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전하는 힘을 믿는다. 말과 소리, 글 대신 여러 번의 스케치와 붓질, 그 위에 수없이 덧대어진 색채가 그 자체로 언어가 되어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 존재한다고 여긴다는 의미다. 메시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의 감정을 촉발시키고 우리는 그 결과로 그림을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파리 기반의 작가 나탈리레떼는 마치 대화같은 일련의 과정에 가장 최적화된 예술가다. 많은 설명과 수식 대신 나탈리 레떼의 그림을 보면 그저 행복하다는 감정이 앞선다. 그림을 이루는 감각적인 터치와 자유로운 컬러 팔레트, 이윽고 완성되는 하나의 작품에는 어떠한 걱정과 불안마저 사라져 있는 듯하다.
제약이 없는 동식물을, 때로는 파리의 풍경을 그리다가도 여느때면 마치 소녀가 된 듯 귀여운 인형의 방을 그림으로 구현한다. 그런 레떼의 작품을 두고 원더랜드 혹은 동화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등 여러 방면 예술 장르에서 저마다의 명칭을 소유하고 있는 그녀는 중국인 아버지와 체코계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일 바이에른에 있던 외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레떼는 근처에 위치한 숲과 농장에서 뛰노는 날이 많았다. 자연스레 나무와 꽃이 펼쳐진 자연과 버섯, 동물을 보고 자랐던지라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자신의 상상을 실현하는 주요 소재로 심심찮게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없는 양분이 되었다. 뒤페레에 위치한 미술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파리 에콜 드 보자르에서 판화를 공부했던 나탈리레떼는 여러 예술 장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며 한층 더 풍부한 색과 자유로운 선을 구현하게 된다.
다만 사랑스러우면서도 때론 우스꽝스럽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대상은 누구나 그리고 싶어할 만한 특별한 것이 아니다. 꽃과 곤충 같은 미물과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물을 사랑스러운 몇 번의 손짓만으로 그녀의 세계로 들여올 뿐이다. 나탈리 레떼는 작품이 구현되는 장르를 가리지도 않는다. 실크스크린과 컵, 오브제, 러그, 스테이셔너리, 도자 등 그녀의 스케치는 그야말로 전 방위다. 6년 전 한국에서의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의 개인전은 물론이거니와 그 덕에 수많은 브랜드의 러브콜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와 작업하는가 하면 뷰티 브랜드 부르주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노프리 등과도 꾸준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많은 출판사의 삽화나 아스티에 드 빌라트, 빌락 등 도자와 문구 브랜드와의 협업이다. 페이지는 풍성하게, 도자와 문구의 익살스러움은 더욱 높이는 그녀의 그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구태여 더 이상의 이야기보다는 몇년 전 한국을 찾았던 그녀가 <메종>과 나눴던 인터뷰의 마지막 말을 빌려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해 달라는 물음에 답했던 몇 문장으로 그녀의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저 한국에서 다시 그녀와 작품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불어로 리컨포턴트 Reconfortant. 위안이라는 뜻이에요. 격려해주고 기운을 차리게 한다는 말이죠. 내가 바라는 건 그거예요. 나의 작품과 나의 그림이 당신에게 일말의 에너지를 줄 수 있기를. 그저 내 그림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