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놀라운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에 참여한 한국 작가 세 팀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예술을 문화로 바꾸다 카바 라이프 /
작가들의 예술 작품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아트 플랫폼 ‘카바 라이프’가 밀라노 토르토나 지역에서 흥미로운 전시를 열었다. 카바 라이프의 최서연 디렉터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ditor 문은정
카바 라이프 팀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그래픽디자이너 출신의 최지연 대표와 건축가 박치동 이사, 패션 매거진 에디터이자 기획자였던 최서연, 작년 하반기에 합류한 새로운 멤버인 봉완선 작가로 이루어진 팀이다. 같이 생산적인 일을 도모해보자고 이야기하다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시작되었다.
팀 이름이 카바 라이프다. 어떠한 의미인가? ‘ca-va.life’라는 도메인 주소도 무척 특이한 것 같다. 일단 스페인 와인인 까바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까바 와인은 보통 축하할 때 마시지 않나.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읽으면 카바가 사바라고 읽히는데 이는 ‘잘 지내세요?’라는 뜻이다. 집이라는 의미의 카사 Casa와도 비슷한 느낌이 있는데, 이렇게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카바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접근할 수 있는 도메인이 없었는데 우연히 ‘.life’를 발견했다. 예술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하고 싶었던 건데 이거다 싶었다.
카바 라이프는 미술 작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다양한 것을 다룬다. 범위가 어떻게 되는가? 재미있게도 예술이라고 하면 액자에 들어간 그림만 생각하더라. 그러한 고정관념이 굉장히 뿌리깊게 박혀 있는데 우리가 판매하는 것은 예술 전반이다. 우리는 유무형의 것을 다룬다. 음악 파일의 경우는 음원 단위, 그것보다 더 작은 단위도 판매한다. 누군가의 비트나 누군가의 코러스 라인도 판매하는 식이다. 그것을 또 다른 창작자가 사서 자신의 작업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라이즈 호텔에서 선보이기도 했던 팝업 전시의 주제였다. 이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것은 아주 넓게 생각하면, 그냥 창의적인 활동이 더욱 많아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 덜 각박하게 사는 것. 내 하루와 하는 일에 영감이 되어주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한 작은 것이 모여 우리의 하루를 윤택하게 만들어주지 않나. 그게 예술의 역할이라고 본다. 그런 문화가 지금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각박하게 산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카바 라이프는 김진식, 황형신 등 수많은 작가의 작품을 판매한다. 작가들을 어떻게 모집했나? 예전부터 이 분야에 관심 있어서 지켜봐온 사람들이 많았다. 팬심으로 좋아했던 작가들도 있었고, 예전에 같이 작업했던 분들도 있었다. 우리가 지금 주목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지 살폈다. 전시도 많이 보고 인스타그램으로도 많이 검색했으며 작가들을 통해 소개도 받았다.
예술 작품은 사람들에게 다소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구매력을 가질 때 훨씬 친밀도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술을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상위 1%의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굉장히 먼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가 뚫고 가야 하는 큰 시장이다. 어포더블 아트 페어를 하는 분들의 방향성도 우리와 비슷할 것이다. 단지 우리는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에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커피를 사서 마시는 문화처럼 이게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돈이 돌지 않고 소비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선의만 갖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카바 라이프가 매력적인 소비 시장이 되어 사람들이 더 많이 구매하고, 그래서 이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 그러면 작가들이 더욱 대중에게 많이 알려질 것이고 이것이 짧게는 트렌드가 되어 일상에 침투할 수 있기를 말이다.
카바 라이프의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가격이 10만원대 미만부터 형성되어 있더라. 갤러리에서 판매하는 아트 작품은 가격대가 너무 높아 거리감이 있는데, 적당한 가격이 더욱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1만원부터 수백만원대까지 다채롭게 형성되어 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다양하게 구비해놓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작가들한테 가격 책정의 전권을 준다. 궁극적으로 작가들이 팔고 싶은 가격에 작품을 파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오프라인 팝업 행사도 진행하는 것 같더라. 기본적으로 투 트랙으로 가는 것이 우리의 방향성이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손쉽게 예술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관점을 가지고 말이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취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이 들어간 쉽고 직관적인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주제로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열고자 했다. 기획 차원에서 작가들이 하는 이야기를 매번 다른 눈으로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작품을 실물로 보고 싶어한다. 실물로 봤을 때 주는 감동이 있지 않나. 또한 우리의 눈으로 기존 갤러리나 상업 씬에서 하지 않는 에디팅을 하고 큐레이션도 하고 싶었다.
