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의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건 가족이 아니었을까?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리 애틋하지 않았던 가족끼리의 만남조차 법적으로 제한되는 경우를 맞자 가족의 모습을 그린 화가들의 그림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크리스마스에 흔히 보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그린 작품도 외국에서 태어난 손자의 얼굴을 돌이 되도록 보지도 못했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문득 뭉클한 작품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사람들이 어울려 춤을 추고 노는 르누아르의 그림도 늘 익숙했던 것이지만, 테이블에 두 명 이상 마주 앉지 못하는 시대가 되자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모리스 드니 Maurice Denis(1870~43)의 작품을 재발견한 것은 큰 기쁨이다. 알고 있던 작가였지만 그리 중요한 작가는 아니라고 오판했던 인상주의 시대의 프랑스 화가다. 일상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그린 그의 작품은 더없이 매력적이고 ‘인스타그래머블’하여 유독 눈이 간다. 드니는 피아노를 잘 치던 아름다운 아내를 스무 살에 만나 3년간의 뜨거운 연애 끝에 결혼했고, 이후 가족은 작품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 아내가 음악을 연주하고, 일곱 아이들을 돌보고 기르는 모습을 그림으로 옮겼을 뿐 아니라 시와 기록으로 남겨 <우리의 영혼, 느린 움직임>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삶을 사랑하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드니의 부지런한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장식미술에 대한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러시아의 부호 이반 모로조프의 집에 벽화를 그려준 사례비로 신혼을 보냈던 브루타뉴에 별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갔지만 드니가 49세가 되던 해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자신도 73세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에 대한 평가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마티스나 고갱의 작품과 비슷한데 그들만 못한 ‘비주류’ 작가라는 평가 속에 드니는 뚜렷이 기억되는 작가로 남지는 않았다. 그러나 재주 많은 드니가 요즘에 태어났더라면? 장르의 위계를 뛰어넘어 일러스트레이터나 디자이너가 되어 더 큰 명성을 얻었을지 모른다. 바로 그런 현상을 요즘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러스트 베이스의 매력적인 이미지로 수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거느린 작가들이 이제 주요 갤러리와 미술관으로 진입하고 있다. 오스틴 리 Austin Lee(1983~)는 그중 가장 주목받는 작가다. 디지털 스케치를 3D 렌더링 조각으로 바꾸고, 스프레이로 칠해 마감하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한다. 오큘로스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의 공간에 그림을 그린 후 이를 그림이나 조각으로 치환하기도 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실재 조각을 보고 있는 것인지, 가상의 이미지를 AR 기술로 보고 있는 것인지 착각하게 만들 만큼 오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초현대적 기법을 사용하지만 작품에는 일상적인 사람, 식물, 동물 등이 등장하는데 우리 주변을 둘러싼 가장 흔한 데이터에서 주제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가족’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좁은 좌대 위에 옹기종기 발을 모으고 서 있는 다섯 인물로 구성된 ‘가족’은 어린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가족 같다. 전통적인 개념의 아빠, 엄마, 첫째, 둘째, 셋째의 모습이 아니지만, 서로를 보듬으며 떨어지지 않도록 꽉 붙잡고, 힘든 시간을 보낸 당신이 머물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는 바로 가족임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