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리구슬에 상실과 부재의 고통을 담아 알알이 꿰어 예술로 꽃피운 장-미셸 오토니엘은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황금 목걸이’는 오토니엘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세계 곳곳의 정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면의 깊은 슬픔을 치유하고 마음을 수련하는 일,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창을 열어 환기하는 일,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이 모든 것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예술의 역할에 대해 의심해본 적 있다면 장-미셸 오토니엘의 족적을 살펴보고 그 행보를 따라가보자. 작가가 예술적 귀감을 얻고 작품의 영감을 받는 곳은 자연이다. 그는 자연이 전하는 경이와 원초적 아름다움이 현실을 둘러싼 실재와 관념에 또 다른 시선을 열어주는 촉매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어찌 보면 형형색색의 공학 재료인 유리를 사용하는 작업으로 유명한 오토니엘과 대립되어 보이지만, 그는 늘 자연에 뿌리를 내리고 작업을 확장해왔다. 그러던 중 작가의 예술관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발생한다. 양립할 수 없는 사랑과 성직 사이에서 방황하던 동성의 애인이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것. 이를 계기로 작가의 작업은 변곡점을 맞이한다. 그 당시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에 허덕이다 간신히 찾은 소재가 바로 유리다. 아름다움 속 공포심, 견고함 이면의 연약함 등 이중적인 성질이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루브르의 장미’는 백금박을 칠한 캔버스에 검정 잉크로 그린 작품이다.
2016년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인 <검은 연꽃 Black Lotus>전은 상실과 부재의 슬픔을 치유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유리구슬 작업의 연장이었다. 길고 깊었던 아픔을 꽃피워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실제로 오토니엘의 유리 작품을 가까이서 살펴보면, 그 색과 반짝임이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아린 듯한 양가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흙탕물 속에서 꽃피운 연꽃과 같은 처연함이랄까.
작품 ‘아고라’에 앉아 있는 장-미셸 오토니엘.
이후 오토니엘의 꽃은 2019년 루브르에서 만개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유리 피라미드 건축 30주년을 기념해 가장 동시대적 예술가인 오토니엘을 초청한다. 그는 2년여 동안 약 5000점의 박물관 소장품을 자세히 분석했으며, 17세기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그린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대리 결혼식’작품에 주목했다. 오토니엘은 두 남녀의 발치에 떨어진 장미 한 송이를보고 큰 영감을 받아 ‘루브르의 장미 La Rose du Louvre’를 제작했으며, 6점의 회화 작품은 루브르 내 퓌제 안뜰 La Cour Puget에 전시되어 장 밥티스트 테오동의 조각상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이 전시는 프랑스 역사와 예술의 광영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푸른 강’ 작품의 부분
사실 현대미술에 보수적인 루브르가 이러한 기획을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한다. 심지어 전시 기간을 무기한 연장했으며, 오토니엘의 회화 연작을 영구 소장하기로 결정한 것. 지난했던 긴 여정을 지나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가 되어 루브르에게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오토니엘은 고통 속에서 예술을 딛고 일어나 그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한 살아 있는 증거 그 자체다. 꽃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예술의 비전을 공유하며 생각과 마음을 환기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작가가 지향하는 예술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가 꿈꾸는 환상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덕수궁 정원에서 펼쳐지는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 전시를 방문해보시길. 정원이 선사하는 서정적인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6월 16일부터 8월 7일까지.
‘RSI 매듭(2019)’
‘황금 연꽃(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