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IS ALIVE #MILAN DESIGN WEEK 2021 ①

2021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만난 다양한 가구 전시

2021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만난 다양한 가구 전시
올해 9월, 다시금 도시가 디자인으로 물들었다. 기대와 우려를 동반한 채 9월 4일, 1년 반이라는 공백을 깨고 개최된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그간 팬데믹의 여파로 고립되었던 시간을 만회하듯 ‘슈퍼살로네 Supersalone’라는 슬로건으로 대규모 디자인 페스티벌의 포부를 내비쳤다. 환희의 장이 된 페스티벌의 열기를 마주하고 싶다면 주목하길. 우리의 첫 번째 착륙지는 명실상부한 디자인의 도시, 밀라노다.
 

1 시대를 흘러온 빛

나일 조명
포스카리니 Foscarini는 페루치오 라비아니 Ferruccio Laviani가 연출한 쇼룸에서 로돌포 도르도니 Rodolfo Dordoni와 알베르토+프란체스코 메다 Alberto+Francesco Meda가 디자인한 조명인 나일 Nile과 치아로스쿠라 Chiaroscura를 소개했다. 이집트 여왕의 옆모습처럼 보이는 나일 조명은 유리와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유리를 통해 발산되는 부드러운 빛이 특징이다. 플로어 조명인 치아로스쿠라는 측면과 천장으로 빛을 방출하는 입체적인 삼각형 구조가 독특한데, 이런 아이디어가 이미 1933년에 고안되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이외에도 2001년 ADI 황금 콤파스상을 수상한 마크 새들러 Marc Sadler의 미테 플로어 램프 Mite Floor Lamp를 기념하기 위해 출시한 미테 애니버서리 Mite Anniversary 버전도 선보였다.

web foscarini.com

 
신제품을 소개한 포스카리니의 쇼룸
 
치아로스쿠라 조명
   

2 죄 없는 플라스틱

트렌드를 이끌고 선구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엄선해 소개하는 로사나 오를란디 Rossana Orlandi에서 매년 주최하는 <무죄 플라스틱 Guiltless Plastic>은 올해 이탈리아 국립과학기술박물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박물관 앞마당과 실내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실용적인 제품이나 작품으로 재탄생한 플라스틱으로 채워졌다. 로사나 오를란디는 플라스틱이야말로 쓰레기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변형될 수 있는 가장 큰 자원이라는 생각으로 플라스틱 전시를 주최해왔다. 덴마크 건축 스튜디오 렌다거 그룹 Lendager Group이 재활용 가능한 의자로 벽을 쌓아 만든 학교부터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슈퍼마켓 형태의 <리푸드마켓 Re-Food Market> 전시 등 디자이너와 작가의 손길이 닿은 재활용 플라스틱 제품이 신선함을 선사했다. 특히 정원에 전시된 서큘러 랩 Circular Lab은 산업폐기물을 수거하는 탱크를 재활용해서 만든 설치 작품으로 이번 전시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줬다.

web www.rossanaorlandi.com

 

3 자연과의 대화

스튜디오페페가 연출한 <보태니컬 컬레티바> 전시 ©Silvia Rivoltella
엄선한 가구 브랜드를 선보이는 가구 회사 Mohd(M0llura Home Design)가 밀라노에 새로운 쇼룸 오피시나 밀라노를 오픈했다. 오픈과 함께 Mohd는 밀라노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스튜디오페페 Studiopepe가 연출한 <보태니컬 컬레티바 Botanical Collettiva> 전시를 진행했다. MDF 이탈리아 MDF Italia, 비트라 Vitra, 구비 Gubi, 박스터 Baxter, 놀 Knoll, 프티 프리처 Petite Friture, 케탈 Kettal 등의 가구와 녹색 식물이 어우러진 오피시나 밀라노의 쇼룸은 가구가 집에 놓였을 때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햇빛과 전시된 가구와 녹색 식물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디자인에 좀 더 빠져들 수 있었다.

web www.mohd.it

©Silvia Rivoltella
 
©Silvia Rivoltella
 
©Silvia Rivoltella
 
©Silvia Rivoltella
 

4 무한한 소파

공간과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구성 할 수 있다.
소파가 공간에 발휘하는 힘을 느끼게 하는 알플렉스가 새로운 모듈식 소파 9000을 선보였다. 티토 아그놀리 Tito Agnoli가 디자인한 이 소파는 1960년대 말 콤팩트하고 다기능적인 가구를 선보이고자 했던 디자인적 흐름에 영감을 받았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클래식한 느낌을 가미했는데 신체를 최대한 편하게 뉘일 수 있는 곡선형 외관과 푹신한 충전재를 기본으로 탑재한 것은 물론, 공간과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우아함을 입은 소파가 마치 관절처럼 이어지는 것을 보면 소파가 공간에 놓였을 때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것.

web www.arflex.it

모듈식으로 제작되어 1인 가구로도 적합하다.
9000 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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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김원숙 삶은 그림

서울 예화랑에서 가진 김원숙 작가의 65번째 개인전 '우리의 뜰 안에서'

서울 예화랑에서 가진 김원숙 작가의 65번째 개인전 '우리의 뜰 안에서'
팬데믹을 뚫고 오랜만에 한국에 온 김원숙 작가를 만났다. 서울 예화랑에서 65번째 개인전을 갖는 김원숙 작가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맑은 미소로 50년간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매직 기타 Magic Guitar IV’ 작품 앞에 선 김원숙 작가. 남편이 기타를 즐겨 연주하기에 그림에 기타가 종종 등장한다.
 
