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너머 전 세계를 사로잡은 86세의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에게 나이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로즈 와일리를 소개한다.
작가로서의 꿈을 뒤늦게 펼치기 시작했다. 살아온 배경이 궁금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는 소녀였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는 결혼한 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 하셨으며, 항상 내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포크스톤 앤 도버 예술대학에서 공부할 때 여성은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당시 많은 여자들이 그랬듯이 그저 결혼 전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교양학교를 다니는 수준이었다. 21살의 나이에 작가인 남편 로이 옥슬레이드 Roy Oxlade를 만나 결혼한 뒤 아이를 낳았다. 이후 교사로 일했지만 남편이 벌어오는 돈에 의존하며 가정을 꾸렸다. 우리는 부모 두 사람이 모두 작업 활동을 할 경우 아이들한테 좋지않은 환경을 제공할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작업보다는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현재까지도 그 결정에는 후회가 없다.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특별한 계기는 사실 없다. 다만 어느날 문득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도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했으며,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족들도 내가 늦은 나이에 다시 그림 그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중년에 들어서자 자연스럽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게 매일매일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상을 받고, 세상이 주목하는 지금도 나는 매일 그림을 그린다.일상적인 것을 주제로 천진하고 순수한 표현력을 입힌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궁금하다.
예술이란 개념은 참 까다롭다. 때문에 꼭 작품이 예술처럼 보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볼펜과 복사 용지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고 굳이 ‘예술적’인 소재를 찾지 않는다. 나의 작업이 진지하다고 생각하지만 장난스러움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장난스러움’보다는 ‘불손함’이 더 마음에 든다. 작품의 소재가 장난스럽고 뒤죽박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항상 진지한 자세를 추구한다. 어쩌면 아주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물리학의 양자처럼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하고 또 그 경계에서 생각한다.한계없는 다채로운 컬러 사용도 눈에 띈다.
나는 수많은 소재를 다루고 머물러 있기보다는 항상 변화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컬러 또한 마찬가지다. 반짝이는 장신구와 하이힐을 그린 후 새와 꽃들로 관심을 돌리곤 한다. 프림로즈(앵초)를 특히 좋아하는데, 봄에 해가 저물 무렵 햇빛이 점점 어두워질수록 연하고 노란 꽃은 점차 환한 빛을 띤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조화는 르네상스 페인팅이든 지하철 광고에서 볼 수 있든, 친구의 옷이나 정원의 꽃에서도 항상 아름답다.바닥에는 신문지가 가득하고 벽에는 물감 자국이 묻어 있다. 작업실이 갖춰야 할 요건이 있나?
누군가는 나의 작업실을 보고 창작의 카오스라 한다. 나는 이곳을 자유로운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항상 물건을 잘 치우고 정리정돈을 잘하라고 교육 받았다. 누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반항이다. 물감 자국이 두껍게 묻은 채 굳어진 신문지 뭉치와 페인트 병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무엇에도 방해 받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한 나의 작업실. 표현주의 회화나 콜라주처럼 보이지 않나. 이 정신없는 나의 스튜디오는 나의 기억 속 모든 표현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예술적 파라다이스가 분명하다. 이런 자유로움 때문일까, 내 그림은 유쾌하고 강렬하다.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원래도 나의 일상, 평범한 기억에서 작품의 주제를 찾았는데, 팬데믹으로 활동 범위가 좁아지니 더욱더 내 주변의 것들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집 안의 소품, 정원의 잎사귀, 기차길 옆에서 자라는 잡초 등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사소한 것의 시각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가식적으로 꾸미지 않고 진실하게 다가오는 작품에는 그만 한 가치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