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듀오 자크 헤르조그 Jacques Herzog와 피에르 드 뫼롱 Pierre de Meuron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일 것이다. 이들의 명성은 이미 2001년 건축가로서 최고의 명예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짐작 할 수 있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만든 미술관으로는 영국 테이트 모던, 홍콩 타이퀀, 독일 괴츠갤러리, 베를린 현대미술관(개관 예정) 등이 있다. 이들이 설계한 홍콩 M+미술관이 11월 11일 개관하며, 서울의 송은 SONGEUN이 9월 30일 문을 열었기에 아시아가 들썩이고 있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홍콩에 이미 경찰서와 법원을 개조 한 타이퀀 전시 공간을 선보인 바 있지만, 한국에서 건축물을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화제를 모았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최신 건축물인 홍콩과 서울의 미술관을 자세히 살펴보자.
1950년생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동갑내기 헤르조그와 드 뫼롱은 7살 때부터 친구였고, 취리히연방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1978 년 함께 회사를 차렸다. 두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이 열리는 바젤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물론 M+미술관과 송은은 비영리 전시 공간이기에 아트 페어와는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두 사람은 세계 각국의 미술 애호가들이 몰려드는 아트 바젤을 통해 현대미술의 중요성과 사회 문화적 성격을 일찍이 파악했을 것이 분명하다. 미술관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 척도이며 정치,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그들은 건축물로 일상의 해결책을 제시할 뿐 아니라 디자인과 문화의 진화에 영감을 주는 물리적 구현체를 설계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초기에는 현지 리서치를 통한 재료, 재질, 공간과 자연에서 이어진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표현한 건축물을 선보였고, 지역적 맥락과 문화에서 건축적 영감을 받은 미니멀한 요소의 건축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HONG KONG 홍콩
먼저 M+미술관을 들여다보자. 20, 21세기의 홍콩과 글로벌 시각문화 예술을 모두 보여주자는 뮤지엄 앤 모어 Museum and More라는 의미에서 M+ 미술관으로 명명되었다. M+미술관은 아시아 최초의 현대 시각문화 미술관 Museum of Contemporary Visual Culture으로 현대미술 작품뿐 아니라 근대미술, 시네마, 건축, 디자인까지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컬렉션과 전시를 과시하고 있다.
더불어 M+미술관은 홍콩 정부가 진두지휘하는 서구룡문화지구 시대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WKCD, 西九文化區)의 중심이기 때문에 2006년부터 개관이 확정되어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서구룡문화지구는 이미 복합 문화 공간 프리스페이스, 공연장 시취센터, 홍콩 아트 뮤지엄, 홍콩 고궁 미술관, K11 뮤제아 등은 이미 개관한 상태다. 이번 M+미술관의 개관으로 홍콩 문화 중심지가 센트럴에서 서구룡으로 단박에 자리를 옮긴다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 홍콩섬에서 바라다보이는 M+미술관은 대단히 아름답고, 물론 M+미술관에서 바라보는 홍콩섬도 절경이다. 2015년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한 이 미술관은 5년간의 공사 기간을 예상했는데, 7년이 걸려 완공되었다. 빅토리아 항구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간척지에 건축되었기 때문에 건축물의 견고함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총 6만5000㎡ 규모이며, T자를 거꾸로 눕힌 형상의 디자인이라 재미있다. 하단에 수평으로 된 거대한 공간이 있고, 그 위에 수직으로 18층 건물이 있는 것. 33개의 전시실, 교육센터, 시어터 3곳, 미디어 테크 라이브러리, 2곳의 뮤지엄숍과 레스토랑, 카페를 갖추고 있다. 미술관 외관은 녹색 세라믹 패널 14만 개가 감싸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마치 우리나라의 기와처럼 보이기도 하는 세라믹 패널은 유리로 만든 고층 빌딩이 가득한 홍콩에서 독보적인 파사드를 과시하는 한편, 태양빛과 날씨를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뜨거운 습도와 온도로 인해 건축물의 부식을 방지하는 기능도 하는 것. 미술관의 남쪽 전면부는 5664개의 LED 튜브로 구성된 LED 미디어 디스플레이 화면이다. 가로 110m의 대형 디스플레이에서 앞으로 미디어아트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빅토리아 항구의 풍경이 M+ 미술관에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전망 좋은 카페는 개관 전 대중에게 공개한 상태다. 루프톱에는 여러 개의 레스토랑이 입점하는데, 우리나라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모수도 포함되어 있다. 안성재 셰프가 오픈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 전 홍콩에 입국했다. 스타 건축가가 만든 미술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M+ 미술관의 개관을 직접 보기는 어렵지만 내년을 기약해본다. 