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기타 Magic Guitar IV’ 작품 앞에 선 김원숙 작가. 남편이 기타를 즐겨 연주하기에 그림에 기타가 종종 등장한다.
Forest Lights I, 196×174cm, Oil on Canvas, 2016.
Evening Swim II, 101.5×101.5cm, Oil on Canvas, 2020.
김원숙 작가의 전시는 왜 인기가 높을까? 평일 오전인데 갤러리는 관람객이 많았다. 1층부터 3층까지 남녀노소 관람객이 그녀의 작품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전시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김원숙 작가가 한국에서 오랜만에 갖는 개인전으로 ‘우리의 뜰 안에서’라는 주제로 신작과 구작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 팬데믹 때문에 전시를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하게 됐고, 마침 백신을 접종했기 때문에 그녀는 전시에 맞춰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나의 작품은 시대 사조나 미술계의 이즘과 관련이 없습니다. 개인의 이야기가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지만 삶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림에서 자신의 인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대미술이 작품 앞에서 관람객을 주눅들게 하는데, 내 그림은 그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받고 있다고 봅니다.”물론 현대미술이 난해하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 삶도 난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작품을 통해 삶을 이렇게 살자는 거창한 주장이나 표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여러분처럼 애들 키우고 살림하는 사람인데, 작가로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그림으로 기록한다는 점이지요. 징그러운 일을 굳이 그려서 전달할 필요가 없지요. 나는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기록하면서, 힘든 일 속에서도 애잔함과 아름다움을 찾지요. 어쩔 수 없이 생겼어야 하는 어려운 일도 있었겠지만 지난 날을 다시 보면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어떤 비결이나 숨은 뜻 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지만,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나날을 50년째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성공’이다. 지금 서울에서 65번째 개인전을 하고 있고, 앞으로 뉴욕과 베를린에서 선보일 개인전 5개가 또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잘난 척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전시장 1층의 이 그림은 도전을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는 젊은이를 새들이 응원해주는 모습을 담고 있다.
Winter Tree, 101.6x76cm, Oil on Canvas, 2019.
그녀의 그림은 마음을 나누고 격려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특징이다.
김원숙 작가는 1972년 19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타국에서 왜 힘든 일이 없었겠냐만은 그녀는 그림으로 이를 극복해왔다. 삶이 힘들었을 때는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준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백화점과 잡지사의 스타일리스트로 다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물감을 사고 밤에는 그림을 그렸다. 겁 없고 계산이 없어서 앞만 보고 가는 에너지가 있었다. 그녀가 유학을 떠난 1972년은 미국 정부 시스템에 여성과 이민자의 인권에 대한 자각이 태동하던 때였다.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으면 나는 법을 알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열심히 살았다. 작은 나라에서 온 젊은 여성이라는 단점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조금만 더 잘하면 자신을 기억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좌절한 적은 없었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자신의 모교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 143억원을 기부했기 때문에 부유하게 살았을 거라는 오해를 받는데, 그녀 인생에 그런 행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 한국이 아닌 미국에 기부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장학금을 받고 이곳에서 공부했고, 미국에 한국 유학생이 여전히 많으니 이제는 우리가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리노이 주립대는 ‘김원숙 미술학교 The Wonsook Kim School of Art at Illinois State University’라는 이름으로 단과대학을 명명하며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미국 단과대학에 한국인의 이름이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니 더욱 자랑스럽다.
그녀의 초기 작업은 수묵화와 같은 색감이 돋보인다. 날개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도와준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예술이란 결국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옷이나 가구를 하나 사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고, 미술 작품도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미술이 부의 상징이나 특정 계급에서만 느끼는 특별한 존재가 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지난 70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그녀의 그림 앞에서 한국 사람도 울고, 미국 사람도 눈물을 흘린다. 세상 모든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같다는 것을 그녀의 그림 앞에서 느낄 수 있다. 그림 속의 여자는 작가 자신이며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 속 주인공은 연인의 기타 연주 소리를 듣고 있기도 하고, 부드러운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와 우리가 살아 있는 그 자체가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그녀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아서 더욱 매혹적이다. 그녀의 다음 전시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