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간에서나 최적의 빛을 전하기 위한 조명 디자인 브랜드, 롤앤힐 이야기.
공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닥과 벽 등에 적용되는 마감재라면, 백미를 장식하는 것은 단연 조명에서 발하는 빛이라 말할 수 있겠다. 조명의 모양, 빛의 방향과 세기 그리고 자연스레 생기는 그림자에 따라 공간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 당연히 유구한 역사를 지닌 조명 브랜드일수록 더욱더 조명이 공간에 끼치는 영향과 미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과 참신함으로 조명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브랜드 또한 생겨나고 있다. 설립자이자 제품 디자이너 제이슨 밀러 Jason Miller가 미국을 기반으로 설립한 브랜드 롤앤힐 Roll&Hill 또한 후자에 속한다. 유럽을 기반으로 한 역사 깊은 조명 브랜드와 달리 갓 10년이 지난 신생 격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국인 사이에서는 꽤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롤앤힐의 설립 이전부터 개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앤틀러 Antler 샹들리에를 발표하는 등 미국의 신진 디자이너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던 제이슨 밀러는 브랜드를 운영함에 있어 새로운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가 전에 없는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여실히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의 디자이너이자 프로듀서가 된 그는 서로간의 조율이 필요한 두 직군을 모두 경험한 바 있는 인물로, 이로 인해 롤앤힐은 젊은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브랜드 파워의 근간으로 삼을 수 있었다. 롤앤힐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바로 공간에 최적화된 조명을 제작하는 것. 조명이 들어가는 장소의 특성과 위치 등 공간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가 기반이 되어야 했기에, 브랜드 운영에 있어 보다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성격보다는 부티크 성격이 강한 편. 제작 방식 또한 아틀리에의 습성을 지녔다. 조명에 들어가는 세세한 장치까지 직접 수공정을 거치는 것을 고수하고 제작 과정에서도 소비자의 요청을 적극 수용하는 것을 최우선한다. 수작업으로 진행되기에 디테일적인 측면의 완성도를 높이는가 하면 주 소재라는 개념 없이 다양한 소재를 근간으로 하는지라, 디자이너들이 그릴 수 있는 아이디어 범위 역시 꽤나 넓은 편. 현재 함께하는 디자이너로는 린지 아델만, 필립 말루인, 벡 브리테인, 레이디스 앤 젠틀맨 등이 있는데, 대개 황동, 청동, 가죽, 나무, 로프, 블로잉 유리 등 다양한 소재의 팔레트를 기반으로 조명을 제작한다는 점이 관심을 끈다. 이러한 롤앤힐의 노력은 2015년 뉴욕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현재도 롤앤힐의 시그니처 라인 격인 칼잔KarlZahn의 바운스 조명을 필두로 한 여러 디자인을 출품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
롤앤힐에서 만나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현대와 고전의 조합, 네오 클래식 스타일의 디자인을 다수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장 제이슨 밀러가 블로잉한 유리 구체를 기하학적으로 배열한 모도 샹들리에나 손으로 조립한 작은 황동 조각을 다소 야성적으로 이어붙인 조명 더 그리드록을 보면 현대적인 기법과 고전적인 인상을 동시에 선사한다. 조명을 근간으로 한 브랜드지만, 이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 2020년 미시간에 위치한 목재 제조 회사 알렉시스와 합병을 거친 바로 다음해 4월, 제이슨 밀러와 칼잔을 필두로한 목제 가구 컬렉션을 깜짝 공개했기 때문. 대표작 렉싱턴 테이블이나 테이퍼 바 스툴 등을 보면 이전에 선보인 조명 컬렉션처럼 화려하고 독창적인 디자인보다는 기능적인 측면을 부각한 점이 돋보인다.
“현재 사랑받는 많은 가구가 유럽에 근간을 두고 있어요. 브루클린에 위치한 롤앤힐은 미국인들이 사랑할 수 있는 그리고 세계가 사랑할 수 있는 미국 기반의 브랜드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전적인 기법과 요소 그리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그 시작을 위한 우리의 무기가 될 것 입니다.” 수장 제이슨 밀러의 말처럼 서서히 자신만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롤앤힐의 행보를 흥미롭게 지켜보는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