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매년 4월에 개최되던 밀라노 가구 박람회가 취소됐다. 아쉬움을 달래고자 상반기에는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디자인 뉴스를 접할 수 있었고, 9월 28일부터 10월 10일까지는 밀란 디자인 시티 Milan Design City라는 이름으로 이전의 장외 전시인 푸오리살로네의 맥을 이었다. 과거 전시의 규모나 수준에는 못 미쳤지만 브랜드의 쇼룸과 크고 작은 전시를 통해 세계적인 디자인 페스티벌을 기다렸던 이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모델을 구성할 수 있는 베리 심플 키친 ⒸVery Simple Kitchen
작은 집에도 적용할 수 있는 주방 가구 ⒸVery Simple Kitchen
이토록 간단한 주방
코로나 시대를 맞아 집콕 시간이 길어지면서 요리와 주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세계적인 현상인 것이다. 이름처럼 정말 단순한 주방 가구를 보여주는 베리 심플 키친 Very Simple Kitchen은 밀란 디자인 시티 전시로 밀라노 시내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했다. 볼로냐 지역 태생의 베리 심플 키친은 각각의 요소를 소규모 제조사와 지역 회사와 연계해 전문성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획일적인 주방에서 탈피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단순하지만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제품으로 구성돼 있으며 자작나무, 합판, 석영, 스테인리스, 도자와 석재, 콘크리트 등 소재의 폭도 넓다. 각 모듈은 프리스탠딩 제품으로 어디에나 손쉽게 설치할 수 있고, 컬러도 다양해서 밀레니얼 세대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하다.
web verysimplekitchen.com
에레즈 네비 파나의 영상 작품 ⒸOfer Kantor
직접 키운 바나나나무 섬유로 만든 빈백 체어 ⒸDor Kedmi
TROPICAL MILAN
올해 파이브 비에 5 Vie 구역은 이스라엘 디자이너 에레즈 네비 파나 Erez Nevi Pana의 영상 작품 ‘트로피컬 밀란 Tropical Milan’으로 뜨거웠다. 그는 비건 디자인을 선보이는 디자이너로 나무 스툴을 사해에 담가 자연스럽게 소금이 엉겨 붙도록 만든 솔트 스툴 Salt Stool을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 그가 만든 영상 작품은 환경을 돌보지 않은 현세대가 결국에는 한 가지 작물, 바나나나무로 둘러싸인 숲에서 고치가 되어 무기력하게 지내는 모습을 담았다. 기후변화로 인해 밀라노는 점점 더 습하고, 모기와 같은 해충이 늘어났으며 식량 부족과 빈곤을 야기하는 단일 작물 재배가 늘어났다. 바나나나무처럼 말이다. 영상은 굉장히 잔잔하게 흘러갔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직접 키운 바나나나무의 잎사귀에서 얻은 섬유로 제작한 가구도 함께 전시했다. 두오모 광장 근처에 심은 바나나나무나 야자나무가 더 이상 장식용이 아닌 밀라노 전체에 서식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web ereznevipana.com
루벨리, 제르바소니, NLXL, 리첸바흐와 세락스 Reichenbach+Sera가 협업한 탐마다 전시
평범하지만 놀라운 패턴
파올라 나보네 Paola Navone는 그녀의 스튜디오 가까이에 있는 토르토나 지역에 위치한 슈퍼스튜디오 Superstudio에서 여성 디자이너의 전시 중 한 섹션에 참가했다. 그녀의 디자인 철학이기도 한 탐마다 Thammada를 컨셉트로 루벨리 Rubelli, 제르바소니 Gervasoni, NLXL 등의 브랜드와 협업했다. 탐마다는 단순하고 평범한 것을 가리키는 태국어로, 일상의 작은 물건도 의외로 특별하고 놀라운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파올라 나보네의 디자인은 키치하고 유머러스한 감성이 깃들어 있다. 탐마다는 빨강과 청색의 꽃과 도트, 디지털 위장 패턴이 어우러진 경쾌한 느낌이다. NLXL의 벽지부터 제르바소니의 가구와 스와치의 시계로도 만나볼 수 있는 탐마다 컬렉션은 칙칙한 전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web www.superdesignshow.com
원광식 작가의 종 ⒸDongchun Lee
다채로운 컬러가 인상적인 허명옥 작가의 작품 ⒸDongchun Lee
김정옥 작가의 향 거치대 ⒸDongchun Lee
박홍구 작가의 추상탄화 항아리 ⒸChaehun Lim
강명선 작가의 프롬 더 길리터 ⒸChaehun Lim
KOREAN CRAFT
디지털 언택트 전시가 함께 진행된 이번 푸오리살로네에서는 익숙한 한국의 멋 또한 만나볼 수 있었다. 한국공예디자인 문예진흥원에서 주관한 <오감과 색채의 향연> 전시가 그 주인공. 나전, 금속, 도자, 한지 등 전통적인 소재를 활용해 총 17명의 작가가 출품한 12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테마는 크게 3가지로, 무대 중앙에 설치된 종과 한지, 비단 등을 배치한 Shape of Sound,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와 옻칠 페인트 등을 통해 표현한 조형과 색채를 발견할 수 있는 Color of Color, 피어오르는 향 연기와 함께 명상 오브제와 한지 콜라주를 선보이는 Shape of Scent 등으로 구성된다. 한국 전통 공예만이 지닌 고유의 멋스러움을 온라인으로 쉽게 감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부유하는 듯 걸려 있는 카본 프로그 체어가 공간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리빙 디바니의 새로운 쇼룸
세계적인 거장 피에로 리소니가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인 브랜드 리빙 디바니가 밀라노에 새로운 공간을 오픈했다. 그는 이곳이 단순한 쇼룸이나 매장이 아닌 리빙 디바니가 이제껏 유지해온 본질이 발현되는 장소가 되길 바랐다. 따라서 근사하게 꾸민 연극의 한 장면이 구현되는 것을 상상하며 공간을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공간에 들어서면 무중력 상태를 재현한 듯 부유하는 피에로 리소니의 카본 프로그 Carbon Frog 체어와 금속 시트에 반사된 네온 빛이 신비롭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는 또한 리빙 디바니가 다시금 세계에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이제 이곳이 핵심 창구가 될 거라 전하며 다음을 예고했다. 새로운 이야기와 함께 찾아올 리빙 디바니의 다음을 기대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