Forest Lights I, 196×174cm, Oil on Canvas, 2016.
 
Evening Swim II, 101.5×101.5cm, Oil on Canvas, 2020.
  김원숙 작가의 전시는 왜 인기가 높을까? 평일 오전인데 갤러리는 관람객이 많았다. 1층부터 3층까지 남녀노소 관람객이 그녀의 작품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전시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김원숙 작가가 한국에서 오랜만에 갖는 개인전으로 ‘우리의 뜰 안에서’라는 주제로 신작과 구작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 팬데믹 때문에 전시를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하게 됐고, 마침 백신을 접종했기 때문에 그녀는 전시에 맞춰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나의 작품은 시대 사조나 미술계의 이즘과 관련이 없습니다. 개인의 이야기가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지만 삶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림에서 자신의 인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대미술이 작품 앞에서 관람객을 주눅들게 하는데, 내 그림은 그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받고 있다고 봅니다.”물론 현대미술이 난해하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 삶도 난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작품을 통해 삶을 이렇게 살자는 거창한 주장이나 표어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여러분처럼 애들 키우고 살림하는 사람인데, 작가로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그림으로 기록한다는 점이지요. 징그러운 일을 굳이 그려서 전달할 필요가 없지요. 나는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기록하면서, 힘든 일 속에서도 애잔함과 아름다움을 찾지요. 어쩔 수 없이 생겼어야 하는 어려운 일도 있었겠지만 지난 날을 다시 보면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어떤 비결이나 숨은 뜻 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지만,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나날을 50년째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성공’이다. 지금 서울에서 65번째 개인전을 하고 있고, 앞으로 뉴욕과 베를린에서 선보일 개인전 5개가 또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실수도 하고 잘난 척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전시장 1층의 이 그림은 도전을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는 젊은이를 새들이 응원해주는 모습을 담고 있다.
 
Winter Tree, 101.6x76cm, Oil on Canvas, 2019.
 
그녀의 그림은 마음을 나누고 격려하는 따뜻한 메시지가 특징이다.
김원숙 작가는 1972년 19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타국에서 왜 힘든 일이 없었겠냐만은 그녀는 그림으로 이를 극복해왔다. 삶이 힘들었을 때는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준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백화점과 잡지사의 스타일리스트로 다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물감을 사고 밤에는 그림을 그렸다. 겁 없고 계산이 없어서 앞만 보고 가는 에너지가 있었다. 그녀가 유학을 떠난 1972년은 미국 정부 시스템에 여성과 이민자의 인권에 대한 자각이 태동하던 때였다.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으면 나는 법을 알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열심히 살았다. 작은 나라에서 온 젊은 여성이라는 단점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조금만 더 잘하면 자신을 기억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좌절한 적은 없었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자신의 모교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 143억원을 기부했기 때문에 부유하게 살았을 거라는 오해를 받는데, 그녀 인생에 그런 행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 한국이 아닌 미국에 기부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장학금을 받고 이곳에서 공부했고, 미국에 한국 유학생이 여전히 많으니 이제는 우리가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리노이 주립대는 ‘김원숙 미술학교 The Wonsook Kim School of Art at Illinois State University’라는 이름으로 단과대학을 명명하며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미국 단과대학에 한국인의 이름이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니 더욱 자랑스럽다.  
그녀의 초기 작업은 수묵화와 같은 색감이 돋보인다. 날개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도와준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예술이란 결국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옷이나 가구를 하나 사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고, 미술 작품도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미술이 부의 상징이나 특정 계급에서만 느끼는 특별한 존재가 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지난 70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그녀의 그림 앞에서 한국 사람도 울고, 미국 사람도 눈물을 흘린다. 세상 모든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같다는 것을 그녀의 그림 앞에서 느낄 수 있다. 그림 속의 여자는 작가 자신이며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 속 주인공은 연인의 기타 연주 소리를 듣고 있기도 하고, 부드러운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와 우리가 살아 있는 그 자체가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그녀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아서 더욱 매혹적이다. 그녀의 다음 전시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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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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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MAZING UNIVERSE OF ROBERT TATIN

예술가 로베르 타탱이 지은 놀라운 광경의 박물관 메종 데 샹

예술가 로베르 타탱이 지은 놀라운 광경의 박물관 메종 데 샹
프랑스 마이옌 지방도로 모퉁이에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대규모의 작품뿐 아니라 작은 것에도 애정을 지닌 화가이자 조각가인 로베르 타탱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이 박물관을 지었다. 사고와 예술, 상징을 찬양하는 사원을 둘러보자.
로베르 타탱이 자신의 작은 집 등 쪽에 조각한 이집트 여신 ‘이시스 Isis’. 여신이 자르댕 데 메디타시옹의 입구를 지킨다.
 
