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스타일의 디자인부터 조형미와 기하학적으로 가미된 위트까지 디자인의 범주에 한계를 두지 않는 콘스탄틴 그리치치는 이미 자신만의 견고한 디자인 세계를 구축한 자다.
매년 세계 각국에선 다채로운 컨셉트의 디자인 축제가 열린다. 성격도 목적도 제각기 다르지만 유달리 매번 언급되는 디자이너는 늘 존재한다. 활발한 작업을 선보이거나, 이미 검증된 디자인적 역량을 지닌 거장들의 이름이 바로 그 부류일 터. 콘스탄틴 그리치치 Konstantin Gricic는 두 영역에 모두 해당되는 몇 안 되는 디자이너 중 하나다.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골동품을 복원하는 장인의 견습생으로 일했다. 하지만 오래된 것의 복구가 아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내면의 열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결국 영국행을 선택한 그는 본격적으로 가구를 제작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존 마크피스 스쿨에서 캐비닛 제작을 공부하며 장인 정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1988년에 이르러서는 영국 왕립예술대학에 입학해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다. 가구 제작에 대한 기초적인 실무를 그곳에서 익힌 그리치치는 졸업 이후 재스퍼 모리슨 스튜디오에서 본격적으로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쌓기 시작했다. 콘스탄틴 그리치치가 공부에 매진할 즈음에는 한창 모더니즘 열풍이 디자인계 전반에 불어닥치는 시기였다. 그 또한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형태와 소재는 최대한 단순해야 하며 보다 절충적일 것. 그런 이유로 그의 디자인 핵심은 저렴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부각되었다. 막 독립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한 1996년에 런던의 디자인 매장 SCP를 위해 제작한 프라도 데스크나 무어만과 함께 두 개의 삼각대로만 만든 옷걸이 헛 AB 그리고 그리치치가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계기가 된 플로스의 메이데이 램프 등을 보면 그리치치가 디자인적으로 추구한 가치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물론 장식적인 요소는 배제했지만,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적 정체성을 선보이길 바랐다. 선택한 방법은 간결하되 재밌는 조형미를 부각시키는 것.
2004년 마지스와 협업해 제작한 원 체어와 삼손 체어는 콘스탄틴 그리치치를 대표하는 시그니처이자 그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제품이다. 외관은 단순하지만, 도형적인 요소를 활용해 기하학적인 화려함을 내포한 작업은 실용성과 미학을 고루 충족하는 마스터 피스다. 또한 그리치치의 가구가 보다 더 가치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가구 제작에 사용된 소재에 있다. 폐기 플라스틱 등 버려진 요소를 재활용하거나 환경친화적인 소재를 가구에 끌여들이거나, 원 체어의 받침대처럼 건축자재로 활용되는 시멘트 등의 재료를 접목시킨 것이 참신함을 자아냈기 때문. 세계 유수 브랜드와의 협업으로도 잘 알려진 그리치치는 플로스나 무어만, 마지스 등과 지속적인 인연을 이어가는 반면, 모로소나 무지, 드리아데, 클래시콘, 이딸라 등 새로운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매년 꾸준한 작업을 선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년만 하더라도 무티나, 비트라와 함께 타일, 스토리지 등 총 4가지 프로젝트를 선보였으며 올해에도 두 브랜드와 함께 새로운 제품인 하이브 타일과 찹 스툴을 내놓았다. “이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송두리째 뒤바뀌었습니다. 자연과 사람이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물건에 둘러싸여 집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우리에게 친숙한 가구를 만들어야겠지요.” 이번 칼럼을 위해 이메일로 주고받은 짧은 대화에서 다시 한번 콘스탄틴 그리치치의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활발한 행보를 자랑하는 그의 다음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