이번 밀라노 토르토나에서 선보인 <CAVA.CITY.MILAN>도 팝업 형태의 전시인가? 그렇다. 올해를 기점으로 글로벌로 전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원래는 2020년부터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굳이 미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작가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봐도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스타그램으로 서로 메시지를 보내서 ‘네 작업이 재미있으니 같이 무언가 해보자’ 하고 쉽사리 교류하고 있더라. 그런 세대인 것이다. 우리도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
이번 토르토나에서 선보이는 <CAVA.CITY.MILAN> 전시는 어떠한 형태로 진행되었나?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간단한 퀴즈를 풀어야 했다. 일단 ‘Start Here!’이라고 적힌 기계의 버튼을 누르면 웹사이트 QR 코트가 인쇄된 영수증이 나오는데, 핸드폰을 사용해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나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8가지 질문을 풀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어울리는 작품에 대한 정보와 구매가 가능한 링크를 QR코드로 받아볼 수 있었다. 기계의 프로그래밍은 이동훈 작가, 마이크로 사이트의 설계는 팀 ‘업체’의 김나희 작가, 그리고 프로그램의 알고리즘과 디자인은 카바 라이프에서 맡았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전시에 방문했는데, 반응은 어땠는가? 다들 재미있어 했다. 우리가 애초에 의도했던 것도 경험적이면서 쉽고, 재미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하는 이 모든 행위는 사람들한테 쉽게 다가가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예술을 어려워하지 않나. 예술이 내 인생과 상관 있다는 인식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이 모든 행위의 중심이다.
확실히 예술과 밀접한 일상이 더욱 풍요로운 것 같다. 이번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여하기 위해 에어비앤비에 머물렀다. 전시장 근처에 있는 큰 집을 빌려 다 같이 있었는데, 주인이 학교 선생님이더라. 전시가 있었던 토르토나 지역이 부촌도 아니었고, 아주 평범한 에어비앤비였다. 그런데 집에 꽃도 나무도 그림도 많았다. 그건 대단한 작품이 아니었다.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구매하거나, 동네의 조그마한 갤러리에 놀러 갔다가 하나씩 집어온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활이, 마치 마트에서 사과를 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자들이 만든 것을 사는 문화가 무척 자연스럽더라. 작가들은 세상의 소금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훨씬 더 잘살아야 하고 지금보다 더욱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소비자들은 이런 창작물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어떻게 보면 우리도 크리에이티브 집단이다 보니 하고 싶은 것이 진짜 많다.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올해 풀어보려고 하는 것 중 하나다. 사은품으로 기획했던 카바 가방이 나왔고, 이제 스카프와 스커프도 판매할 계획이다. 갑자기 패션 브랜드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이것을 얼마나 더 위화감 없이, 접점을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일상용품에 예술을 접목하려고 한다.
/ 달의 세계 이광호 /
가구와 공간, 설치, 패션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펼쳐온 이광호 작가. 그가 올해 노루페인트로 잘 알려진 노루그룹과 <TIDE> 전시를 선보였다. 달이 해에 가려지는 모습을 표현한 이광호 작가의 가구가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어우러졌다. 이번 전시는 디자인 경영을 추구하는 노루그룹과 작가의 영민함이 돋보인 전시로 벤투라 센트랄레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editor 신진수
벤투라 센트랄레에서 진행한 첫 전시인 걸로 알고 있다. 공간을 둘러보니 어떠했나? 기차역이라는 장소가 주는 느낌과 각각 아치형의 돔 같은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노루그룹과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 2017년 노루그룹에서 해마다 진행하고 있는 컬러 트렌드 쇼에
강연자로 참여한 이후부터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컬러 전문 조직인 NPCI 부서에서 국내외 전시 관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담당하고 있다.
조류를 뜻하는 ‘TIDE’라는 주제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점을 보여주고 싶었나? 이미 내가 작업하고 있는 ‘The Moment of Eclipse’라는 주제의 작업과 노루그룹이 추구하는 방향 등을 토대로 기획된 전시다.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TIDE라는 제목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질문에서처럼 주제가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왕&쇠데르스트림 Wang&Söderström과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나? 역할이 따로 있었나? 왕&쇠데르스트림은 예전부터 눈여겨본 디자인팀이었고 이번 밀라노 전시를 위해 내가 직접 연락해 프로젝트 협업을 진행했다. 앞서 말한 대로 달과 관련된 이야기로 작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전체적인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 기획을 요청했다.
