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구의 시선은 마주하는 모든 현실의 이면에 초점을 맞춘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그저 안주하며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과감히 들춰내는 그는 이윽고 이를 예술이라는 형태로 치환한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거대한 박물관 단지인 훔볼트 포럼 Humbolt Forum의 2층 통로 사이에 칠흑같이 검은 청동 깃대가 나타났다. 천장을 뚫은 듯한 형태의 구조물은 잔혹한 식민 지배를 자행했던 독일을 정확히 겨냥한다. 식민지 통치 시대, 독일이 획득한 수천 개의 민족학적 유물이 전시된 이곳에서 건축가 겸 예술가 강선구가 지난날 독일이 저질렀던 민족적 과오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마치 거대한 창을 닮은 작품 ‘제한의 동상 Statue of Limitations’을 통해 대담한 목소리를 대중에 전달하는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독일 훔볼트 포럼에는 설치 작품 ‘제한의 동상 Statue of Limitations’이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을 두고 한 인터뷰에서 식민주의 역사의 범죄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작품을 만들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 ‘제한의 동상 Statue of Limitations’은 독일의 식민 통치 시대에 다른 나라로부터 갈취한 소장품을 모아 이를 전시하며, 국가적 과오의 성찰을 시도하려는 훔볼트 포럼의 문화 프로젝트에 대한 나의 메시지를 던지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한국인들이 오래도록 싸워야만 했던 일제강점기와 같이 당시 독일은 그들의 식민지, 특히 오늘날 나미비아 민족을 간악하게 착취했다. 심지어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포로들이 참수된 동료들의 두개골을 닦게 하거나, 과학 발전을 위한 연구라는 미명하에 그들을 유럽의 여러 대학과 박물관에 실험체로 투입시키는 인종차별적이며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상황도 빈번했다. 식민지에서 갈취한 수많은 유물은 끔찍한 고통과 핍박의 산물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식민주의의 범죄에 대해 새롭게 논의할 필요성이 논의되며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에 대해 책임지기보다는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잔존하고 있다. 이는 세계 사회가 맞닥뜨려야 하는 도전이라 생각한다.
마치 창이 바닥을 뚫고 올라온 듯 설치되는 방식도 흥미롭다.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가? 아프리카가 독일의 식민 지배 통치를 받던 기간에 독일로 강제 이주된 아프리카인들은 동등한 인격을 지닌 인간이 아닌 그저 가축과 같은 동물처럼 취급받곤 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커다란 공공 광장 옆에 공원을 개조해 동물원에 있는 동물처럼 베를린 대중에게 그들을 전시할 계획이었으나,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 계획이 무산됐다. 해석에 따라서는 창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청동을 소재로 제작한 11m가량의 조각상인 ‘제한의 동상 Statue of Limitations’은 깃발이 달린 깃대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거대한 깃대는 훔볼트 포럼 내부에서부터 시작돼 지상을 관통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런 이유로 훔볼트 포럼 내부에서는 오직 천장을 뚫는 듯한 깃대의 하단부만 볼 수 있고, 날카로운 상단부는 베를린 웨딩 구역에 위치한 아프리카 지구인 나흐티갈 플라츠 Nachtigalplatz에 치솟아 있는 것을 곧 볼 수 있다. 깃발과 깃대는 당시 식민 지배를 일삼았던 독일인에게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모든 피지배인을 위한 애도를 상징한다.
‘제한의 동상 Statue of Limitations’이라는 이름과도 연관성이 있는가? 이러한 제목은 법률 용어인 ‘제한의 법령 Statute of Limitations’을 차용한 것이다. 1904년부터 1908년까지 독일 식민지 군대는 오늘날의 나미비아 공화국 영토에서 수만명을 학살했음에도 전쟁 범죄 및 반인륜적 범죄 조치에 관한 UN협약에 의해 규제받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그들이 자행한 집단 학살은 여전히 함구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작품의 제목에 반영하고 싶었다.
독일 역사의 어두운 면을 당신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품은 이뿐만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작품 ‘하이마트 하이마트 Heimat Heimat’를 통해서도 독일의 역사에 기반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작품 ‘하이마트 하이마트 Heimat Heimat’는 2024년에 완공될 베를린 내무부 신축 건물에 깔릴 바닥재다. 전체 면적은 약 600m2이며, 맞춤형 콘크리트 타일로 제작되어 13개 층에 설치된다. 타일에 새겨진 언어는 1929년 독일의 유대인 작가 컬트 투콜스키 Kurt Tucholsky가 쓴 ‘하이마트 Heimat(고향)’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발췌한 것이다. 투콜스키는 당시 기득권층인 나치에 의해 침해당하고 착취받는 유대인들과 나아가 그들에게 핍박받는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지켜내기 위해 이 에세이를 썼다.
이런 작품을 보면서 역사와 예술 사이에 놓인 일련의 관련성을 보았다. 당신은 역사와 예술이 과연 어떤 관계선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나? 역사의 개념 또한 예술과 마찬가지로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사치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예술과 역사라는 것은 단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사실과 객관적인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1차원적인 행위나 장르가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함의를 발견하고 관찰해 이를 이해하는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무한한 기회를 제공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서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내게 현실은 놀라운 것으로 가득하다. 그에 대해 늘 기민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앞선 작품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듯 건축가로 활동을 시작해 건축에 기반한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건축의 어떤 매력에 끌렸는가? 원래 미술 전공으로 진학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당시 미술을 가르쳐주신 은사님께서 독일 아헨 공과대학의 1학년 건축학도들한테 과제를 내주신 적이 있었다. 그때 접했던 시각적 표현에 대한 건축적 접근에 매료됐다. 건축이 삶의 환경과 삶의 방식을 형성하는 방법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또한 미술이 지닌 특유의 배타성과 사회적 제약에 비해 건축은 내게 더 평등한 학문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건축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한 이후 대학의 교육 체계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수님들께서 내 작품을 보시곤, 예술가가 아닌 건축가가 되고 싶은 것이 확실하냐고 물었을 정도다. 건축에 대한 교수님들의 접근법과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론을 따르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 거다. 이후 스위스의 헤르초크&데 모이론 Herzog&de Meuron의 건축 인턴십 과정에서 처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건축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졸업 후에도 한동안 그곳에서 근무했다.
당신의 건축가적 기반은 앞서 말한 ‘제한의 동상 Statue of Limitations’ 등에서도 드러나지만, 우르휘테 Urhütte에서도 내공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뭇가지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독일어로는 Urh tte라 부르는 것은 건축학에 사용되는 개념이다. 인류에게 건축이라 불리는 일련의 것에 대한 시작점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건축 구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두 개의 Y자형 나뭇가지를 이용해 이러한 질문을 구현하려 해봤다. 이 나뭇가지들이 서로 맞물리게 두어 가장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기하학적 구조이자 안정적인 설계 구조를 표현한 것이다. 나는 오늘날 인류라 불리는 종족의 모습에 근접하지조차 않은 과거의 누군가가 이 원시적이지만 놀랍게도 건축적인 행위 하나로 지금 우리가 영위하는 건축과 예술의 시작을 위한 길을 닦았다고 상상하고 싶다.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는가? 내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아마 무의식적인 과정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어쩌면 우연히 마주치는 것을 통해 얻을수도 있겠다. 사실 아마도 이 둘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