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하고도 반년이 지나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슈퍼살로네라 붙인 올해의 별칭에 걸맞게 그간의 공백을 만회하듯 보다 화려하게 치러졌다. 무엇보다 축제의 격을 높인 건 단절의 시간 동안 절치부심하며 자신의 디자인을 갈고닦은 디자이너들의 활약이다. 물론 우리에게 친숙한 디자이너들의 여전한 강세도 돋보였지만, 강렬한 프로젝트로 새로이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이들의 약진도 눈부셨다. 특히 눈에 띈 이 중 하나는 프랑스를 기점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델쿠르트Christophe Delcourt다. 사실 국내에서는 비교적 덜 친숙한 디자이너일지라도 해외 가구 디자인계에 있어 그의 입지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델쿠르트는 으레 말하는 가구 디자이너의 정도를 밟지 않았다. 디자인과 거리가 먼 연극계에 몸담았던 그는 30대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가구계에 입성했다. 그래서 그를 설명함에 있어 항상 독학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그의 데뷔는 여타 디자이너들과 비교해도 꽤 화려했다. 1998년 프랑스 파리에 첫 스튜디오를 차린 그는 바로 다음 해인 1999년 메종&오브제에서 올해의 디자이너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여타 디자이너들이 걸어온 정도를 걷지 않고 스스로 배워왔던 그가 어떻게 주목받는 디자이너로 성공적인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바로 비스포크 Bespoke에 있다. 개인에 최적화된 맞춤 가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특유의 공예적인 자세와 장인정신에 주목한 것. 재료를 선택하고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형태와 색 등을 다듬는 일련의 제조 과정이 사용자로 하여금 보다 감각적이고 정교한 경험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캐비닛 메이커, 세라미스트, 브라스 캐스팅 전문가, 석공 등과 협업을 진행하며 가구를 만드는 데 있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갖춘 장인이 생산 과정을 전담할 수 있게 한 것.
이를 기반으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 건 가구 브랜드 델쿠르트 컬렉션을 론칭했다. 델쿠르트 컬렉션이라는 이름을 내건 모든 가구는 그가 디자인을 담당하고, 직접적인 제조와 생산을 담당하는 장인들과 소통한 결과라 볼 수 있다. 특히 EDO 데스크, CLE 체어 등을 살펴보면 모던함과 우아함을 가미한 디자인은 물론, 촘촘한 짜임새 등의 디테일까지 높은 완성도를 체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아틀리에에 한정 지어 가구를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여러 브랜드에서 크리스토프 델쿠르트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그는 다양한 브랜드와도 협업을 진행해왔다. 2016년부터 루 Lou 컬렉션을 시작으로 꾸준히 연을 맺은 미노티, 로쉐보보아, 씨씨타피스, 피에르 프레이에 이르기까지 그는 여러 브랜드를 통해서도 자신의 색이 녹아 있는 실용적이면서도 미적인 가구를 출시했다. 마찬가지로 올해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박스터와 함께 클라라 Clara 소파나 파니 Fany 테이블 등을 선보이며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찾는 디자이너의 위용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가구를 찾는 것은 곧 삶의 동반자를 찾는다는 말을 자신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는 델쿠르트.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자신의 가치관을 고수해온 그 역시 장인의 호칭이 걸맞는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