos와 협업해 스피커와 조명이 결합된 심포니스크 Symponisk 제품을 선보였다. 전시장은 두 가지 기능을 극대화해 보여줄 수 있도록 꾸며졌는데, 심포니스크가 들어 있는 여러 개의 수납함을 열면 각기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벽에 선반처럼 부착하는 등 공간 전체를 음악과 빛으로 채웠다.
스튜디오 만달라키에서 진행한 <Celebration of Light> 전시. ⓒMandalaki
ⓒIsko
데님 소재와 사운드를 결합한 이스코의 <Denim Sound Textures> 전시. ⓒIsko
이스코 데님으로 둘러싼 전시 공간. ⓒMark Cocksedge
일로 러그에서 선보인 카펫은 손을 대면 음악이 나온다. ⓒILO Rug
05 INTO THE UNIVERSE
우주, 5차원 세계 등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신선하고 창의적인 전시가 유독 많았다. 유명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리빙 브랜드, 신진 작가의 전시에서도 외계 행성을 본뜬 연출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라이탁과 마르니 Marni는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 발광하는 네온 조명으로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리게 했으며, 로 피에라 박람회장에서 만난 JCP 유니버스 Universe 부스는 구릿빛 금속과 유리 그리고 신비로운 색상의 보랏빛으로 물들어 현실과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는 듯했다. 기존의 부스 형태를 완전히 달리한 단테 Dante도 빼놓을 수 없다. 팔각형의 백색 공간에 형광등을 설치해 빛의 밝기를 극대화했으며 관람객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를 제외한 나머지 7개의 면에 가구를 매달았다. 관람객들은 우주 공간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며, 매달려 있는 가구는 중력으로 인해 마치 떠다니는 물체처럼 다가왔다.
보랏빛으로 신비로움을 연출한 JCP 유니버스의 부스.
단테의 부스.
이광호 작가와 왕&쇠더 스트륌 Wang&Söderström이 선보인 물결과 달의 풍경을 담은 <Tides>전시.
에어프릴 키 April Key의 오션 드라이브 Ocean Drive 컬렉션.
프티 프리처 Petite Friture의 뉴 프란시스 New Francis 테이블.
06 DESIGN MEETS HUMAN
수많은 전시를 둘러보다 보면 지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가장 흥미를 돋워주는 것은 디자인과 관람객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전시다. 올해 밀라노에서는 유독 직접 만지고 느끼며 디자인과 사람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전시가 많았다. 로 피에라 박람회에서 열린 비앤비 이탈리아 B&B Italia, 플로스 Flos, 루이스 폴센 Louis Poulsen이 함께한 부스는 4000스퀘어에 달하는 대형 공간으로 전시장에 들어서는 통로 사이로 재미난 스크린을 설치했다. 벽을 터치하면 빛이 들어오거나 그림이 움직여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한 것. 또한 조명관 에우로루체 Euroluce에서 선보인 아르떼미데 Artemide의 워킹 아웃도어는 사람의 신장을 센서로 감지해 그에 맞는 빛의 넓이를 조절하는 미래지향적인 조명이라 할 수 있다. 특수 팔찌로 몸의 상태를 체크해 디자인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본 구글의 <A Space for Being> 전시도 빼놓을 수 없다. 혁신적인 기술과 만난 디자인은 이제 소통의 키워드가 됐다.
아르떼미데의 워킹 아웃도어 조명을 야외에 설치한 모습. 사람의 신장에 맞게 빛을 조절해 특히 어두운 공간에서 존재감을 톡톡히 발휘한다.
비앤비 이탈리아, 플로스, 루이스 폴센이 함께한 인터랙티브 전시.
07 DICHROIC EFFECTS
마치 꿈을 꾸는 듯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새로운 유토피아로 초대 받은 듯 낯설지만 따뜻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연출이 많았다. 이는 세계적인 트렌드 정보회사 까린 인터내셔널에서 예측했던 ‘새로운 유토피아’ 테마와 일맥상통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비관하거나 배척하는 게 아니라 테크놀로지에서 기인한 현실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보다 나은 미래를 구축하고자 하는 ‘비전을 지닌 행동주의자’들의 움직임으로 이 테마를 해석한 것. 특히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색은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됐다. 세계적인 기업인 소니와 삼성의 전시장을 비롯해 베르사체 홈 Versace Home의 전시장 연출 그리고 올해 가장 주목받은 회사로 손꼽힌 만달라키 Mandalaki에서도 빛의 연출로 시공을 초월하는 이색적인 공간을 보여줬다.
