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픽스 쇼룸 2층에 놓인 웨이브 테이블과 유니온 오브제.
건축가 김현종은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건축, 공간, 가구 오브제까지 전방위에 걸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11여 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건축이라는 분야에 몸담았던 그는 2018년 한국에 들어와 자신의 건축 사무소 아틀리에 KHJ를 오픈한다. 구태여 경계를 구분짓지 않는 디자인을 선보이는 만큼 토털석재, 앤더슨벨 등과 함께 협업한 공간 작업은 물론, 대리석이나 크롬, 석재 등 다양한 건축자재를 활용해 마치 작은 빌딩처럼 구조화한 오브제 시리즈 ‘빌딩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적인 면모마저 내비친다. 그런 그의 또 다른 시도가 다시 한번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스튜디오 이름을 내건 오브제 가구 컬렉션을 출시하며 에이치픽스와의 협업 전시를 선보인 것. 드세데, 텍타 등 탄탄한 명성의 디자인 가구와 함께 에이치픽스 쇼룸을 장식한 스튜디오 KHJ의 가구를 직접 둘러봤다. 그리고 쇼룸을 나와 그가 있을 한남동의 사무실로 향했다.
건축 스튜디오 아틀리에 KHJ를 운영하고 있는 김현종 건축가.
에이치픽스와의 협업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마치 쇼룸을 위한 가구인 것마냥 그곳에 잘 녹아든다는 생각이 단번에 들더라. 주변에서도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웃음). 감사한 이야기다. 맨 처음 에이치픽스와 인연이 닿았던 건 패션 브랜드 로우클래식 쇼룸 프로젝트를 끝마친 후다. 그 작업을 좋게 봐준 건지 모르겠지만, 협업 이야기가 나오며
연이 닿아 빠르게 전시 작업을 진행했다. 내겐 너무 좋은 기회였다.
파이프 컬렉션과 웨이브 컬렉션의 두 가지 가구 시리즈를 선보였다. 모두 스테인리스스틸을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확연하게 구별되는 지점도 보였다. 파이프 컬렉션의 시작은 내가 주로 사용하고 다루는 재료에서 시작된 시리즈다. 건축과 공간을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가구에서도 구조적인 면을 더러 살리려 하는데, 확실한 특징점도 함께 주고 싶었다. 대안으로 흔히 구할 수 있는 일반 파이프가 아닌 건축 부재로 사용되는 구조용 파이프를 활용했다. 잘라낸 파이프를 반복적으로 붙이거나 정렬시켜 선과 선이 만나 구현해내는 구조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다. 반면, 웨이브 컬렉션에서는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 곡선을 적극 사용해 비정형적인 리듬 같은 형태를 구현해봤다.
가구도 가구지만 대리석, 철, 목재 등 여러 건축자재를 활용해 만든 조형 오브제 ‘빌딩 프로젝트’에도 시선이 계속 갔다. 본래 가구 디자이너가 아니라 건축가였던 만큼 무턱대고 가구만 선보이는 것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디자인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함께 놓여 있었으면 했다. 가구와 함께 놓인 빌딩 프로젝트 시리즈가 이제껏 건축, 인테리어, 가구 등 분야를 막론하고 내가 고수하고 있는 생각을 전달해주는 매개체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말이다.
현재 협업 전시가 열리고 있는 에이치픽스 쇼룸의 풍경. 드세데 소파와 함께 어우러진 김현종 건축가의 가구가 전시되어 있다.
앤더슨벨과 협업한 빌딩 프로젝트 초기 작품.
사용된 재료는 물론이거니와 구조 또한 흥미롭다. 건축가다 보니 구조와 재료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재료가 지닌 물성과 구조의 짜임이 주는 미학은 내 전체적인 작업을 갈무리해주는 공통 요소이기도 하다. 이 요소는 내게 늘 새로우면서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와 경험치를 준다. 빌딩 오브젝트는 단순히 건축에서만 보여지지 않고 가까이서 다가가서 볼 수 있게끔 작게 치환된 결과물이다. 건축의 틀을 이루는 기둥이 정갈히 모여 있는 형태가 있다면 때로는 각 기둥의 크기가 모두 다르기도 하고, 석재를 층층히 쌓아 올려 빌딩이나 건축물의 모습을 만들어가지만 각각 쌓아가는 형태를 달리한다든지 해서 말이다. ‘쌓기’라는 건축적 행위와 색다른 재료를 선별,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며 머릿속에만 있는 실험적이고 시도하고픈 구조를 실현시키는 작업인 셈이다.
