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벤템 아틀리에 Zaventem Ateliers
브뤼셀 옆에 있는 자벤템이라는 마을에는 벨기에 인테리어 디자이너 리오넬 자도 Lionel Jadot가 만든 6,000㎡ 규모의 자벤템 아틀리에가 있다. 과거 산업 황무지였던 이곳은 현재 컬렉터블 디자인 작품을 위한 창작과 실험을 하는 장소로 활용 중인데, 장식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모인 신진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이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아이디어 인큐베이터이자 길드 정신이 지배하는 비정형 디자인 허브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이런 특수성을 지닌 자벤템 아틀리에가 그 모습 그대로 파리로 진출했다. 지난 6월 밀란디자인위크 동안 도시 외곽의 공장 부지를 빌려 진행한 전시가 푸오리살로네의 전례 없는 멋진 전시로 주목받은 것에 탄력을 받아 파리까지 진출한 것.
자벤템 아틀리에 팽탕 전시 전경. ©AmberVanbossel
외곽에 위치한 도시 팽탕의 강철 튜브 공장을 선택해 12명의 디자이너 가구와 소품을 전시했다. 넓은 산업 황무지에 버려진 듯 연출한 전시 디자인은 누가 봐도 인상적이다. 특별한 에너지가 존재하고 거대한 공간과 그 속에 전시한 작품이 주고받는 아우라는 도심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경험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포스트 아포칼립스 환경에서 창조적인 르네상스의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 다소 이해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희망의 메시지와 문화 교류의 장으로 이정표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표가 읽혀졌다.
자벤템 아틀리에 팽탕 전시 전경. ©AmberVanbossel
WEB zaventemateliers.com
메이아트 Meillart
2020년에 론칭한 온라인 디자인 공예 마켓 플레이스 메이아트에서는 150명의 디자이너와 장인들이 제작한 2만 5000개의 실내장식 제품과 소품이 거래되고 있다. 높은 수준의 공예 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이 더욱 유쾌하고 풍요로워지길 바라는 것이 메이아트가 추구하는 비전이다. 이런 가치를 오프라인에서 소비자들한테 직접 전달하기 위해 처음으로 파리의 오스마니안 양식의 아파트를 빌려 여성 디자이너, 공예가 6명의 작업을 전시하는 쇼케이스를 열었다. 가구, 식기, 소품, 태피스트리, 페이퍼 아트, 조명을 만드는 작가들이 모여 실제 아파트를 채우니 완벽한 삶의 공간이 연출됐다.
검정색으로 산화한 양은으로 제작한 메종 아르망 종케르Maison Armand Jonckers의 스툴. ©AmberVanbossel
까르띠에 매장에서 사용하는 미드리아즈 Mydriaz의 아름다운 황동 조명 아래 이탈리아 세라믹 일러스트레이터 프란체스카 콜롬보 Francesca Colombo의 꽃과 새가 그려진 서정적인 식기와 마리안느 겔리 Marianne Guély 스튜디오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한 종이꽃으로 장식된 멋진 테이블 세팅은 모든 방문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리플렉션 코펜하겐의 화려한 크리스털 소품과 거실 중앙에 놓인 거대한 종이꽃 부케, 코르크로 제작한 모노 에디션 Mono Editions의 미니멀한 가구까지 6명의 각기 다른 소재와 제품을 다루는 여성 디자이너, 공예가들의 아름다운 조합을 통해 메이아트의 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WEB meillart.com
특별한 공간과 디자이너 컬렉션의 조우
수많은 쇼룸과 전시가 진행되는 가운데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멋진 컬렉션 외에도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특별한 장소를 섭외하는 것이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미션이 되어가고 있다.
앙토니 게레의 프래그먼트 컬렉션 : 메종 라 로슈
메종 라 로슈 내부에 자연스럽게 배치된 앙토니 게레×엠 에디시옹의 대리석 가구와 소품. ©Alexandre Tabaste
파리 16구에 위치한 메종 라 로슈 Maison La Roche는 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가 디자인한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르 코르뷔지에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예약을 통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외부 전시를 진행한 적 없는 이곳에서 이례적으로 파리디자인위크를 맞아 특별전을 준비했다. 디자이너 앙토니 게레 Anthony Guerrée가 엠 에디시옹 Méditions과 협업한 대리석 가구 컬렉션을 메종 라 로슈에서 선보인 것. 그리스 건축과 르 코르뷔지에라는 공통분모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된 작품은 천년 역사와 근대성의 기초를 모두 담고 있다.
