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를 닮아 얼핏 보면 나무인가 싶지만 얇게 자른 가죽을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가죽공예품이다. 현재 작품을 전시 중인 에이치픽스 도산점에서 공예가 김준수를 만났다.
본래의 삶을 다한 가죽의 끈을 쌓아 올려 형태를 구축하고 표면에 옻칠을 입혀 단단함과 기능을 더한다. 김준수 작가가 ‘레더 볼 Leather Bowl’ 시리즈를 만드는 방식이다. 공예가 김준수는 현재 작업하고 있는 가죽과는 정반대의 물성을 지닌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대학생 시절, 가죽 가방을 만들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가죽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금속의 차갑고 단단한 물성과달리쉽게잘리고,쉽게조립할수있으며 부드러운 촉각적 성질이 마음에 들었죠.” 그는 가죽에 대해 더욱 심도있는 연구를 하기 위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작은 도시 산미니아토에서 진행된 가죽 워크숍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식물성 가죽을 생산하는 공장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일주일간 가죽의 품질을 테스트하는 실험실을 견학하고, 가죽의 생산부터 제품이 나오기까지의 전반적인 과정을 지켜보며 가죽을 공급 받아 작품을 제작해보는 워크숍이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죽의 물성을 보다 잘 보여주고, 특성이 강조된 작업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전시하고 있는 레더 볼 시리즈는 나무의 결을 만들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요. 가죽의 특성 중 하나가 문질렀을 때 광택이 나고 매끈해지는 것인데, 그런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 가죽의 단면을 모아 하나의 큰 면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레더 볼의 제작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우선 가죽을 잘라 끈 단위로 만든 다음 작은 점에서부터 시작해 접착제로 붙여가면서 그 형태를 만드는데, 기본적인 크기나 대략적인 셰이프 정도만 구상한 채 가죽의 텐션과 손의 강약을 이용해 형태를 잡아나간다. “한번에 완성되는 작업도 있는 반면 어느 정도 중간 단계에서 시간을 갖기도 해요. 잠시 시간을 두고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지 생각하는 거죠.” 이처럼 가죽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코일링 테크닉이라 부르는데, 쌓아 올리고 표면을 다듬어 매끈해진 상태에서 마무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능성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받아온 김준수 작가는 어떻게 하면 미학적인 아름다움은 가지고 가면서도 기능과 실용성을 갖출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 답은 바로 옻칠에 있었다. 가죽에 최대한 화학처리를 하지 않고 자연적인 마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옻칠이었던 것. 옻칠은 방수와 방염 효과가 탁월해 실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뒤따랐다. “색상이 단조로워진다는 단점도 있었어요. 갈색이 아닌 가죽도 옻칠을 하는 순간 색상이 균일하게 바뀌거든요. 제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가죽이 지닌 특유의 물성인데 너무 기능적으로만 치우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옻칠을 덜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8월 3일까지 이어지는 에이치픽스 도산점에서의 전시 이후 그는 9월 즈음 가죽으로 만든 파티션 작업을 KCDF 윈도우 갤러리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또 동갑내기 작가들과 함께 욕실과 파우더룸을 주제로 한 기획전과 영국과 파리에서의 페어와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더 다양한 곳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