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m의 높은 층고를 가진 스튜디오는 공간마다 색깔이 다르다.
메인 홀은 정원에서 발견한 형형색색의 녹색 스펙트럼으로 연출했고, 욕실은 주황색이다.
요린더 포그트 Jorinde Voigt의 작업실은 베를린 남동부 슈프레 강 옆 산업단지에 위치한다. 그녀는 대학을 다닐 때 이곳을 처음 발견했고, 언젠가는 여기에 스튜디오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건물을 매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2018년 이곳에 그녀의 작업실이 만들어졌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폐허에서 ‘사랑해’라는 낙서를 발견했고, 그때 이곳에 완전히 매료되었지요. 스튜디오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슈프레 인근 지역을 개발하던 건축가 다니엘 베르헐스돈크와 손잡고 개조를 시작했습니다. 건물에는 유연한 사용을 위한 여러 공간이 있는데, 각각의 방에 모두 다른 색상을 선사했어요.” 색상은 그녀에게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소재다. 가장 크고 밝은 메인 홀은 인근의 정원에서 사계절 발견할 수 있는 형형색색의 녹색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졌다. 주변 자연에 대한 모든 기억의 합체처럼 말이다. 이 공간은 온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울창한 화분들을 놓았고, 이곳에서 그녀는 휴식을 취한다. 세면대는 주황색 공간에 설치했고, 바닥과 계단은 검은색을 선택했다.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스튜디오 외관. ©Amanda Holmes
요린더 포그트는 건축가 다니엘 베르헐스돈크와 손잡고 세상에 하나뿐인 창조적인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메종>과의 인터뷰를 반가워했다.
그녀는 강렬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고, 평범한 하얀 벽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 미술가로 작업을 시작했을 때 색칠을 한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어요. 2009년 선보인 ‘식물 코드 Botanic Code’ 연작은 색상을 접목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첫 번째 작품입니다. 식물원을 산책하면서 내가 마주친 색깔에 대한 연대기 기록을 바탕으로 한 알루미늄 소재의 작품이지요. 그 후로 종이에도 색칠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스튜디오에도 색이 불러일으키는 분위기에 따라 색깔을 골랐어요. 예를 들어, 가을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멋져서 작업실에 이를 배가시켰고요.” 건축은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이전 스튜디오는 블랙과 화이트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곳은 완전히 다르다. 건축가 다니엘과의 호흡도 환상적이었다. 그는 이곳을 하나의 집과 같이 디자인했다. 사무실, 서재, 옥상 테라스와 부엌은 가장 중요한 작업실과 곧 바로 연결된다. 그들은 목재, 금속, 진흙, 시멘트와 같은 자연적인 재료를 선택했고, 이는 슬라이딩 도어의 눈부신 표면과 지붕의 발광과 대조된다. 12m의 높은 층고를 가진 스튜디오에서 방문객들은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어시스턴트와 방문객이 매일 찾아오지만, 필요하다면 그녀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스튜디오는 널찍하다.
그녀는 자신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메종>과의 인터뷰를 반가워했다.
그녀는 신작에서 단순한 선이었던 것을 메스로 절개하고 여러 겹의 도면으로 구성했다.
