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로 사용할 수 있는 벽 조명 라 플러스 벨레.
공간에서 발휘되는 조명의 힘은 실로 지대하다. 해사한 빛이 켜지기라도 하는 순간에는 스멀스멀 공간을 잠식해버린다. 물처럼 스며드는 듯한 은밀함은 그 어떤 가구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탈리아 기반의 조명 브랜드 플로스는 조명 하나가 공간에 불러오는 힘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라틴어로 꽃을 의미하는 플로스를 차용한 이 브랜드의 시작은 유리공예로 유명한 섬 무라노에서부터다. 플로스가 설립된 1960년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디자인 가구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플로스 또한 처음에는 당시 가구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디노 가비니를 필두로 한 초창기에는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이그나치 오 가르델라 등 명석한 디자이너들과 함께 컬렉션 디자인을 개발하며 브랜드 기반을 다진다. 그러다 전환점이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무라노 섬에서 유리공예를 업으로 삼고 있던 아투로 에이센케일 Aturo Eisenkeil과 함께.
아킬레 카스틸리오니가 제작한 아르코.
부훌렉 형제와 협업한 벨트 조명. 이름처럼 벨트 같은 형상이 인상적이다.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가 디자인한 코디네이트 조명 컬렉션.
그는 넙적한 금속 프레임을 특수 플라스틱 수지 포장재로 코팅하는 ‘코쿤 Cocoon’을 통해 조명을 만들어볼 것을 제안한다. 가벼운데 내구성은 좋으며, 무엇보다 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아름다운 모습이 새로운 가구에 대한 개발을 갈망하던 플로스에게 조명이라는 해답을 선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플로스는 산업지구로 이전하며 아이코닉한 디자인 조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1962년 아킬레 카스틸리오니가 선보인 아르코 Arco나 타치아 Taccia 등 플로스의 더블스페이스 시그니처 제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 정도. 플로스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그들의 브랜드 철학 플로소피 Flosophy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철학을 뜻하는 필로소피 Philosophy와 플로스가 결합된 이 단어는 브랜드 전반을 관통하는 정체성과도 같기 때문이다. 총 3가지로 구성된 플로소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빛은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감정을 자유로이 탐험하게 만드는 소재다. 둘째, 디자이너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파트너로서 그들의 직관을 신뢰하며 시도를 즐길 것. 셋째, 플로스는 예술과 디자인, 공예와 산업, 제조와 상상력 그 사이의 공간에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브랜드 철학은 모든 행보에 대한 기저가 된다.
콘스탄틴 그리치치가 디자인한 녹타빌 조명. 각각 플로어, 서스펜션 스타일로 디자인됐다.
1972년 플로스는 뉴욕 MoMA에서 열린 ‘Italy The New Domestic Landscape’ 쇼를 통해 본격적으로 세계로 나갈 발판을 마련한다. 또한 지노 사르파티 Gino Sarfatti의 아르테루체 Arteluce를 합병하며 카스틸리 오니의 작품이 주를 이뤘던 제품의 구성 갈래를 한층 다양화한다. 1980년 대 중반에 들어서면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에 이은 또 한 명의 중요한 디자이너인 필립 스탁과 조우하게 된다. 과감히 그가 디자인한 아라 램프를 대량 생산하며 큰 성과를 거둔 플로스는 본격적으로 대량생산 기술과 신소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이후 또 다른 파트너인 재스퍼 모리슨과 콘스탄틴 그리치치 등과 협업 기술과 디자인이 균형을 이루는 세계관을 공고히 하는 데도 힘쓴다.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 플로스는 새로운 준비에 착수한다. 대 량생산을 전문으로 하던 상업 조명 회사 안타레스를 인수하며 곧 찾아오는 LED 조명 생산에 대한 발판을 다졌기 때문. 이 합병은 플로스의 기술력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공공장소나 건축에 최적화된 플로스 아키텍처 조명 시리즈의 개발이라는 큰 쾌거를 불러오기도 했다.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 파트르시아 우르키올라 등 오늘날의 디자이너들과의 협업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더욱 공고해진 플로스는 여전히 조명의 역사를 써내려가며 그들만의 빛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서 플로스의 조명 제품은 두오모앤코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타치아 Taccia
스누피 Snoopy
제펠린 Zeppe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