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배 戒盈杯는 조선시대 우명옥이라는 도공이 만든 특이한 술잔이다.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본래 질그릇을 만들던 우명옥은 분원에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다 운 좋게 왕실의 진상품을 만드는 경기도 분원으로 들어가 명인 지외장의 제자가 되었고, 주경야독 도예를 공부해 순백색의 설백자기를 탄생시켰다. 이 설백자기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는 단박에 돈과 명예를 거머쥐었다.언제나 그렇듯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돈이 생기니 자연스레 기생집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우명옥은 술과 여자에 빠져 도예를 등한시하며 거만해졌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뱃놀이를 가서 향락을 즐기던 어느 날, 폭풍우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크게 놀란 우명옥은 스승에게 돌아가 용서를 구하고, 실학자 하백원에게 들었던 계영배라는 술잔을 만들었다고. 계영배는 사이폰처럼 잔의 7부가 차면 나머지 술이 밑으로 흘러내리는 원리로, 끝없는 욕심과 지나침을 경계하라는 깊은 뜻이 담겼다. 가만보면 술은 조금 부족하게 마시는게 맛있다. 적당히 마셔야 그 참된 맛을 음미할 수 있고,적당히 마셔야 내일 또 마실 수 있다. 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며칠전,집에서 대청소를 했다. 켜켜이 쌓여 있던 물건을 하나씩 정리했다. 하나씩 버리다 보니 웃기게도 소중한 물건이 눈에 띄었다. 버리다 보니 발견하게 되고 부족하니 소중해진다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몇 주 전의 일화도 생각난다. 원래 주말은 사람들도 만나고 밀렸던 일도 하며 바쁘게 보내는 편인데 그 주말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자고,배고프면 먹고, 다시 잤다. 무용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흥미롭게도 다음의 한 주를 생기있게 보낼 수 있었다. 마치 출발 전 도움 닫기를 한 것처럼. 아직 오랜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부족함의 미덕을 다시 짚어보게 된다. 부족해야 채울 수 있다. 가만 보면 행운의 숫자 7도 3할쯤 부족하지 않나. 무엇이든 조금 부족하게, 비우며 살자. 요즘 계영배를 떠올리며 자꾸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