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예술 분야에서 흑인 예술가들이 적극적인 행보를 드러내고 있다.
올해 서펀타인 미술관의 파빌리온 프로젝트에 선정된 새즈터 게이트 역시 그들 중 한 명이다.
매년 여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서펀타인 미술관의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새롭게 시작됐다. 2000년 미술관의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선행사로 시작되어20여 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데, 자하 하디드의 첫 참여를 시작으로 렘쿨하스. 헤르조그 드 뫼롱, 알바로 시자, MVRDV, SANAA, 도요 이토 등 참여 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이곳을 통해 영국에서 첫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한 자하 하디드는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지속인 성공을 거듭함에 따라, 갤러리 신관에 임시건물이 아니라 야외로 확장되는 영구적인 카페테리아를 맡기도 했다. 그녀가 2016년 세상을 급작스럽게 떠나면서 이곳은 영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하디드의 작품이 된 것도 특별하다. 프로젝트에는 건축가뿐 아니라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 웨이웨이 등 예술가의 참여도 다수 있었는데, 올해 선정된 작가도 건축가라기보다는 예술가로 활동하는 새즈터 게이트(1973)다.
흑인 예술가들의 활약이 세계적으로 두드러지는 행보가 이곳에서도 드러나는 것일까? 게이트는 최근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관 대표 작가로 참가하며 대상을 수상한 시몬 레이 작가와도 공통점이 있다. 모두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흑인 작가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작업의 주요 방편으로 도자를 활용하는 것마저 비슷하다. 게이트는 미국에서 도자 예술을 전공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예를 본격적으로 수련하였으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도시계획 분야를 공부하고 현재 시카고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시카고 하이드파크 아트센터에서 흑인, 아시아, 여성 등 다양한 인물의 삶이 중첩되는 가상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전시회를 통해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고, 리빌트 재단이라는 비영리 플랫폼을 설립하여 예술가와 지역사회를 후원하는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있다.
서펀타인 파빌리온을 위해 게이트는 검고 둥근 원통형 파빌리온을 제시했다. 로마의 판테온처럼 둥근 형태에 중앙 천장이 뚫려 있는 구조다. 그러나 아프리카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에는 카메룬 북극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흙으로 만든 오두막 혹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간다의 카수비 왕의 무덤이 먼저 생각날 것이다. 사실 우리 문화에도 둥근 오두막이나 왕릉이 있었으니 이러한 형태의 건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가는 오랫동안 도서관과 기록보관소를 뒤지면서 인종, 공간, 역사를 뛰어넘어 모든 문화에 속해 있는 어떤 공통점을 찾아내는 작업을 지속해왔는데, 본 프로젝트는 그간의 활동을 보여주는 가장 건축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은 건축이라기보다는 이곳에서 일어나게 될 다양한 프로젝트다. 6월 10일 개장하여, 10월 16일까지 이어지는 기간 동안 명상, 음악, 무용, 시, 도자기 워크숍, 일본 다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며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는 창조적 플랫폼 역할을 할 예정이다. 중세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채플’이 종교를 통한 사회 포교 활동을 했던 것 처럼, 블랙 채플은 다양한 사람을 모으고 교류하게 함으로써 편견 없이 바라보는 시선을 촉구하고, 그럼으로써 흑인뿐 아니라 모든 소외된 이들, 잊혀진 존재의 이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팬데믹이 끝나간다는 기쁨 한편에는 곳곳에서 시작된 전쟁 소식으로 불안이 엄습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순간, 블랙 채플에 모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을 갖는 것, 어쩌면 우리에게 예술이 있는 이유를 다시 한번 알려주는 프로젝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