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의 작가 시오타 치하루는 붉은 실오라기에 유한한 삶에 관한 사유를 남기기 시작했다.
가나아트센터의 2층 전시장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혈관을 연상시키는 붉은 실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공간 전체를 옭아매 마치 신체 속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자아낸다. 실을 활용한 작업으로 ‘거미여인’ 혹은 ‘실의 작가’로 불리는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이 지난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영혼의 떨림>에 이어 가나아트센터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녀는 교토 세이카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독일로 건너가 함부르크 조형대학에 진학한 뒤, 브라운슈바이크 예술대학과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학업을 이어나갔다. 시오타 치하루의 대표 장르로 손꼽히는 퍼포먼스 아트는 당시 그녀의 스승이었던 러시아 출신의 퍼포먼스 작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레베카 호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오랜 학업 과정을 거치며 페인팅이 가진 표현의 한계를 고민하던 그녀는 마치 회화에서 선을 그리는 것처럼 실을 활용한다면 단순히 면을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간을 예술 작품처럼 구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결과, 실을 주재료로 드로잉, 조각, 설치와 퍼포먼스까지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의 노력은 2015년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극찬을 받으며 빛을 발했다.
언뜻 보기에는 차분히 예술가의 길을 걸어온 듯하지만, 그녀의 삶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일로 갔던 그녀는 정착하기 시작한 2년 동안 아홉 번이나 거주지를 옮길 만큼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특히 두 번이나 찾아온 암 투병은 그녀로 하여금 인간의 실존과 관계, 나아가 죽음과 삶에 대해 탐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17년 암이 재발하자 그녀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투병 과정을 투영해 부드러운 가죽을 칼로 도려낸 후 천장에 걸어 축 늘어진 피부를 표현한 ‘Out of My Body’를 발표했다. 혈관이나 머리카락, 피부 등 신체의 일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그녀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불안정했던 시기에 완성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가나아트센터와 가나아트 나인원에서 동시에 개최된 이번 전시명이자 그녀를 대표하는 설치 작품인 ‘우리들 사이Between Us’에서도 시오타 치하루만의 도드라진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다. 300m²에 이르는 공간에서 총 12일간 작업을 진행했는데,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다양한 의자를 수집한 뒤 각각의 의자를 붉은 실로 연결했고, 나아가 전시장을 붉은 실로 옭아매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관객들이 실로 구현된 모든 형태의 관계와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언택트 시대를 맞이해 관계를 형성하는 새로운 방식과 정의가 도출되는 요즘, 그녀의 작품은 급격히 찾아온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타인과의 접점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는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