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각기의 오름이 만들어낸 기묘한 능선 속 이상향 같은 공간. 평온한 여유가 부유하는 이곳, 스누피 가든은 제주의 자연과 찰스 슐츠의 철학적인 메시지로 이룩한 어른과 아이 모두의 네버랜드다.
피너츠 캐릭터의 펌을 나무로 구현한 듯한 시각적 효과를 주는 조경에서 유쾌함이 느껴진다. 스누피 가든은 이렇듯 해사한 웃음을 안겨주는 요소로 가득하다.
가든 하우스에 마련된 중정. 내부 환기를 위한 통로적인 역할과 야외 가든에 대한 힌트처럼 기능하는 공간적 장치다.
제주 동쪽에 위치한 송당 지역은 도내에서도 손꼽히는 오름 군락지다. 무성한 목초와 각기 다른 높이의 오름이 구현한 특유의 지형적 특성으로 비교적 개발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1년 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약 2만5000평의 넓은 부지에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캐릭터 스누피가 50년 역사의 만화 <피너츠>에서 현실로 형상화 된 공간 스누피 가든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라는 지역이 한국에서도 이국적으로 여겨지는 데다 만화의 배경인 미국 중서부와는 훨씬 거리가 멀지만, 들어서는 순간 걱정은 일단락된다. 이는 조경 전문회사 에스앤가든의 대표이자 거대한 테마 공간을 기획한 김우석 대표의 공이 컸다. 조경에 잔뼈가 굵은 그는 앞서 제주 송당의 기후와 식생, 지형을 경험할 수 있는 생태 정원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다 피너츠 시리즈의 메시지와 제주의 자연이 가진 특유의 너른 힘이 분명 맞닿는 지점이 있음을 확신했다. “찰스 슐츠의 이야기는 사실 그저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오히려 현실적인 감정과 사건이 발생하고 캐릭터들은 고민과 어려움을 겪죠. 와중에도 서로에게 솔직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상호적인 관계를 맺어요. 서로에게 쉼표가 되어주는 모습을 본 거죠. 모두에게 닿을 수 있는 공감과 위로의 가치가 자연이 지닌 힘과도 많이 닮아있다 생각했어요.” 김우석 대표의 말처럼 이곳 스누피 가든은 제주의 자연 경관과 피너츠의 탄탄한 세계관을 조화롭게 구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짙은 암석과 이끼, 우거진 수풀로 꾸민 조경이 인상적인 암석원.
야외 가든의 일부인 피너츠 사색 들판. 가을이 완연해지면 억새나 갈대 등 가을을 떠올리는 풀로 더욱 무성해질 예정이다.
위에서 바라본 스누피 가든. 건축물과 주변 자연이 대비되면서도 묘한 합을 이룬다.
가장 먼저 목도하게 되는 건 웅장하지만 다소 정제된 듯한 흰색 건축물, 가든 하우스다. 올해 한국문화건축대상에서 우수상을 거머쥘 만큼 완성도 있는 건축은 플랫폼 아키텍츠가 담당했다. 최수연 건축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연과는 명확히 대비되는 지점이 있으면서도 건축과 자연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제주도를 은유적으로 느끼고 음미할 수 있으면 했어요. 제주도의 자연이 건축의 조경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그저 제주의 본질적인 부분을 북돋우는 작용을 하길 바랐죠. 이렇게 인공물과 자연의 중간 역할을 하는 건축이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최수연 건축가가 말했다. 먼저 눈에 띄는 건 미니멀함이 강조되는 백색 외관이다. 제주도의 물성이 현무암이라는 직관적인 인식을 탈피하고자 백자의 표면 같은 세라믹의 미감을 차용한 것. 주위에 자라는 팽나무의 그림자가 해의 이동에 따라 건물에 다르게 지는데, 풍광 한 폭을 담아낸 캔버스 같은 인상을 안긴다. 오름이 이어지는 능선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외관의 곡선은 건축물로서의 위압감은 줄이고 한층 유연하게 위치해 자연과 어우러진 채 자리할 수 있게 한다.