자르댕 데 메디타시옹 Jardin des Meditations(명상 정원)이 세워진 저수지 앞에 ‘노트르-담-투-르-몽드 Notre-DameTout-le-Monde’가 서 있다. 높이가 6.5m인 이 작품은 동서향인 박물관의 축을 따라 자리한다.
  원래는 황무지에 버려진 작은 농장이었다. 화가이자 조각가, 세라미스트인 로베르 타탱은 예순 살이었던 1962년 에 그보다 마흔 살 어린 부인 리즈와 함께 마이옌 Mayenne 출신으로 새로 시작하기 위해 장 콕토, 피카소와 지내던 코트다쥐르를 떠나 이곳에 정착했다. 이 유명한 아티스트는 라 프레누즈 la Frenouse라고 불리는 이 곳에서 자신의 인생 역작인 ‘메종 데 샹 Maison des Champs’에 전념했다. 그는 삶의 마지막 21년을 이 예술적인 작업장을 완성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집 주변에 시멘트 모르타르로 초자연적인 작품을 완성하고 십자 모양의 저수지 주변에 수도원을 세우고 조각상을 만들었으며, 토템을 세웠다. “타탱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을 작품 속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그런 점이 매력적이지요.” 박물관 디렉터 브뤼노 고디비에가 진지하게 설명한다. 이스터 섬의 거인, 브르타뉴의 선돌, 남아메리카의 뱀…. “그는 경험의 총체와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상징적인 보편적인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세상을 연결하고 싶어했죠.” 그렇다면 ‘우체부 슈발 Facteur Cheval’ 작품 같은 것은 아닐까? “아닙니다. 모든 것을 심사숙고한 다음 지었어요. 보 자르에서 공부한 타탱은 독학을 한 건 아니거든요.” 로베르 타탱은 마이 옌 지방의 코세-르-비비앙 Cosse-le-Vivien을 유명하게 만든 이 작품 을 건축하고 나서 돈을 벌기 위해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다. 오늘날 메종 데 질뤼스트르 Maison des Illustres(명사의 집) 인증을 받는다면 그가 1967년부터 자신의 판테온 거인을 줄 세워 멋진 길로 바꾼 이 지방도로 덕분이다. 그는 지식을 기리기 위해 한쪽에는 동사 ‘Être’를, 다른 쪽에는 동사 ‘Avoir’를 세우고, 학교 교육에서 영웅으로 추앙하는 잔 다르크와 베르킨게토릭스를 만들었으며, 완전한 자유를 구현한 피카소 맞은편에는 예술과 과학의 기둥, 쥘 베른을 세웠다. 로베르 타탱의 ‘알레 데 제앙 Allee des geants(거인들의 길)’은 후손을 향한 왕도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Robert Tatin Museum. La Maison des Champs, La Frenouse, 53230 Cosse-le-Vivien  
회랑 역시 박물관의 다른 공간처럼 시멘트 모르타르로 지은 다음 채색했다.
 
아치 뒤의 모든 길이 로베르 타탱의 그림과 세라믹 작품이 전시된 방으로 이어진다. 작품은 생전에 국제적으로 유명했던 그가 기증했다. ‘음’과 ‘양’이라 이름 붙인 거대한 여인상이 ‘포르트 뒤 솔레유 Porte du Soleil(태양의 문)’를 떠받치고 있다. 뿔과 운명의 수레바퀴를 얹은 ‘포르트 뒤 솔레유’ 뒤에서는 매일 아침 해가 뜬다. 저수지의 다른 쪽에서는 ‘포르트 드 라 륀 Porte de la Lune(달의 문)’이 마주보고 있다.
 
로베르 타탱은 자신만의 판테온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알레 데 제앙’이 박물관 가운데로 이어지도록 디자인했다. 그는 거인상을 한 쌍으로 제작했다. 여기에서는 알프레드 제리 Alfred Jarry(타탱처럼 마이옌에서 태어났다)가 ‘우부 루아 Ubu Roi’를 마주하고 있다. 어릿광대 같은 얼굴과 가슴의 새장은 시인의 숨결과 제리의 마스코트인 자전거가 지나가도록 만들어졌다.
 
‘포르트 뒤 솔레유’ 앞에 있는 이 계단은 어느 곳으로도 이어지지 않지만 시선이 하늘로 향하게 한다. 이 계단과 똑같은 계단이 ‘자르댕 데 메디타시옹’의 다른 쪽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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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벵상 티베르 Vincent Thi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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