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하거나 버려진 재료를 활용한 작품 사조를 뜻하는 아르테 포베라가 정신적으로 점점 황폐해져가는 지금 시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상심에 잠긴 요즈음, 안타깝게도 ‘아르테 포베라’를 이끈 큐레이터 제르마노 첼란트가 서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르테 포베라는 가난한 예술을 뜻하는 말로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미술 운동이다. 버려진 재료와 연약하고 사소한 일상의 모든 것을 활용한 작품, 우리가 흔히 미술관에 가서 ‘ 이런건 나도 할 수있지 않을까’라고생각하기 쉬운 그런 작품 말이다. 그런데 나도 할 수 있는데 내가 하지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1960년대 이탈리아는 독일과 함께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오래된 문화유산으로 가득 찬 국토에는 새로운 공장을 지을 여력도 없었다. 아르테 포베라는 경쟁에서 탈락한 쓸쓸한 심정으로 가득 찬 상황에서 쓰레기를 모아 그래도 무언가를 만들며 다시금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런거 해서 뭐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런건 작품도 아니야’라고 폄하할게 뻔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은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화려하지도 않고 눈길을 끌기는커녕 미술관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작품이라는 표지판이 없었더라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작은 것들. 마치 어린아이들이 흙과 나뭇잎을 모아 소꿉장난을 하듯 작은 오브제에는 연금술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팝아트와 미니멀 아트의 세계적인 기세 속에 아르테 포베라는 그저 그런 미술 운동이 있었다는 몇줄의 기록 뒤로 오랫동안 묻혀져 있었다. 그러다 점차 아르테 포베라가 주목받는 조짐이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2017년 말 문을 연 아부다비 루브르 미술관에있는나무, 아르테 포베라의 대표 작가 귀세 페페논의 작품을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올해 로마 펜디 본사 앞에도 세워졌다. 산골 출신인 기세 페페논은 젊은 시절 나뭇가지 사이에 거대한 돌멩이를 올려놓는 실험을 한다. 몇년 후 다시 가본 자리, 나무는 돌멩이를 떨어뜨리지 않은 채 오히려 두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품고 양쪽으로 뻗어 자라고 있었다. 스스로 돌덩이를 치울 힘은 없지만 삶을 가로막는 거대한 짐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강인한 생명력과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진 땅 시칠리아에는 한때 의사였다 예술가로 변신한 알베르토 부리의 대지 미술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제는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화보 촬영 장소로 선택할 만큼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노인들만 사는 버려진 섬이었다가 예술의 섬으로 되살아난 일본 나오시마에도 야니스 쿠넬리스를 비롯해 다수의 아르테 포베라 작품이 있다. 아르테 포베라가 최근 들어 다시 존재를 드러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기계가 등장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사회 계층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며 SNS를 통해 끊임없이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요즘 시대는 인간을 황폐화시킨다는 점에서는 전쟁과 다름없다. 위대한 인물을 동상으로 세워 우러러보는 시대는 갔다. 까닭 모를 소외감에 빠져들 때 아르테 포베라 작품은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준다. 소외되고 상처받은 가난한 상황을 숨기지 않고 도리어 드러내는 아르테 포베라의 예술이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고 간2020년 이후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