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도나 윌슨에서 선보인 텍스타일 컬렉션과 함께 누워 있는 도나 윌슨의 모습. 그녀는 크리에이처로 대표되는 인형 시리즈를 비롯해 쿠션, 러그 등 텍스타일과 관련된 제품을 매년 꾸준히 선보인다.
때로는 어떠한 영향 없이 무해하고 충만한 따뜻함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물론 이를 해소하는 데는 무수한 방도가 있겠지만, 그저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곡선을 그리며 지어지는 미소를 자아내는 기물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타개책이다. 영국 출신의 텍스타일 디자이너이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도나 윌슨의 제품이야말로 이를 충족시키는 예시 중 하나이지않을까. 여러 동물과 자연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읽어내 엉뚱하고 익살맞은 모습으로 재해석한 인형과 직접 손으로 뜬 쿠션 등 그녀의 손에서 탄생한 텍스타일 제품을 볼 때면 사념 대신 원초적인 행복의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도나 윌슨을 사랑하는 수많은 팬을 헤아려보면 이러한 생각에 대해 다시금 묘한 확신이 인다. 론칭 후 20여년이 지난 도나 윌슨의 첫걸음은 런던 왕립예술대학 졸업 전시에서부터 시작됐다. 스코틀랜드에서 조부모의 손에 자란 그녀는 지천에 펼쳐진 자연에서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자연스레 접하며 상상의 지평을 넓히는가 하면, 할머니에게서 배운 뜨개질을 삶의 일부처럼 대해왔다. 이러한 성장 배경을 양분삼아 도나 윌슨은 각기 다른 표정을한 뜨개 인형 시리즈를 출품 했다. 긴 다리와 동그란 눈 등 제각기 다른 외형적 특징을 지닌 당시 작품에 수식어처럼 따라온 무수한 호평은 도나 윌슨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하기에 충분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미니 자이언트 크리처를 안고 있는 도나 윌슨. 그녀는 자신이 만든 모든 인형에 나름의 스토리를 부여하는 데 주력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인형을 구매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추억을 선사할 것이라 믿고 있다. © Gareth Hacker
그렇지만 도나 윌슨을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크리에이처’의 탄생에 있다. 앞서 선보인 뜨개 인형 시리즈의 연작 개념으로 제작된 것인데, 어린 시절부터 봐온 친숙한 동식물에 도나 윌슨만의 생각과 시선으로 재해석해 만들어진 것. 곰돌이의 털, 여우의 눈 등 각각의 생명체를 대표하는 특징을 부각시키거나 생각지도 못한 독특한 외형적 요소를 추가해 만든 이 인형 시리즈는 모노캣, 루디라쿤 등 저마다의닉네임이 붙어 있는가 하면, 각각의 성격이나 특징까지도 부여해 마치 작은 세계관을 감상하는 듯한 재미를 준다. 가령, 여우의 모습을 한 시릴 다람쥐 여우 인형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장난기 많은 성격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고, 시릴의 자식이라는 설명이 붙은 랄프 앤 릴리 인형을 보면 도나 윌슨만의 상상에 기반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자리한다. 이어 제품의 A/S 서비스 센터를 애니멀 클리닉, 즉 동물 병원이라 지칭하는 점 등 독특한 디자인에 이야기를 덧붙여 각각의 제품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모습을 보면 실존하는 생명체를 마주하는 듯한 착각도 더러든다.
누워 있는 곰 캐릭터가 앙증맞은 블랭킷.
독특한 개성을 입은 디자인에서 오는 위트와 익살스러움을 고스란히 유지한 쿠션 시리즈, 레이니 데이, 블라 블라 등 도나 윌슨의 시그니처 격인 패턴 직물 시리즈 등도 제작하며 그는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수장으로서의 행보를 본격화했다. 도나 윌슨이 지닌 또 하나의 강점은 바로 핸드메이드에 있다. 브랜드 론칭 초기만 하더라도 직조와 뜨개질 등 하나의 제품을 제작하는 모든 과정이 그녀의 손에서 이뤄졌기에 같은 시리즈임에도 형태에서 조금씩 차이가 존재했다. 세계인이 찾는 브랜드로 거듭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할 수는 없지만, 편직 과정을 거친 각 패널을 재단하고 바느질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양보가 없다. 도나 윌슨의 같은 제품임에도 각 제품마다 보이는 미묘하고도 재밌는 차이와 은은히 전해지는 따뜻함은 수작업만이 전할 수 있는 정성과 시간이 근간에 있기 때문이라 전할 만큼,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과정은 도나 윌슨의 정체성을 보다 공고히 해준다. 이렇듯 제품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과 애정은 자연스레 많은 브랜드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히얼 컴즈 더 선 쿠션.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과 협업해 탄생한 물개 인형이나 존 루이스 백화점과 협업해 선보인 유아용 의류, 에르메스 파리 쇼룸의 디스플레이를 도맡은 점만 보더라도 도나 윌슨은 지금,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브랜드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안주하지 않는다. 최근 선보인 스톤웨어 식기시리즈 등 매해 두 번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테이블 웨어와 가구 등 보다 확장된 분야로 시야를 넓히는 시도 또한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 덕분에 도나 윌슨의 상상력과 개성을 입은 제품을 더욱 폭 넓게 만나 볼 수 있게 됐다. “저는 사람들과 일련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소소한 행복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이요. 손으로 제작하는 이 작은 기물이 그 역할을 부디 다 해냈으면 해요.” 자유로운 생각과 시선으로 제품의 모양을 빚고, 시간과 수고로움을 통해 기워낸 고유성으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도나 윌슨. 그의 말처럼 저마다의 개성과 상상력으로 세상에 등장한 이 작은 사물을 통해 비록 대단치는 않더라도 모른 채 지나쳤던 찰나의 감정을 다시금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2021 가을 컬렉션으로 출시된 도나 윌슨의 쿠션, 크리에이처 컬렉션. 다양한 크기의 쿠션과 인형이 즐비하다. 자연과 동식물에 영감을 받는 그녀의 상상력이 온전히 담겨 있다.
2021 가을 컬렉션으로 출시된 도나 윌슨의 쿠션, 크리에이처 컬렉션. 다양한 크기의 쿠션과 인형이 즐비하다. 자연과 동식물에 영감을 받는 그녀의 상상력이 온전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