환상적인 컬러 프리즘을 경험할 수 있었던 베르사체 홈 전시.
‘공명 Resonance’을 주제로 한 삼성전자의 체험형 전시장. ⓒSamsung
사이먼 슈미츠의 조명.
08 HOT COLORS
트렌디 컬러만 알아도 한결 멋스러운 공간을 연출할 수 있어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찾는 수많은 인테리어 관계자는 컬러에 집중한다. 올해의 전시 스타일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레트로 감성 혹은 미래적인 감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70년대 노스탤지어 무드를 느낄 수 있는 컬러가 유행의 중심에 섰다. 그중에서도 리치 브라운 컬러가 대세. 오래된 나무 가구의 색을 닮은 이 컬러는 심신을 안정시키는 색상으로 부각됐다. 작년에 이어 레드 컬러 역시 눈에 많이 띄었는데 작년보다 한 톤 가라앉은 차분한 레드의 선전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9년 메종&오브제에서도 많이 보였던 블루 컬러는 청록색 아쿠아 블루에서부터 진한 코발트 블루까지 폭넓게 유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국적인 파란색을 즐길 수 있었던 팔라초 리타의 전시.
블록처럼 연출한 까사나 Cassina 공간.
도시&레빈 Doshi&Levin이 디자인한 모르소 Moroso의 알마다 Almada 체어.
청량한 푸른빛의 소파는 보피 Boffi.
나뚜찌 Natuzzi의 아말리아 Amalia 체어.
로돌프 도르도니 Rodolfo Dordoni 디자인의 드레스업 Dressup 소파는 까시나.
09 집처럼 따뜻해진 사무실
사무 가구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로 피에라 전시장의 워크 플레이스 3.0 전시관은 ‘사무실의 봄’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공간 연출이 많았다. 몇 년 전부터 사무실이 내 집처럼 편안한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트렌드가 반영된 아르페르 Arper의 칠라 고 Cila Go 시리즈는 팬톤이 선정한 2019 트렌디 컬러인 리빙 코럴 색상으로 가방이나 책, 문구류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디자인과 기능적인 면을 두루 갖췄다. 오피스 가구 브랜드 페드랄리 Pedrali 역시 한층 더 화사해진 오르가테크 Orgatec 사무 의자를 선보였다. 또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회의를 할 수 있게 둥근 형태로 디자인한 스웨덴 브랜드 오펙트 Offecct의 폰트 Font 소파도 주목할 만하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아르페르의 칠라 고 컬렉션.
로 피에라 박람회장에서 만난 페드랄리의 전시 부스.
아르페르의 플렌싯 Planesit 컬렉션.
둘러앉아 회의를 할 수 있게 디자인된 오펙트의 폰트 소파.
10 확장된 선의 조명
조명관 에우로루체에서는 단연 라인 조명이 트렌드였다. 많은 브랜드에서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의 조명을 출시했는데, 단순히 형태만 날씬해진 게 아니라 원하는 대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 독특한 설치 방법으로 오히려 선의 존재감을 더욱 과시할 수 있었던 것. 플로스 Flos는 듀오 디자이너인 포르마판타스마 Formafantasma와 와이어라인 WireLine 조명을 선보였다. 이들은 고무 벨트 소재와 LED 광원이 만나 대조적이면서 우아한 선의 느낌을 표현했고, 비비아 Vibia는 디자이너 슈테판 디츠 Stefan Diez와 플러스마이너스 Plusminus 조명을 선보였는데 유연한 리본 형태로 대각선이나 수평, 수직 등에 관계없이 조명을 설치할 수 있었다. 이제 조명을 테이블 위에 놓거나 천장에 매달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차례다.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는 아르떼미데의 턴 어라운드 Turn Around 조명.
대각선, 수직, 수평 등 방향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비비아의 플러스마이너스 조명.
우아한 라인의 연속성을 보여준 플로스의 와이어라인 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