원래 베를린 중심부에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슈프레 강변에 이 새로운 작업실을 열면서 그곳을 집으로 개조했다. 유명 미술가 토마스 사라세노, 안젤름 라일레, 알리차 콰데의 작업실도 그녀의 스튜디오 인근에 있다(안젤름 라일레의 정원이 아름다운 작업실은 <메종> 1월호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스튜디오는 이상적인 작업실이에요. 하지만 나는 지금의 작업실에 만족하지 않아요. 다시금 새롭게 스튜디오를 디자인하고 싶고, 만약 더 이상 변모시킬 수 없다면 즉시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 미술가로, 워킹맘으로 대단히 바쁘겠지만 언제나 열정이 넘치는 그녀의 에너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스튜디오에 출근한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하루 종일 무수히 많이 발생하는 어려움을 뚫고 계획했던 대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오후 6시에는 집으로 가서 아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가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 청담동 쾨닉 갤러리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기 때문에 요린더 포그트의
팬이 많다. 어린 시절 첼로를 전공한 그녀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외부 조건과 어떻게 교차하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드로잉 작업을 해왔다. 특히 서울 쾨닉 갤러리 전시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로드비히 판 벤토벤, 소나타 Ludwig van Beethoven, Sonata 1-32’ 시리즈와 더불어 베토벤의 소타나도 공간에 울려퍼졌다는 점이다. 시각적으로 작품을 보면서 작가에게 영감을 준 음악까지 청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관람 방식이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곳은 마치 한 채의 집과 같이 구성되었다. 사무실, 서재, 테라스와 부엌은 가장 중요한 작업실과 연결된다.
바닥과 계단을 검은색으로 칠해 다른 공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어렸을 때부터 베토벤을 사랑했고, 그의 음악을 통해 내 안의 음악적 공간 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베토벤이 음악을 전달하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어린 내게는 거대해 보고,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어떤 음악도 내 안에 그렇게 강한 감정의 시각적 현상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어요.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가 나를 산과 바다, 가까운 곳과 먼 곳, 터널과 언덕, 안개와 물, 떨림과 경직 사이를 오가는 끝없는 지형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에 태운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베토벤은 내 안의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고, 깊은 슬픔으로부터 나를 끌어올려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나의 개인 비행기 조종사라고 할 수 있지요.” 지난해는 베토벤 탄생 250년이었기 때문에 쾨닉 서울에 이어 독일 본미술관에서 열리는 <소리와 침묵 Sound And Silence> 전시에도 참여했다. 베토벤의 청각장애를 시작점으로 완전한 침묵의 불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그녀는 음악, 철학, 문학을 공부했지만 최종적 관심이 미술로 옮겨간 계기는 무엇일까? 그녀는 초기에 사진을 매체로 사용하다 드로잉 등 점차 작품을 변화시키고 있다.
금박과 잉크, 파스텔과 연필로 그린 2018년 작품 ‘Immersive Integral I’.
‘Trust+Rain in June III’은 6월에 내리는 비를 연상시키는 2020~21년 작품.
“서울에서 선보인 ‘베토벤 소나타’ 연작은 음악이 표현이나 특정한 해석을 제외하고 자체적으로 주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어요. 특히 베토벤의 악보에 새겨진 감정선을 표현할 표기법을 발전시키는 것이 큰 도전이었지요. 소나타의 원곡 악보와 기보법을 이탈리아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이러한 발췌 작업은 나만의 고유한 작업 방식입니다.” 결국 그녀는 음악이 작동하는 방식이 미술이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완전히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은 여전히 그녀에게 중요한 부분이지만, 스튜디오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자택에는 각종 악기가 구비된 음악실이 있고, 요즘은 아들에게만 첼로 연주를 들려준다. 최근에는 완전히 다른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녀가 <메종>의 인터뷰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인 것은 독자들에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작은 ‘컷아웃’ 작품이다. 단순한 선이었던 것을 메스로 절개하고 여러 겹으로 도면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앞과 뒤가 동시에 보이는 일종의 지형을 형성했고, 시간적 시퀀스의 음악적 배치를 위한 기초가 되었다. 표면의 절단과 분리로 만든 라인과 부품의 리드미컬한 재배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4월 말, 베를린 갤러리 위크엔드 기간에 작업실에서 전시회를 연다니 기대가 된다. 예술의 도시 베를린의 열기가 벌써부터 느껴지는 듯하다. 그녀는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품이 공간 밖에서 자율적으로 빛을 낸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늘날의 스튜디오는 창작 과정을 볼 수 있는 공공장소이기도 하다.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영감을 받게 될 베를린 미술 애호가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