가든 하우스 내부는 3개의 중정과 5개의 테마홀로 구성된다. 사진으로 보이는 곳은 첫 번째 중정 미니 가든. 곶자왈의 환경을 모티프로 꾸렸다.
야외 가든의 마지막 섹션인 가드닝 스쿨의 전경. 직접 텃밭에서 체험 학습을 즐길 수 있는데 현재는 제철 채소와 허브가 심어져 있다.
루프톱에서는 여러 오름이 이루는 능선이 훤히 보인다.
내부는 피너츠의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의 이해를 돕는 걸 염두에 두고 구획됐다. 이를 위해 중정으로 비운 3개의 공간과 5개의 테마홀이 번갈아 배치되어 있다. 특히 중정은 자연 환기가 가능한 공기의 통로와 자연광이 내리는 건축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곧이어 맞이할 야외 가든의 프리뷰이기도 하다. 마치 오름을 오르듯 자연스레 상승하는 동선으로 구획된 내부를 걷다 보면 루프톱에 당도한다. 탁 트인 뷰와 함께 전면에는 마치 근사한 동양화처럼 펼쳐지는 오름의 능선이, 후면에는 야외 가든의 전경이 펼쳐져 스누피 가든 전체 분위기를 조망할 수 있는 가든하우스의 백미처럼 느껴진다. 스누피 가든의 진가는 야외에 펼쳐진 정원에서 읽을 수 있다. 만화로만 보던 캐릭터와 공간이 탁 트인 곳에서 현실화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스누피와 우드스탁을 모티프로 한 탐험 어트랙션인 ‘우든 어드벤처’와 식물의 향과 촉감을 느낄 수 있는 ‘하이라인 데크’ 등 야외라는 점을 활용한 테마별 정원등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제주에서도 흔히 보기 힘든 독특한 식생으로 구현된 경관이다. 조경 전문가 김우석 대표가 오래전부터 이곳을 눈여겨봤을 만큼 매력적인 환경을 자랑하는데, 한라산 정상에서 가까운 중산간에 위치해 있어 바람과 비가 잦고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린다는 기후적인 특성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덕분에 후박나무, 팽나무, 비자나무, 육박나무, 굴거리나무, 하귤나무 등 300여 종의 식물과 화산송이 짙은 색의 암석 등 송당의 생태에서 비롯된 특색 있는 요소는 이곳을 한층 신비롭게 만든다.
야외 가든 중간 즈음에 마련된 ‘루시의 레모네이드.’ 밖에는 하귤밭 마당이 있다.
가든 하우스에는 <피너츠> 만화에 구현된 세계관과 각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다양한 섹션이 마련되어 있다.
스누피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만날 수 있는 테마홀 시크릿 하우스. 그림자로 표현된 스누피에 계속 눈이 간다.
이러한 자원과 기후, 지역적 특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 조경만 가미했다고 김우석 대표는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제주 베케의 조경을 담당한 김봉찬 조경 전문가가 스누피의 페르소나를 주제로 한 암석원의 조경을 담당하는 등 메인 구역마다 다양한 조경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테마에 따라 저마다 다른 조경적 특색을 구현했다. 그렇지만 계절마다 인위적으로 식물을 바꾸어 연출하지 않고 가을에 무성해지는 억새밭과 여름에 만개하는 수국 등 자연이 있는 그대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만큼은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노력했다고. 메인 가든과 함께 제주의 특색 있는 식물로만 구성된 비자나무숲, 후박나무숲, 굴거리나무숲, 동백숲 등 제주의 식생적 특징을 보여주는 서브 가든까지 함께 만날 수 있어 한층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가든에서 무수한 볼거리를 즐기다 보면 절로 입구에 있는 문구를 되뇌일지도 모르겠다.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바라보되, 일단 오늘 오후는 쉬자’. 찰스 슐츠가 만화를 빌려 전달하고팠던 이 메시지처럼 이곳은 자연에 숨어 그저 오늘을 즐기고 스스로에게 잠시간의 휴식을 선물하고팠던 이들에게 너무도 좋은 은신처가 되어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