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망통은 당대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사랑을 받았던 도시다. 남프랑스의 호젓하고 럭셔리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이곳에는 에일린 그레이의 빌라 E1027도 있다.
망통 Menton에 위치한 레스토랑 ‘미라주르’가 2019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망통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프랑스 니스와 모나코보다 더 동쪽, 이탈리아 국경에 근접한 이 작은 도시는 교통이 발달한 화려한 대도시는 아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조금 더 고급스럽고 한적한 남프랑스의 여유를 누리고 싶은 이들의 특별한 애정을 받아왔다. 그중에서도 에일린 그레이 Eileen Gray(1878~1976)의 빌라 E1027은 방문하기 쉽지 않은 곳에 있지만, 예술을 사랑한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망통 최고의 명소로 손꼽을 만하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컬렉터 자크 두세의 집 인테리어를 도맡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감각이 있는 디자이너이자 스타일리스트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겨루기보다는 은둔을 택한, 그래서 실은 잊혀졌던 여성 디자이너이다. 적어도 그녀의 의자가 이브 생 로랑의 사후 경매에서 무려 400억에 팔리며 재조명을 받고, 퐁피두 미술관과 모마 MoMA에서 회고전이 이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망통 해변의 언덕 위, 차도 닿지 않는 곳에 직접 인부들과 함께 손수레로 짐을 옮기며 완성한 하얗고 아름다운 별장은 작지만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다용도의 가구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발현된 곳이다. 특히 배의 난간에서 볼 법한 방수천을 두른 테라스가 압권이다. 배의 형태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배를 탔을 때의 느낌을 눈높이와 감각으로 재현한 것이다. 연하의 남자친구 장 바도비치와 조용히 지내기 위해 이름도 둘의 이니셜을 따서 E1027이라고 지었지만, 장 바도비치는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며 연일 이곳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중에는 그레이의 허락도 없이 실내에 그림을 그려 그녀를 분노하게 만든 당대에도 이미 유명했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도 있었다. 그레이는 결국 이 집을 떠났고 그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1929년 이 집을 완공하고 그녀가 이곳에 머물렀던 기간은 실로 2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후 이곳에 남기로 결심한 이는 흥미롭게도 르 코르뷔지에였다. 바다가 없고 몽블랑 산을 보며 자란 스위스 출신의 그에게는 드넓은 바다와 따사로운 햇빛이 있는 망통은 그 어느 곳보다 매력적인 도시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건축의 모습을 모두 구현한 빌라 E1027이 있었다. 필로티, 긴 창문, 개방된 공간,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구성! 르 코르뷔지에는 마치 이 집의 문지기를 하듯 빌라 바로 위에 4평짜리 오두막을 짓고 이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다. 유명 건축가였지만 경제적으로는 궁핍했기에 식당 주인에게 캠핑장을 마련해주고 식당 옆에 작은 땅을 얻어 지은 집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곳에서 에일린 그레이를 쫓아냈지만, 덕분에 두 대가의 아이디어를 볼 수 있는 멋진 문화적인 명소가 네 개나 모이게 되었으니 그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