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농부가 모내기를 하듯 반복하고 변형하는 과정을 거쳐 ‘가구’라는 열매를 수확하고 있는 워크샵파머스의 유정민 작가. 우직한 인상이지만 예리한 눈매를 지닌 그는 오징어 합판을 활용한 다양한 스툴 시리즈를 만들어왔다. 구불구불한 형태에서 위트가 느껴지기도 하고, 젊은 패기로 실험을 반복해온 집요함과 개성이 느껴진다. 다작을 하는 것이 목표인 그는 오늘도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실험하며 자신만의 가구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워크샵파머스라는 이름을 듣고 가구 제작을 떠올리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학부때 가치관이 비슷한 후배와 워크샵파머스라는 이름을 짓고 차근차근 가구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2016년에 시작했으니 햇수로 6년째다. 지금은 혼자 운영하고 있지만 반복과 변형이라는 주제는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농부가 농사를 짓거나 가구를 만드는 과정이 결국 반복하고 변형하고 수확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철학적인 발상인 것 같다. 반복과 변형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 우리가 공부했던 목조형학과에서는 가구로 표현하라, 가구를 통해 정체성을 말하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사실 가구로 뭔가를 표현한다는 것이 너무 제한적으로 느껴졌다. 표현을 하기에는 회화나 조각, 설치 같은 분야가 더 쉽지 않냐는 생각이었다. 나아가 ‘왜 나는 가구를 만들지’라는 질문에까지 이르렀고 농부처럼 반복과 변형을 하는 것을 삶의 행동양식이자 작업의 과정으로 삼게 됐다.
나무도 많은 종류가 있다. 왜 합판을 택했나?시작했을땐 가진 것이 없어서 최대한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찾으려고 했다. 쉽게 구해서 많이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찾던 중 합판을 사용하게 됐고 그중에서도 오징어 합판을 만났다. 아주 잘 휘어 곡선을 만들기는 좋지만 내구성을 보완하기 위해 사이사이에 레진을 넣어 굳혔다.
오징어 합판의 매력을 더 소개해달라. 오징어 합판을 사용하며 과연 이걸로 가구를 만들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레진을 섞으면서 단단한 형태를 만들 수 있었고 잘 휜다는 강점 덕분에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 표현할 수 있는 물감이 많아진 느낌이랄까.
다작을 하려는 이유는 뭔가? 이전까지는 하나에 푹 빠져서 붙잡고 있었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래서 중간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보다는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면서 많은 가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컸다.
본인의 가구가 어떤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나?아직까지 어떤 가구를 보고 감흥을 느껴본 적이 없다. 때문에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롤모델로 삼고 있는 디자이너를 이야기하기에도 애매할 것 같다. 내 가구도 다양한 디자인 사조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과정 자체를 얘기한다면 미니멀하다.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컴퓨터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다(웃음). 그래서 가구 스케치도 갤럭시 노트로 한다.메일에 일일이 답장을 못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결국 나를 찾아주신 분들과는 작업하려고 한다. 일이 재미있는지 아닌지는 진행을 해봐야 아는 것이고, 시작은 나를 원하는 마음이강한 이들과 작업을 진행했던 것 같다.
스툴이 많이 보이는데 그 외에 만들어보고 싶은 가구가 있나? 홍제동에 작업실이 있는데 좁다. 스툴을 많이 만든 이유는 다작을 하기가 좋고, 변형하기가 쉬운 가구이기 때문이다. 여건이 된다면 큰 테이블도 만들어보고 싶다. 최근 부산에 오픈한 디스크 도넛 커피 스탠드 카페에 스툴과 벤치를 넣었는데 사람들이 이리저리 옮기면서 앉고, 테이블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요즘 일상은 어떠한가? 최근에 끝난 전시에서 주문 받은 스툴을 만들고 있고, 오토캠핑에 빠져들고 있다. 백패킹보다는 필요한 장비를 다 싣고 갈 수 있는 오토캠핑이 적성에 더 맞는것 같다. 사야 할 장비가 은근히 많지만 재미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면? ‘저지레’인 것 같다. 어릴 때 부모님이 강원도 사투리로 ‘저지레 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계획을 해서 진행하기보다 항상 눈앞에 있는 것을 일단 어지르고 보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