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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이전에 선보였던 작품에 색다른 접근 방식을 접목하고 싶었다. 가장 직관적인 재해석은 새로운 소재를 들여오는 것이었다. 그중 눈에 띈 것이 바로 금이다. 그 중에서도 마치 종이처럼 얇게 펴진 금박을 활용하고자 했다. 먼저 작은 입자처럼 금박이 입혀진 도자를 상상해봤다. 유연한 유리에 비해 금박은 작은 충격만 가해도 쉽게 찢어진다. 종이 같은 재질의 얇은 금박을 유리에 감싸듯 말아버리고 다시 유리를 덧입힌 다음 블로잉 작업을 거치면 그 속에 있는 금박이 자연스레 잘게 찢어지게 될 터였다. 이러한 상상에서 비롯된 형태와 질감을 연구하고 실제로 구현해본 결과가 바로 이번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도 달항아리의 존재감이 단연 돋보였다. 유리라는 소재로 구현된 달항아리인 만큼 확연한 정체성을 품고 있는 데다 오묘한 금빛을 발하니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달항아리라는 것이 백자의 형태가 더 눈에 익을 것은 자명하다. 그런 만큼 다른 시선을 입히고 싶었다. 그래서 도자에 유리라는 현대적인 물성을 도입하는 재해석을 시도했다. 나아가 이번 전시에는 노르스름히 꽉 차오른 달, 만월의 형상을 닮은 유리 달항아리를 선보이고 싶었는데, 금박이 지닌 효과를 톡톡히 봤다.
낯선 소재인 만큼 다루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도자에 그러데이션을 입히는 작업을 했을때만 하더라도 재료의 수급과 같은 부차적인 걱정은 전혀 없었다.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교를 내는 작업이었으니까. 그런데 무슨 일인지 금박이라는 소재는 도통 예측이 되지 않더라. 가령 양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두께는 적절한지에 대한 계산말이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기 일쑤였고, 조금만 힘을 줘도 쉽게 찢기곤 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변수를 최대한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데이션, 물방울 그리고 금박. 이제껏 선보인 작품의 표현은 제각기 달랐지만 결국은 ‘유리’라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귀결된다. 유리의 어떤 점에 매료된 것인가? 흔히들 유리 하면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한다. 사실 유리는투명과 불투명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는 소재다. 그리고 두 요소의 조화와 변주가 격렬히 이루어질 때 유리의 매력은 무한히 확장된다. 또 하나, 유리는 조명을 활용할 경우에도 매력이 더욱 배가 되는 소재다. 빛을 받은 외관에서 발산하는 은은한 광택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생기는 그림자에서도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투명해 보이는 유리도 빛이 관통할 때면 그림자에 육안으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는 미세한 무늬가 생겨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금박을 관통해 형성된 그림자와 도자의 실루엣이 어우러지는 오묘한 조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소재만을 고집하기란 쉽지 않을텐데, 혹시 유리공예 외에도 다른 장르에 눈을 돌려본 적은 없었나? 솔직히 말하면 유리 하나로도 버겁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또 한번 느꼈다. 유리공예는 협업이 정말 중요한 예술이다. 특히 너비가 큰 달항아리를 만드는 데는 대략 여섯명 정도가 달라붙어야 한다. 큰 품이 드는 만큼 당연히 손발을 맞추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새로운 작업에 임하는 것이니 실수도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과정에 대한 숙련도와 이해도가 쌓이게 되더라. 그때쯤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는데 웬걸, 마지막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에서야 비로소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조금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웃음),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는 것 아니겠나.
어떤 점을 보완하고 싶은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기마련인데, 오래도록 하다보니 간혹생략해도 되지 않겠나 싶은 과정이 보이기도 한다. 오히려 그럴수록 정도를 밟아야 한다. 모든 과정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 점에서 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결국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해봤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지 않을까 싶다. 동감한다. 결국은 기초와 기본이다. 유리공예는 서서히 큰 덩이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완결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중심을 잡아야 하는 과정, 형태의 변주를 주는 과정 등 모든 단계를 순차적으로 밟아나가야 하는 장르라는 뜻이다. 결국은 다시 기본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다. 제작과정에서 작은 공기 방울이 생기는 것을 간과하고 넘기게 되면 어김없이 크랙이 나듯이 말이다. 타협 대신 끈기와 기본을 고수하는것. 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 점이다. 그러니 늘 냉정해지고 마음을 정돈해야만 한다.정도를 걷는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으니까. 언젠간 내 손으로 만든 결과물이 증명해주리라 믿는다. 그저 보고 지나치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이상하리만치 한번 더 시선을 끄는 작품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