가구나 설치 작품과 다르게 컬러에 집중해야 하는 전시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전시를 준비하며 겪은 난관이 있었다면?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다. 노루에서 생각하는 트렌드 컬러를 채용했고, 그 색채가 공간과 사물에 입혀졌을 때 보게 될 결과물에 집중했다.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근원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번 <TIDE> 전시가 근원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해답을 위한 전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고 생각해볼 수 있는 전시로 봐주면 좋겠다. 아름다움은 결국 서로 다른 취향과 감정이 만나 이뤄지는 것이지, 내가 아름다움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기에는 주제넘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작품을 구상하거나 디자인할 때 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한번도 비중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해본 적은 없다. 때로는 색채가 중요할 수도 있고 때로는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언젠가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해보고 싶은 전시를 상상해본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어울릴 수 있는 전시를 차근차근 준비해보고 싶다.
/ 시간을 담는 이들 스튜디오 오소 /
로사나 오를란디 갤러리에서 <Timeporary Clock> 전시를 선보인 스튜디오 오소는 아티스트 김소연과 디자이너 전준호가 함께 만든 프로젝트성 스튜디오다. 프랑스에서 영상과 설치, 네덜란드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한 이들은 사물과 공간, 사람의 관계를 아트와 디자인으로 결합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editor 문은정
로사나 오를란디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타임포러리 클락 Timeporary Clock 작업이 마무리되던 시점에서 작업을 어떤 방향으로 알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실물을 보기 전에는 우리의 작업을 시계가 아닌 사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로사나 오를란디에 포트폴리오를 보낼 기회가 있었다. 갤러리에서는 우리의 작업이 시계라는 것을 바로 이해하고 함께 전시를 해보자며 연락했다. 그렇게 첫 번째 전시를 갖게 되었다.
사진 형식의 시계를 선보인 작업이 무척 흥미롭다. 시간이란 당신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시간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은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지고 사용되다 버려지며, 그 삶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새긴다. 매일 지나치는 거리, 지금 우리가 머물러 있는 공간 또한 오랜 시간 한자리에 서서 겉으로는 시간의 흔적을 새기고, 안으로는 사람들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또한 순환하는 계절도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우리들 역시 많은 이야기를 우리 안에 쌓아가며 시간 속을 살아간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남기는 과거의 시간을 흥미롭게 여기고 있다.
사진 속 시계 배치를 위해 촬영한 오브제는 어떠한 기준으로 선정했는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아름다우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브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집 앞 카페에 버려진 유리병과 스테인리스 병은 그것들이 지닌 물질성이 아름다워 가져왔으며, 근처 보수 공사 현장에 버려진 부서진 벽돌은 상하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가 좋았다. 보통 이러한 오브제는 너무 익숙하거나 또는 거칠어 쉽게 지나쳐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물 각자의 이야기와 형태, 색, 질감 등 독특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
대표 작품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타임포러리 클락의 대표작은 그 첫 번째 시리즈인 ‘원 데이 원 타임 One Day One Time’이다. 하루에 하나씩 일상에서 발견한 사물을 이용해 시계를 만들어보자 하여 이름 붙였다. 일상의 오브제가 지니고 있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이용해 시계탑을 만들고, 그것을 사진이라는 매체에 담아 영속성을 부여한 뒤 시계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통해 멈춰 있던 사진 속 시간은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흘러가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시각각 생겨나는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된다.
스튜디오가 상하이에 있다는 것이 독특하다. 계기가 있는가? 스튜디오 오소의 멤버인 전준호가 네리&후 Neri&Hu 건축 스튜디오에서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며 상하이로 함께 건너왔다. 상하이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다. 끊임없이 변하며 도시 안에 과거와 미래,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곳이다. 이러한 도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요소가 타임포러리 클락 작업을 시작하는 데 영감을 준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다양한 스케일의 효과를 이용해 타임포러리 클락을 발전시켜보고 싶다. 건물 위에 거대한 시계를 놓고 촬영한 뒤 축소하면, 커다란 건물이 시계를 받치는 조그마한 오브제로 소유할 수 있다. 또 반대로 아주 작은 시계를 이용하면 조그마한 모래알도 커다란 시계탑이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브제가 될 수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가능성과 개념의 시계로 유쾌하게 확장시켜보고 싶은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