그중 목재를 활용한 오브제 유니온은 기하학적인 외관 덕분인지 특히나 낯설게 다가온다.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가? 유니온은 2008년 돈의문 박물관에서 주최한 그룹전 <돈의문이 열려있다>를 위해 제작했던 것이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건축적인 요소에서도 종종 영감을 얻는 편인데, 사실 예전 한국의 궁은 그런 요소를 대거 집약시켜놓은 건축물이다. 당시 최고의 건축 기술로 만든 것인지라 색감이나 구조 등 매력적인 요소를 너무나도 품고 있다. 특히 한옥에서도 사용되는 기둥과 처마가 내려오는 이 부분을 공포라고 한다. 처마와 기둥이 이루는 짜임새와 무게를 견디는 결구의 역할과 장식적인 요소까지 겸하는 복합적인 부재라는 점이 흥미를 돋우었다. 유니온은 바로 공포라는 독특한 건축 요소에서 모티프를 얻어 제작된 것이다. 물론 외관을 그대로 차용하진 않았고, 다양한 레이어링을 시도해봤다. 기존 공포의 구조를 뒤틀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재밌는 건 실제 제작을 대목장 선생님께 의뢰했는데, 단번에 알아보실 줄 알았지만 이게 뭐냐고 되물어보시더라(웃음). 아래에 와 있어야 할 목재가 위로 올라가는 등의 변형이 꽤 이루어진 상태였으니 그러실 만도 했다. 오히려 질문을 받는 순간 확신이 들었다. 공포라는 한옥적 요소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이미 능통한 이들에게도 낯섦을 선사할 수 있다고.
아름지기에서 선보인 작품 ‘무-경계’가 유니온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름지기에서는 전통적인 의식주라는 큰 테마를 뿌리로 다양한 프로젝트성 전시를 선보이고 있는데, 전통 건축에 기반한 유니온을 보고 함께 작업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전해왔다. 당시 주제는 주, 그중에서도 바닥을 재해석해야 했다. 사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닥이라는 소재에 대해 집중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주제를 받고 나서 다니는 곳마다 바닥을 보게 됐다. 항상 바닥은 평평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당장 문 밖에만 나가도 마냥 평평하지가 않더라. 인도나 산기슭이나 비탈길 심지어 도로마저도 마냥 평평하진 않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것들만 부여된 평평함을 지니고 있을 뿐 모든 바닥은 다양한 높낮이가 존재하고 일정부분 평평하다가도 이내 굴곡이 느껴지는 유기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곡선, 수직, 수평적인 요소가 다양하게 혼재된 것이 우리가 밟고 있는 바닥이다. ‘무-경계’는 바로 이러한 점을 표현한 목제 구조물이다.
아름지기에서 선보인 마루 작품 ‘무-경계’. 묵직한 블랙 톤의 목재와 유기적인 곡선이 인상적이다.
황동으로 만든 데스크. 묵직한 무게감과 시간에 따라 무늬와 명도가 달라지는 구리의 특성을 활용했다.
자연스레 가구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시간과 여력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지 않나. 건축은 클라이언트의 의견과 나의 색이 조화롭게 합일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물론 그 과정이 늘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협의점을 찾고 그 과정에서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일도 더러 생긴다. 나만의 것을 하려다 보니 오로지 나만의 건축을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여간 많은 게 아니더라. 나만을 위해 스스로를 환기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건축과 가구는 구조와 재료라는 측면에서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두 분야의 경계를 물리적인 크기라는 측면 외에는 구태여 나누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비교적 물리적 스케일이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싶었고, 가구를 만드는 일이 제격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오브제를 만든다고 표현해야 할 듯싶다. 나는 늘 오브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가구를 만든다. 이 작업은 오로지 나의 생각과 기준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스스로에게 주는 일종의 탈출구처럼 보아도 좋겠다.
긍정적인 치환방식이다. 나는 힐링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보니 꽤 많은 것을 만들어 왔더라(웃음).
개인전을 준비할 생각은 없나? 꼭 해보고 싶다. 빌딩 프로젝트와 가구 등 개인 작업을 다 포함한다면 그 수가 적지는 않다. 한자리에 모아보고 싶은 바람은 있지만 기회가 생긴다면야.
지금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나? 아드바일타라 이름 붙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채식주의자인 클라이언트가 공간에도 이러한 면면이 자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해 진행 중인 시공 프로젝트다. 단순히 음식뿐 아니라 건물도 지속가능한 발전의 영역에 있었으면 하는 거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건물이 사라진 이후의 상황이다. 이를 위해선 건축에 사용된 폐기물이 재활용되거나 재생될 수 있는 친환경적 소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건축에 사용되는 80% 이상의 자재를 이러한 기준에 맞춰 구비하고 있다. 쉽지 않지만 곧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울라프 엘리아슨을 좋아한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도전적인 아티스트라는 면에서 말이다. 그처럼 조금 더 다양한 작업에 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재적인 시도, 구조적인 시도 혹은 분야적인 시도든 상관없다. 나 그리고 아틀리에 KHJ 모두 어느 하나의 카테고리로만 정의 내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기반은 믿음이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신뢰받을 수 있는 인사이트를 지닌 무경계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계속 새롭게 해나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