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사무실을 오픈했지만, 그 이전의 경력까지 합치면 꽤 긴 시간이 지났다. 어찌 보면 건축이라는 하나의 길을 오래 걷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일에 만족하는가?
일의 즐거움은 100%를 기준으로 할때 5% 정도 될까 싶다. 그런데 그게 무척 강렬하게 좋다(웃음). 그 외 나머지 95%는 똑같이 힘들고, 포기하고, 외롭고, 상처받는 일의 연속이다. 현실과 타협하는 일상이 있고, 내가 추구하는 이상이 있는 것이니까. 작업을 할 때는 콘텍스트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컨셉트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나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상하농원 프로젝트의 경우 공간이 갖고 있는 콘텍스트에 집중하려 한다.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 말이다. 이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땅, 사람, 건물, 나무, 시간까지. 그러한 부분을 고려하며 작업하고 있다.
상하농원에서는 올 하반기에 오픈 예정인 수영장, 목욕장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들었다. 당신의 그러한 철학이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10,000m2 규모의 부지에 위치하는 상하농원 수영장은 자연환경의 질서를 지키고, 가능한 한 땅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설계하였다. 아무리 친환경적인 건축 방식과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건축 행위 자체는 자연환경에 대한 훼손을 전제하고 계획할 수밖에 없다. 기존 대지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건물은 농촌의 창고와 집짓기에 사용되는 단순한 구조로 설계했고, 일정 기간에만 쓰이는 건물의 특성상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반시설을 두었다. 자연환기 시스템과 자연광 유입, 태양광 전지 조명을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계획 대지 전체에 바닥 포장을 최소화하였으며 1,100m2 규모의 메인 풀과 300m2 규모의 어린이 풀이 있는 야외수영장 주변에도 나무와 녹지를 두어 기존의 지하수 체계를 유지하면서 농원에 있는 자연스러운 수영장의 모습으로 설계했다. 목욕장은 기존에 위치했던 언덕을 상상하며 10,000m2 참나무 숲을 조성한 뒤, 그 안에 나즈막이 자리잡은 숲속의 목욕장으로 계획했다. 지상층의 건축면적은 492m2로 작은 규모이지만 내부와 외부 사이의 중간 영역인 열린 입구, 처마, 마당, 노천탕 등을 포함하면 실제 사용면적은 그 두배 가까이 된다. 상하농원 목욕장은 계절마다 내부의 크기가 달라지고 공간의 인상이 변하는 건축이다. 숲 사이로 내려가는 길과 만나는 입구,마당,처마,문,물,식물,천창,빛,굴뚝 등의 요소가. 안과 밖의 경계를 조절하는 장치다. 시각적 경험보다는 다른 감각에 열린 경험과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10여 년 후 참나무 숲이 무성해지고 건축을 중심으로 사람과 자연이 좋은 기억과 관계를 만드는 느린 장소가 되길 바란다. 사진으로는 기록되지 않는, 그 장소가 가지는 자연과 시간과 사람의 관계성이라는 흐름이 유기적인 건축으로써 상하농원의 장소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