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 페리앙과 피에르 잔느레를 단순히 연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한때는 분명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그들은 각자의 삶과 추구하는 바가 달랐던 동료이자 동등한 디자이너였다.
ⒸCharlotte Perriand Archives
여성에게 불평등했던 시대에 자신만의 길을 찾은 샤를로트 페리앙. ⒸArchives Charlotte Perriand_ADAGP / Photo Jacques Martin
페리앙과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Charlotte Perriand Archives
샤를로트 페리앙(1903~1999)에 대한 재발견과 추모의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디자이너의 작품은 삶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회사에 퇴짜를 맞았다 다시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1927년 살롱 도톤느 전시회 출품작을 인상 깊게 본 르 코르뷔지에가 그녀의 집을 직접 방문해서 보고 합격점을 놓은 덕분이다. 작은 다락방 아파트를 효율적으로 배분한 공간은 젊은 디자이너의 라이프스타일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사촌 동생이자 함께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던 피에르 잔느레(1896~1967). 서른한 살의 잔느레는 일곱 살 연하의 열정적이고 똑똑한 데다 아름답기까지 했던 샤를로트 페리앙에게 한눈에 반했지만, 소심하고 수줍은 성격에 차마 고백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페리앙은 이제 막 결혼한 24세의 젊은 유부녀였다. 그녀의 남편이 르 코르뷔지에 사단의 사람들과 함께 찍힌 사진에 등장한 적도 있지만, 아내가 집에 있길 바라는 남편과 이제 막 날개를 펼치려 하는 젊은 여성 디자이너의 결혼은 오래가지 않았다. 1930년 페리앙은 이혼했고, 이후 매일 사무실에서 마주치는 피에르 잔느레와 연인이 되었다. 이 셋은 마치 한 손에 달린 세 개의 손가락처럼 협력적으로 일했다. 르 코르뷔지의 사무실에서 10년을 보내며 경이롭고 흥미로운 경험을 많이 쌓았지만, 1937년,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페리앙은 독립을 결심한다. 1940년 독일군이 침공하자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잔느레와 그녀의 사이도 자연히 멀어졌다. 일본 통상산업국의 디자인 고문이 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멀리서 보면 분명 화려한 생활이지만 외로운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를 초청하면 자연스레 르 코르뷔지에를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본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그녀는 1942년 일본을 떠나도록 강요받는다.
오리가미에서 영감을 얻은 옴브라 체어.
독특한 구조와 컬러가 특징인 누아주 책장.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까시나의 LC4 체어.
미국을 통해 프랑스로 돌아가려던 계획도 전쟁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가고 베트남으로 추방당하는데 이곳에서 그녀의 두 번째 결혼이 시작된다. 당시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그는 그곳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프랑스인이었다. 1944년 딸 페르네트를 낳지만 그들의 결혼도 오래가지 않았다. 1947년 페리앙은 마침내 프랑스로 돌아왔고 이후 1999년 96세가 될 때까지 활발하게 제2의 인생을 펼쳐 나간다. 잔느레의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1940년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하고 페리앙이 일본으로 떠날 무렵, 그도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고향 스위스로 돌아갔고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1950년대 초 르 코르뷔지에가 인도 찬디가르의 프로젝트를 맡자 함께 인도로 떠났다. 르 코르뷔지에는 일만 시작했을 뿐 마무리는 잔느레의 몫이었다. 요즘 인기 있는 마치 V자를 엎어놓은 다리 모양의 의자도 바로 인도 프로젝트 중 고안한 작품이다. 그는 르 코르뷔지에가 떠난 이후에도 15년 이상을 머무르며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를 이어나갔다. 1965년 르 코르뷔지에가 사망하자 그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고, 2년 후 인도에서 얻은 병환으로 71년의 생을 마감한다. 피에르 잔느레와 샤를로트 페리앙. 세기의 로맨스라 불릴 만한 이들의 사랑은 짧았고,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사랑이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에 몰두한 것인지, 일에 몰두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사랑이 더 지속되지 않은 것인지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치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 프랑스, 일본, 인도를 오가는 그들의 삶은 작품 속에 오롯이 남아 많은 영감을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