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규모의 공공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첫 시작이 궁금하다. 8년 전, 버려진 공장 정면에 유리 조각 1248개를 설치했는데, 그 중 312개는 동일한 형태로 깨진 것처럼 고안한 야외 조형물을 완성했다. 그게 공공 미술작업의 첫 시작이었다. 그 후로 영국 전역에서 점점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물론, 대부분의 예술가들의 처음이 그러하듯 페인팅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하나씩 완성해가는 과정 자체가 좋아서 미술이라는 장르에 반했고. 하지만 모든 예술가에게 기회가 돌아올 만큼 현실은 공평하지 않더라.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수단을 더욱 늘릴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조각, 건축, 무대 연출 같은 수단으로 시야를 넓혔다. 나는 이제껏 단 한번도 미술이라는 장르를 떠난 적이 없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얼핏 렌더링 이미지이지 않을까 의심했을 만큼 머릿속에서만 일어날 법한 환상이 현실로 나타난 듯했다. 세상을 좀 더 마법처럼 만들고자 익숙한 물질이나 물체, 상황에 일말의 환상을 엮어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문제로부터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 문제를 떠올리지 않게끔 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을 보라. 현실과 환상, 사실 그리고 동화를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행복한 능력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성장하면서 이러한 능력을 잃어간다. 좋은 예술은 논리를 따르지만 위대한 예술은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논리적인 현실과 그렇지 않은 환상을 구분할 수 없게끔 하는 나의 일련의 행동이 현실로부터 순간적이지만 희망찬 휴식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사람들이 잠시나마 공명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
사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환상은 아니다. 용해, 지퍼, 꼬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뒤튼다. 주변을 둘러싼 일상적인 설치물이나 건축물에서는 일말의 유연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히 여긴다. 그렇게 무뎌지는 거다. 이들에 기이한 유연성을 부여해 주변을 교란시키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늘 당연히 여긴 것들에게서 느껴지는 비일상적인 인상을 부여한 것이다. 사람들한테 주변을 긴밀하게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을 주고 싶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건물을 구부리거나 집을 녹이고 때로는 일상적인 물건을 꼬는 듯한 작업은 모두 이러한 유연성, 나아가 비일상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특정한 상태나 순간을 구현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변하지 않고 그저 머물러 있는 것들에서는 어떠한 신선함과 자극도 느낄 수 없지 않겠나. 우후죽순 솟아나 있는 건물, 도로 한 켠에 놓인 소화전이나 방지턱 등 변화나 주목할 만한 현상 없이 그저 매일 보는 그 상태 그대로인 주변의 것에 우리가 어떠한 반응과 지각 없이 무뎌지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들에게 비현실적인 위트를 잠시 불어넣는 것이다. 한번은 왁스로 만든 문과 7500여 개의 왁스 벽돌로 이층 집을 지은 적이 있다. 집은 45일 동안 천천히 녹았다. 이 조각은 매일 모습이 바뀌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기차역 근처의 혼잡한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날마다 통근자들이 그 곳을 지나치며 매일 달라지는 건물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매일같이 다니는 길이지만 그 건물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을 지켜보면서 그들에겐 자신도 모르게 건물에 대한 서사가 생겨나는 것이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설치했던 작품 ‘A Sprinkle of Night and a Spoonful of Light’ 또한 마치 옷처럼 건물에 지퍼를 달아 여닫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나는 거창한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의 환상을 불어넣어 우리 주변의 것에 흥미로운 위트와 서사를 불어넣고 싶을 뿐.
그래서일까, 흘러내리는 건물, 실컷 꼬인 소화전, 곧 곤두박질칠 송전탑 등을 마주한 이들은 종종 당신을 몽상가라 표현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웃음). 그렇지만 나는 실행하는 몽상가다. 그저 앉아서 아무런 에너지나 노력 없이 머릿속에서나 기이한 세계를 구축하고 이내 지워버리는 이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머릿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흥미로운 상상을 물리적으로 현실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다. 상상력은 프로젝트의 씨앗을 뿌리지만, 꽃을 피우는 데는 몇 년이라는 인고와 끈기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이니까.
작업의 규모가 커서 협업은 매번 필수적일 텐데. 비단 작업의 규모뿐 아니라 사용되는 재료나 기술 등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작업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협업을 제안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어우러지는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작업에 있어 프로젝트의 색깔을 잃지 않게 잘 조율해야 하지만, 늘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작업에 임하는 것은 짜릿하다.
어려움은 없었나? 타협 없는 진보는 없지 않은가. 당연히 부딪힐 때는 있다. 그러나 타협점을 찾는 일을 두려워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일을 망치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 편인가? 외부와 내부 모두에서 얻는다. 외부적 영감은 자주 걷는 거리 혹은 낯선 여행에서 마주하는 건축 등 내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 심지어 우연찮게 들려오는 소음에서도 찾아온다. 내부적인 영감은 쉽게 말해 에너지라고 볼 수 있겠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강박과 스스로에게 불어넣는 동기부여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거친 파도 위에서 더 힘차게 닻을 잡듯 끝없이 몰아붙이는 내면의 갈망이 나를 늘 새로운 작업으로 인도한다.
한 인터뷰에서 ‘위험 요소를 꺼리지 않는 것과 야심’을 다른 이들과 구별 짓게 하는 요소이자 당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두 가지 메커니즘이라 말한 것을 봤다. 당당히 개척자가 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 없이 발전하는 건 없고 생산이 간단할수록 모방은 쉬워지지 않겠나. 남들이 꺼리는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진득이 밀어 붙일 수 있는 야심은 작품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라 생각한다.
코로나19는 지역사회의 연결을 느슨하게 했다. 서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신의 공공 예술이 느슨해진 연결고리를 이어줄 수 있을 거라 보는가? 예술은 많은 문제로부터 우리를 환기시킨다. 때론 그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게 하거나 잠시라도 우리를 쉴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특히 요즘과 같은 시기에 더욱 환상을 불어넣는 일을 고집한다. 특히 공공 예술은 마치 열쇠처럼 우리가 고립의 껍데기를 부수고 나올 동기를 부여한다고 믿는다. 예술만이 전할 수 있는 즐거움은 우리가 오래도록 안고있는 이 고통을 덜어낼 수 있을것.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가? 매일 실내와 실외 환경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예술 작품을 개발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더군다나 이렇게 고립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는 내게는 더없이 긍정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페인팅이나 조각이 될 수도 혹은 이제껏 시도하지 않은 형태로 실현될 테다. 물론 여행에서 비롯되는 영감이 그리워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지는 않지만, 내 프로젝트가 어느 날 한국 한복판에 떡하니 세워질지도 모를 일이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