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한 작은 돌멩이에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대지와 그 위에서 인간이 쌓아올린 시간마저 유추하며 상상의 크기를 키웠던 정소영 작가가 이젠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4년 전, 가파도에서 그는 바다라는 대자연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초자연적인 현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목격한다. 무구한 생명을 품고 있을 만큼 여전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 시공간의 영역인 해양 그리고 그곳으로 끊임없이 접근하는 인간에게까지 확장된 상상과 사유는 결국 2021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 개최된 개인전 <해삼, 망간 그리고 귀>와 그가 구현한 9점의 작품을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가 4년 만의 개인전이라 들었다. 사실 꾸준히 그룹 전시나 아트 레지던시 등에서 여러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이를 한데 모아 보여주고 싶었다. 작업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을 이 또한 필요했는데 오랫동안 함께해온 배은아 기획자와 손을 잡기로 결심했다. 내가 설치 혹은 조각 등의 작품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면, 그는 그것들에서 파생하는 이야기를 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 덕분에 나의 조각과 내가 그것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둘러싼 이야기가 이곳에 들어있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전시를 ‘사건’이라 불렀다.
구태여 사건이라 칭한 이유가 있나? 모든 건 환경에 따라 형태가 변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나 같은 조각가가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작품은 얼핏 고정된 형태를 지니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타인이 지닌 관념과 시각을 거치게 되면 결국 기억에 새겨지는 형체는 달라진다. 감상이라는 행위는 자연히 나름의 해석을 거쳐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인데, 이러한 시퀀스를 거치며 고정되어 있던 물체가 받아들이는 이에 의해 변화하고 확장되는 것이다. 그것이 일련의 ‘사건’처럼 느껴졌다. 이번 전시에선 이 같은 변화와 움직임에 대해서도 주목해보고 싶었다.
이전에 선보였던 ‘움직이지 않고 여행가기 Traveling without Moving’와 같은 작품에서는 ‘사건’의 기반이 땅에 있었던 반면, 이번 전시에선 나아가 바다라는 더욱 광활하고 미지의 공간에 주목했다. 인간이 태어나서 본인이 살고 있는 곳을 어떻게 점유하고 그곳에서 어떠한 관계를 맺게 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당연히 살고 있는 이 땅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우리는 그것에 어떤 인위적인 개념을 부여해왔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더라. 그러다 4년 전, 한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위해 가파도에 가게 되었다.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자그만한 이 섬이 이제껏 생각하고 있던 공간에 대한 인지가 굉장히 소박한 것임을 일깨워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아주 작은 섬이었는데 말이다. 똑같은 곳에서 지평선을 바라볼 때 어느 날은 바위섬이 보이다가도 또 어느 날은 온데간데없고. 해수면은 높아졌다 이내 낮아지는 등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미지의 현상이 요동치는 곳이었을 줄이야. 온통 물에 둘러싸이다 보니 날씨에 좌지우지되기 일쑤인데, 자연에서부터 오는 위압감과 한계에 대해 많은 걸 느끼게 돼버린 거다. 그리고 이 미지의 요소가 가득한 공간으로 조금 더 다가가고 싶어졌다. 저 바다 깊은 곳 언저리와 인간은 과연 어떻게 바다를 대하고 인지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생각의 흐름은 저 깊은 바다, 심해까지 닿았다. 심해에 대한 조사를 하다 망간 단괴라는 자원을 알게 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필수영양소가 되기도 하고 미래를 위한 에너지 자원이라고도 불릴 만큼 많은 주목을 받는 게 바로 이 망간 단괴다. 해심 2000~3000m쯤에 마치 감자처럼 깔려 있다고 하더라. 비행기 엔진이나 반도체 등에도 쓰이는 이 물질은 사실 1mm 정도가 자라려면 몇 천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전혀 모른 채 꾸준히 자라온 것들인 셈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를 캐내기 위해 가열차게 기술을 발전시키고, 국가 간의 협약을 통해 바다를 국가적 입장에 따라 임의로 나눈다. 우리와 상관없이 자라난 애들인데도 말이다.
해삼, 망간 그리고 귀. 얼핏 봐선 쉽사리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는 단어가 나열된 듯한 제목의 시작점도 이 같은 생각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망간에 대한 이야기를 배은아 기획자에게 전하니 그녀는 덜컥 ‘해삼!’이라 외치더니 이 생물에 대해 내게 얘기해주더라. 바다의 삼이라고도 불리는 이 생명체 또한 에너지 자원으로 쓰일 뿐 아니라, 좀체 수명을 알 수 없고 잘라내도 다시 자라나는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생물이라며 말이다. 바다라는 미지의 공간은 이렇듯 무한의 시간대를 내포한 물질과 생명체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이것에 대한 접근을 계속해서 시도하는 노력을 반복한다. 이때 떠올린 것이 귀다. 귀는 소리를 듣는 청각기관인 동시에 신체의 평형과 속도를 잡아주는 기능을 행한다. 나는 미지의 것들을 단지 눈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껏 그것들을 알지 못했던 만큼 미지의 것들에게 평형을 유지한 채 감각적인 접촉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해삼, 망간 그리고 귀>는 결국 바다가 대변하는 미지의 차원의 요소와 그리고 그것을 사유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비유인 셈이다.
결국 질문의 방향이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셈이다. 그렇다. 바다는 결국 여러 이야기와 논점을 촉발하는 플랫폼처럼 기능한다. 비록 물리적인 접근을 불허하는 공간이라도 그에 대한 상상의 나래는 얼마든 펼칠 수 있다. 우리는 마치 압도될 것만 같은 이 미지의 요소를 통해 가령 초자연적인 문제에서부터 인간과 국가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바다를 소유하고 인위적으로 구획하며 점유하려는지 등으로까지 사유의 층위를 무한히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바다를 보면서 느꼈던 상상과 생각이 이곳에 그려졌듯, 관객들이 이 전시를 통해 다시 한번 자신만의 생각의 궤적을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주로 선보이던 조각이나 설치 작품 외의 작품도 더러 눈에 띈다.
이번 전시 작업을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 대개 구상과 도면을 만들면서 협업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의례적이나, 간혹 내가 아니면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2층에 전시된 작품 ‘이미륵의 거울’이다. 여기저기 얼룩이 진 듯한 이 거울은 질산은과 암모니아수 등의 화학약품을 섞어 유리 표면에 뿌리면 표면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변질되는 방식을 차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재료에 대한 이해 약품을 뿌리는 방식 혹은 온도에 따라서도 반응하는 속도와 형태가 다른지라, 누군가와의 협업이나 도움이 아닌 오로지 나를 믿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