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의 마음으로 일궈내는 거장의 솜씨. 파올라 나보네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쌓아온 그녀만의 디자인 컬렉션 아카이브는 여전히 지치지 않는 디자인을 향한 갈증과 확고한 스타일, 시류를 읽어내는 눈에서 비롯된 것이다. 파올라 나보네가 지어 올린 거대한 감각의 제국은 지금도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가구 및 인테리어 디자이너, 데커레이터, 건축가, 큐레이터 등 무수한 수식어는 모두 파올라 나보네라는 인물을 설명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예술적 감각이 닿는 모든 분야가 곧 그녀의 영역이 되기 때문이다. 매해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디자인 축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인 만큼, 파올라 나보네는 항상 수많은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작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박스터, 에띠모, 제르바소니 등 유수의 브랜드에서 새로이 선보이는 컬렉션에서도 그녀의 이름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올해로 일흔이 넘는 고령의 나이지만 이러한 작업량을 보면 마치 신인 디자이너가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뿜어대는 열정을 보는 듯하다. 파올라 나보네의 디자인을 논할 때면 늘 푸른색 계통의 색상을 사용한다는점과 함께 전위적이고 장식적인 면모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실용성이 우선한다는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전형적인 디자인과 무용함을 지양하는 파올라 나보네의 면모는 대학 시절부터 드러났다. 토리노 공대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던 그녀는 당시 배웠던 전통적인 건축이 인간의 삶에 맞춰 변화하거나 부합하지 않는 고루함과 무용함을 지니고 있음에 회의를 느껴 미래지향적이고 실험적인 시도에 눈을 돌린다. 이에 알레산드로 멘디니와 연을 맺고 전위적이고 도전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던 디자이너 그룹 스튜디오 알키미아 Alchimia에 합류한다. 이곳에서 에토레 소트사스 등 여러 디자이너와 함께 디자인의 기초와 스케치를 실현시키는 다양한 기술을 연마한 그녀는 이어 1970~80년대 디자인계에 아방가르드 열풍을 불러일으킨 디자인 그룹 멤피스 Memphis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1983년에 이르러서는 커리어의 큰 변곡점이 되는 오사카 국제 디자인 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 일화로, 대표 작업을 하나만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50여 개가 넘는 작품 시안을 전달했다는 에피소드는 그저 웃어넘길 법하지만 다작을 위해 쏟은열정과 성실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프로젝트에서 또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건 동양과 서양의 면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 등 아시아와 이탈리아를 자주 오갔던 그녀였기에 동양의 전통 수공예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인 정신에 기반한 기술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전통이라는 이름의 과거디자인에서발견할수 있는 기술과 노력이 디자인을 더욱 가치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태국어로 일상, 보통을 의미하는 타마다 Tham Ma Da는 그녀가 최우선으로 하는 디자인 가치관인데, 일반적인 소재도 핸드 크라프트 등의 기술이나 디자인으로 얼마든지 현대적이고 특별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그녀의 기저에 만연해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특한 미학과 다작이라는 결과로 증명해내는 그녀를 어느 브랜드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는 지금도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트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는 제르바 소니에서 매 해 그녀의 신제품을 발견할 수 있는 건 물론, 작년과 올 해 초박스터, 나뚜찌, 로로 피아나, 로쉐 보보아 등 걸출한 리빙 브랜드에서도 그녀의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다. 공간 연출 작업 또한 꾸준히 선보였는데, 이탈리아의 휴양지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카스텔로 델 네로 호텔과 유명 호텔 체인인 25 아워즈 호텔의 산 파올리노 공간도 연출 작업을 맡았는데, 강렬한 컬러감과 입체적인 공간감을 자랑하는 이곳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역시!’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이 칼럼을 위해 메일을 주고받은 요 며칠 사이에도 그녀는 지금, 새로운 프로젝트에 연일 매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이와 성별은 열정과 실력을 이기지 못한다는 명제는 지금 파올라 나보네의 행보에서도 예외가 아니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게는 그녀의 다음 도전에 또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할 일만 남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