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부터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 전시 작가로 선정된 김윤철을 만났다. 김윤철 작가는 미술계를 넘어 세계의 과학자에게 영감을 주는 미술가로 알려질만큼 놀라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la Biennale di Venezia에 가본 적이 있는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2년에 한 번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죽기 전에 꼭 한번 가 봐야 하는 문화 축제다. 1895년 시작 된 가장 유서 깊은 비엔날레이며, 본 전시 외에 국가관 전시와 시상 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에 ‘미술 올림픽’이라 불리기도 한다. 작품의 품격이 곧 국가의 자존심을 상징하기 때문에 과연 한국관에서 어떤 작가의 전시가 열릴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치열한 심사를 거쳐 김윤철 작가가 선정되었고 출국을 앞둔 그를 작업실에서 만났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출국 준비로 분주한 상태였지만, 한국관에 전시할 8m 대형 작품 ‘크로마’의 형태를 조금이나마 미리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20세기 최고의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이 만든 한국관을 21세기의 새로운 미디어 아티스트 김윤철이 빛낸다는 것도 의미가 깊다.
“한국관 설립은 백남준 작가가 후배 미술가를 위해 이룬 소중한 업적입니다. 베니스의 영구 국가관은 29개뿐이며, 중국 등 많은 나라가 국가관이 없어 여러 건물을 옮겨 다니며 전시를 합니다. 때문에 미술가 개인으로서의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관을 기존과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변모시켜야 한다는 소명을 가지고 있어요.”
한국관은 규모도 작을 뿐 아니라 일반적 전시장과 같은 사각의 화이트 큐브가 아니기 때문에 전시하기에 어려운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김 작가는 한국관을 공원 속의 작은 오두막으로 만들어,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장치가 관람객과 소통하고 출렁이는 재미있는 풍경을 상상했다. 그래서 천장의 마감재를 뜯고 노출 콘크리트를 드러내 익명의 폐허 같은 공간을 창조했다. 햇빛과 인공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블랙 박스의 한국관 전시는 비엔날레를 맞아 수백 개의 전시가 열리는 베니스에서 단연 주목받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많은 전시를 모두 볼 수 없기에 인기 전시에만 관람객이 몰리는 것이 베니스 비엔날레 시즌의 특징이다. 또한 ‘COREA’라는 간판이 붙었다고 해서 정형화된 국가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거부하려고 한다.
“한국의 지역성이 아닌 가장 현대적인 한국 예술을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총 5점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중 입자검출기 ‘아르고스’가 우주 입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우주 차원의 경계이지요. 한국관에서는 국가와 인간을 넘은 인간과 비인간인 기계, 물질, 입자가 하나의 사건이 되는 예술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떠올린 한국관 전시 주제는 ‘자이어 Gyre’다. 자이어는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가 시 ‘더 세컨드 커 밍 The Second Coming’을 통해 노래한 나선형의 순환 개념이다. 예이츠는 인간의 문명이 자이어를 통해 발전하고 쇠퇴해 새로운 문명이 크로스 된다고 했다. 문명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순환되며, 어느 순간 거대한 원이 희미해지고 새롭게 응축된 힘이 모인다는 것. 김 작가는 자이어가 세상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것에 매료되었다고 설명한다.
“자이어는 태평양 바다가 순환하는 형태, 은하수가 흩어지는 모습, 회오리 바람뿐 아니라 내 작품의 소용돌이와 유체 운동까지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많은 작가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예술이란 무엇인지, 미술 전시의 의미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 온라인 전시가 대세가 되고 있지만, 아주 작은 그림을 감상하는 것에도 직접적 조우가 필요하지요. 세계가 팬데믹으로 자유를 잃은 상황이 혹시 자이어가 전환점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것은 아닐까요?”
사회나 역사뿐 아니라 모든 것은 소용돌이가 있어야 현상이 일어나기에, 자이어를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삼은 것. 5점의 작품 중 가장 큰 ‘크로마’는 펼치면 50m나 되는 대작이다. 매듭 꼬임의 형태는 8m이고, 셀 382개로 이루어져 있다. 각기 다른 382개 셀의 색채 패턴이 만들어낼 아름다운 물결이 상상이 되지 않는가!
“신작 ‘태양들의 먼지’는 프랑스 작가 레이몽 루셀의 소설 <태양의 먼지 Poussiere de Soleil>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초현실주의에 큰 영향을 준 레이몽 루셀로 인해 이미 네덜란드에서 <천체의 먼지들>이라는 전시를 한 적도 있을 만큼 그의 세계관에 매혹되었습니다. ‘태양들의 먼지’라는 제목은 유체가 움직일 때마다 색이 변하는 것을 상상하며 명명했고, 과학 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작품이 만들어져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 은하계의 절대적 중심인 태양도 언젠가는 흩어질 것이다. 우리는 인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태양도 별일 뿐이니 수명을 다하면 흩어지게 될 것이며,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태양’을 ‘백인 금발남성’의 상징으로 은유할 수 있기도 하다. 김 작가는 백인 금발 남성의 생각에 기반해 현대미술사가 쓰여졌다고 본다. 그래서 모든 자이어가 흩어지는 팬데믹 시대에 비엔날레를 통해 우리가 배웠던 미학과 사유가 흩어지고, 새로운 구심점을 찾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태양의 존재처럼 절대적인 것에 갇혀 있어요. 지금이 새로운 별들이 태어날 전환기라고 생각하기에 제목이 복수형인 ‘태양들의 먼지’인 것이지요. 실제로 이 작품은 수만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던 돌을 갈아서 나노 입자의 형태로 만든 가루로 이루어졌습니다. 태양들의 먼지로 이루어 진 가루이지요. 오랫동안 빛을 못 본 돌이 내 작업실에서 빛을 발하는 물질로 전환되었다는 것이 재미있어요.”
그가 만들어낸 나노 입자가 프리즘처럼 아름다운 컬러를 보여주며 발색하는데, 이렇게 분자 구조로 만드는 색은 과학에서는 구조색이라고 한다. 구조색은 과학계의 중요한 주제이며, 지정된 색이 아니라 주체가 되는 색이라는 점에서 의미 깊은 작품이다.
김윤철 작가는 이렇듯 뛰어난 상상력으로 인해 과학계에서도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독일 한림원에서 천체 과학자들과 심포지엄을 가졌고, 우리나라 고등과학원과도 일한다. 한국관에서 선보이는 작품 ‘임펄스’와 ‘아르고스’는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CERN의 커미션 작품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그가 과학에서만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에서 전자음악, 독일에서 미디어아트를 공부했다. 그래서 오는 9월 한국관에서 직접 연주하고, 뮤지션과 퍼포먼스도 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시국이라 일부러 4월 전시 오프닝이 아니라 가을로 날짜를 잡았다. 9월 추석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베니스를 선택할 좋은 이유가 될 것 같다. 재미있게도 그는 꿈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으며, 작품마다 태몽도 있다. 2년 전 자연사 박물관에서 전시를 여는 꿈을 꾸고, 너무 생생해서 드로잉으로 그려두었다고 한다. 박물관 유리 캐비닛에 흙이 가득 차 있고, 흙 속의 큰 뱀 위로 노란 꽃들이 가득한 풍경 스케치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그 드로잉을 다시 보니 5점의 한국관 작품이 모두 있어 다시 한번 놀랐다. 예술과 과학, 먼지와 우주를 넘나드는 김윤철 작가의 전시를 지면으로 나마 미리 만나 볼 수 있어 반갑다. 오는 11월27일까지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