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듀오 뮬러 반 세베렌은 극도로 정제되고 절제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선과 면을 조합한 단순하고도 기본적인 구조에서 고유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그들의 디자인 세계를 들여다봤다.
2020년 발표한 올 튜브스 컬렉션.
조명 기둥의 형태에 다양한 변주를 준 N°램프 시리즈.
디자이너 듀오로 활동하는 많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부부의 연을 맺고 있는 이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사진작가였던 피엔 뮬러 세베렌과 여러 조형을 다루는 작가 하네스반 세베렌 또한 부부가 동료로서 낼 수 있는 시너지를 적극 활용하는 이들이다. 2011년 부부였던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합한 뮬러 반 세베렌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가구디자인 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시작은 우연처럼 다가왔다. 벨기에 앤트워프에 위치한 발레리 탄 갤러리에서 열린 가구 전시에 그들이 만든 가구를 출품하게 된 것. 당시 정확한 명칭은 붙이지 않았으나, 의자와 선반을 책상과 합치고 그리고 테이블과 조명을 조합하는 등 모듈로 제작한 설치형 가구는 생소했던 그들을 단숨에 신예로 발돋움할 수 있게 했다. 이후 보금자리와 작업실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살고 있는 집 바로 옆에 스튜디오를 마련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언제든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발레리 탄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가구를 한층 발전시켜 듀오 시트+램프, 랙+시트 시리즈를 만드는 한편, 뮬러 반 세베렌만의 스타일을 위한 디자인적 고민을 거듭했다. 뮬러 반 세베렌은 모든 디자인의 시작을 재료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라 여겼다.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면서 특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형태를 고민한 것. 두 사람 모두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했기에 디자인 과정에서 체계적인 순서를 고수하기보다 다소 직관적인데, 재료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게 이뤄진 다음 고안하고자 하는 가구의 형태와 색, 텍스처 등을 떠올리는 과정을 거친 셈이다. 이해와 직관이 혼합된 그들의 결정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 소재의 특징을 부각하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는 대거 덜어내고 단순하고 정제된 상태에서 선과 면을 활용한 도형적인 요소로 형태의 변주를 주는 것이 뮬러 반 세베렌이 선택한 방향이었다.
겐트 디자인 뮤지엄과 함께 협업한 1 0주년 기념 전시.
시그니처 제품인 알루 체어.
가령 그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N° 램프 시리즈는 선처럼 표현한 조명의 지지대를 휘거나 곧게 세우는 식으로 선보이거나, 알루 체어의 경우 면과 면을 잇는 단순한 형태를 취했지만 각 면에 다양한 색을 입혀 독특함을 더했다. 특히 2020년 선보인 알루미늄 소재의 올튜브스 컬렉션은 그들의 가치관이 한층 극대화 됐음을 발견할 수 있다. 원형 알루미늄 튜브를 반복적으로 붙여 투박함을 줄이는 동시에 특수 코팅을 거쳐 알루미늄 특유의 차가운 성질은 낮춰 온화한 느낌을 낸 점이 흥미롭다. 단순하지만 다양한 변주를 꾀하는 뮬러 반 세베렌의 프로젝트는 여러 브랜드와 합을 맞추기에도 제격. 첫 가구를 선보이는 자리였던 발레리탄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서브 브랜드 발레리 오브젝트의 대표적 작가로 활동하는가 하면, 에르메스와 협업한 스테이셔너리부터 크바드랏과 함께 직물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고, 리폼과는 알루 체어의 디자인에서 착안한 주방의 상하부장과 세면대 시리즈 ‘매치’ 등을 출시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뮬러 반 세베렌은 씨씨- 타피스와 함께 선과 면을 패턴화한 러그 옴브라 시리즈를 선보여 그들의 첫 시작점을 화려하게 기념했다. 동시에 뮬러 반 세베렌의 10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겐트 디자인 뮤지엄과 함께 작품과 가구가 어우러진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그리고 2022년 그들은 조금 더 넓은 시야를 지닌 채 작품활동에 매진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단순히 재료를 기반으로 가구나 오브제를 창조하는 것을 넘어, 이 모든 것이 놓인 공간의 특징, 동선 등을 고려해 공간과 사람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고민할 것이라 말했다. 한층 더 삶에 가까워진 예술을 선보일 뮬러 반 세베렌의 행보를 주목해보는 것도 좋겠다.
씨씨-타피스와 협업한 옴브라 러그.
부부이자 디자이너 듀오인 뮬러 반 세베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