홍콩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아직은 엄격한 자가격리를 거쳐야 하지만, 내년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봄에는 한결 방문하기에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M+ 미술관은 우리나라 큐레이터 정도련이 2013년부터 부관장을 맡아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화상 인터뷰로 정도련 부관장을 만나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았다. “개관을 맞이해 총 6개의 전시가 선보입니다. <홍콩: 히어 앤 비욘드>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홍콩의 변화와 독특한 시각 문화를 보여줍니다. <M+ 지그 컬렉션 Sigg Collection: 혁명에서 세계화까지>에서는 우리 미술관 컬렉션의 근간이 된 스위스 컬렉터 울리 지그 Uli Sigg의 컬렉션 중 1970년부터 2000년대까지의 중국 현대 미술 발전 연대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M+미술관은 울리 지그가 1510점의 작품을 기증한 것이 널리 알려져 중국 현대미술 위주의 미술관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근대미술, 시네마, 건축, 디자인까지 아시아 최초의 현대 시각 문화 미술관이라는 아이덴티티는 굳건하다. “모든 전시와 작품을 다 추천하고 싶지만, 몇 개만 미리 말씀 드릴게요. 영국 미술가 안토니 곰리가 2003년 중국 광동의 작은 마을에서 주민 300명과 15cm 정도 크기의 점토 인형 수 만개를 만들었습니다. <아시안 필드 Asian Field> 전시에서 전시장을 가득 메운 이 놀라운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절한 일본 디자이너 구라마라 시로가 설계한 신바시의 스시 레스토랑을 통째로 구입해서 홍콩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레스토랑 디자인이 대단히 흥미로울 것입니다.” 글로벌 미술관이다 보니 한국 미술가의 작품도 대거 선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M+미술관은 백남준 작품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장영혜중공업의 모든 작품을 컬렉션해서 화제다. 거대한 LED 외관에서 장영혜중공업의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관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은 모두 미술관 컬렉션이며, 전 세계 760명 작가의 170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니 놀랍다. M+미술관은 홍콩 정부가 아트 도시 홍콩의 사활을 걸고 20여 년 전부터 준비한 아트 허브이자, 최고의 아시아 시각 미술 컬렉션을 갖춘 최고의 미술관임에 분명하다. 특히 디자인과 건축마저 다루고 있다는 점은 미국의 MoMA, 영국의 V&A미술관과 비견될 만하다. 정도련 부관장뿐 아니라, 큐레이터와 보존전문가 등이 다국적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니 글로벌 미술관으로 발돋움하기에 한결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SEOUL 서울
“예술과 예술가, 대중과 컬렉터 모두에게 효율적인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곳을 둘러싼 다양한 요구에 대해 검토해야 하지요. 그래야 미술관이 어번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송은문화재단의 새로운 미술관이 서울의 다양성과 문화 발전에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미술관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과 사람이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가장 상업적인 청담동 한복판에 자리한 이곳은 홍콩 M+미술관과는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공통점도 있다. 지하 공간의 적극적인 활용과 LED 를 이용한 미디어 파사드가 외관에서 드러난다는 점에서 21세기의 흐름을 반영한 두 미술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송은의 지하 공간은 M+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전시도 이루어지는 중요한 곳이며, M+를 상징하는 미디어 파사드는 송은에서는 1층 입구의 기둥으로 표현되었다. 날카로운 삼각형 형태의 송은 외관에서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진중함을 느낄 수 있다. ‘숨겨진 소나무’를 의미하는 송은 松隱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어 목판 거푸집으로 콘크리트 외벽에 나무의 질감을 반영했다. 건축물은 8000평의 규모로 지상 11층, 지하 5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1층은 주차장이고, 지하 2층과 지상 2, 3층은 전시장으로 사용하는 흥미로운 구성이다. 건물을 앞에서 보면 꽉 막혀 보이는데, 4층부터 11층까지는 뒤편으로 테라스가 있어 시원한 전망을 자랑한다. 개관 전시로는 송은과 헤르조 그 앤 드 뫼롱이 함께 기획한 <헤르조그 앤 드 뫼롱, 익스플로링 송은 아트 스페이스>가 열리고 있다.
2017년 설계를 시작해 2018년 10월 착공을 시작한 송은의 여정과 함께 송은의 커미션 작품, 건축가가 그간 협력해온 아티스트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2층으로 올라가는 중간에도 전시장이 있는데,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의 473번째 건축물인 송은의 건축 과정과 드로잉을 모바일을 통해 AR로 볼 수 있다. 2층에서 만나는 작품은 사진미술가 토마스 루프의 작품과 정지현 작가의 사진들이다. 세계적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지현 작가의 작품은 송은 건설 과정과 완공 후의 건축 미학을 담은 사진들이라 더욱 의미 깊다. 3층에서는 송은에서 선보였던 강호연, 연기백, 박준범 등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송은의 지하 공간은 그야말로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3층의 전시를 보고 마지막으로 지하 2층 전시장을 살펴보는 동선을 권한다. 지하가 자동차 진출입로라는 점을 이용해 부드러운 경사로를 조각적으로 발전시켰고, 지하 2층 전시장에서는 로비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을 경험할 수 있어 신비롭다. 천장에 은박을 붙인 아름다운 주차장도 놓치지 마시라. 스타 건축가의 열정을 담은 아시아의 새로운 미술관을 조만간 직접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