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기증은 한국 미술계의 최대 빅뉴스다. 선대 이병철 회장부터 미술품을 수집하여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을 건립한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바이지만, 이번에 2만 3000여 점을 기증하면서 그 규모가 드러났다. 이 중에는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국보급 작품을 포함해 우리나라 근현대 작가의 작품 중 가장 고가에 속하는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유영국의 작품 수십여 점뿐만 아니라 모네, 르누아르, 달리 등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어 화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연간 미술품 수집 예산이 약 88억원 정도에 불과한 한국 미술계의 실정에서 보자면 총 예산을 더해도 한 점 살까 말까 한 작품을 한번에 기증받게 된 것이다. 각 작품들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뿐만 아니라 박수근 작품은 박수근 미술관에, 대구 출신의 작가 이인성의 작품은 대구미술관 등으로 테마에 맞게 각 지역으로 고루 분배되었다.
해외에서는 기증자의 이름이 전시실에 새겨지는 등 민간 후원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유독 부정적인 시선이 함께하는 건 아직 미술 문화에 대한 제도적인 방편이 미비하고, 그간 미술품 구입이 탈세나 자금 세탁과 연루된 부정적인 뉴스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증은 더욱 의미가 깊다. 첫째, 아트 컬렉션은 한 번 팔리면 다시 이렇게 모으기 쉽지 않고 국립미술관에 기증되어 시민들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국가의 문화 자신이 된다는 점에서 현금으로 받는 세금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이 현금처럼 인정받듯 상속, 증여세를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는 물납제, 기부금에 대해 조세 혜택을 주는 법안이 함께 거론되는 이유다. 둘째, 컬렉터의 마지막 꿈은 아마도 자신이 모은 작품을 팔아 경제적 차익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아름다움에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배려하는 데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하면 주변 사람들한테 거기 가서 한번 먹어보라고 권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작품을 두고 함께 보고 좋아하자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것이 바로 컬렉션 문화다.
고백하자면, 프랑스 유학 중 이건희 회장님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프랑스 출장 중 유명 미술관을 방문할 예정인데, 미술전문가가 동행해서 작품 해설을 해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시간을 공부하며 컬렉션했기에 박사과정 유학생보다 지식이 깊었을 텐데도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작품의 해설을 경청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셨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요즘은 작품이 10점만 있어도 자신을 컬렉터라고 소개하고, 아트 페어나 경매장에 가보면 20~30대 젊은 예술 애호가들이 북적댄다. 컬렉션은 갑부만의 호사스런 취미라는 인식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즐기는 예술 애호 활동이라는 방향으로 인식이 바뀌어나가고 있다. 고 이건희 회장도 나는 이렇게 컬렉션을 해왔다는 소회 혹은 좋은 컬렉터가 되는 법에 대한 책이라도 한 권 남기고 떠나셨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기 어려웠을 사회적 분위기가 아쉽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를 원하는 젊은 세대 컬렉터의 끝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이건희가 되어 작품 한 점이라도 미술관에 기증하고 떠나는 뿌듯한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