메종 라 로슈 내부에 자연스럽게 배치된 앙토니 게레×엠 에디시옹의 대리석 가구와 소품. ©Alexandre Tabaste
디자이너 앙토니 게레. ©Alexandre Tabaste
더욱이 모든 작품은 대리석 유통회사 마브르리 드 라 센 Marbreries de la Seine에서 사용하고 남은 조각으로 제작되었는데, 호텔 크리용의 칼 라거펠트 룸 욕실에 사용된 대리석은 비누 트레이로, 파리 생로랑 매장에 사용된 블랙 대리석은 스툴로 변신했다. 그렇게 파편이라는 의미의 ‘프래그먼트 Fragments’가 컬렉션 이름으로 결정되었으며, 커피 테이블에서부터 필통, 콘솔, 플로어 조명에 이르기까지 기능적인 가구와 오브제로 구성되었다. ‘도릭 Dorik’, ‘로닉 Lonik’, ‘코린스 Corinth’의 라인은 세 가지 고대 건축 질서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특유의 원칙이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앙토니 게레는 르 코르뷔지에가 파르테논 신전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에 대해 언급하는 한편, 이번 컬렉션을 통해 위대한 건축가가 만든 공간과 자신의 작품이 아름답게 대화하는 모습과 천연자원의 합리적인 사용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WEB anthony-guerree.com meditions.com fondationlecorbusier.fr
알린 아스마 다만 : 페오 브와즈리
호텔 크리용의 리뉴얼과 칼 라거펠트와 함께 가구 컬렉션을 진행한 바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알린 아스마 다만 Aline Asmar d’Amman의 첫 번째 가구 컬렉션이 공개됐다. 3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거쳐 완벽한 라인업을 갖춘 컬렉션을 발표한 장소는 1875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몰딩 아틀리에 페오 브아즈리 Féau Boiseries다.
페오 브아즈리의 100년이 넘은 몰딩 작업과 알린 아스마 다만의 모던한 가구가 함께한 모습이 드라마틱하다. ©Jacques Pépion
알린 아스마 다만는 자신의 첫 컬렉션에 현대 여성성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표현했는데, 메인 제품이라 할 수 있는 핑크 모헤어 패브릭이 사용된 관능적인 둥근 모양의 ‘조지아’ 소파는 할리우드 글래머 정신을 불러일으키고, 블랙 메탈과 흰색 실크를 사용한 ‘스모킹’ 조명은 마치 검정색 수트를 입은 세련된 여성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장인과의 협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의 의지로 탄생한 드 고네의 꽃무늬 벽지 ‘크리스털 페탈’의 디테일은 놀랍기도 한데 벽지에 크리스털로 수를 놓은 부분은 절로 감탄이 나온다.
페오 브아즈리의 100년이 넘은 몰딩 작업과 알린 아스마 다만의 모던한 가구가 함께한 모습이 드라마틱하다. ©Jacques Pépion
알린 아스마 다만 컬렉션의 아이코닉 피스인 조지아 소파. ©Jacques Pépion
핸드 페이팅과 섬세한 자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오트 쿠튀르 벽지라는 감탄이 흘러나오며, 가장 위대한 여성인 어머니에 대한 찬가를 영원한 꽃이 만발한 장면으로 표현했다는 디자이너의 설명을 듣고 나면 벽지에 담긴 특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지난 3월 인비지블 컬렉션 전시와 마찬가지로 페오 브아즈리의 역사적인 컬렉션에 현대 가구 작품을 초대해 과거와 미래 간의 흥미로운 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알린 아스마 다만의 가구는 디자이너 가구 온라인 플랫폼인 인비지블 컬렉션을 통해 독점 판매한다.
WEB cultureinarchitecture.com theinvisiblecollection.com feauboiseries.com
유크로니아 : 마레 지구의 오래된 보석점
맥시멀리즘은 지향하는 유크로니아의 쇼룸. ©Uchronia
1990년대생 디자이너 줄리앙 세반 Julien Sebban이 이끄는 파리 디자인계의 악동 같은 존재 유크로니아 Uchronia.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재미있는 같은 형용사가 따라다니는 이들은 고전적인 디자인 회사에서 탈피해 다학제적인 집단으로 평가받길 원한다. 그런 이유로 이름도 존재하는 않는 시간을 의미하는 유크로니아다. 심상치 않은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선보이는 새로운 컬렉션 전시 제목은 ‘바다에서 도난당한 물건 Stolen Objects from the Sea’인데, 이를 선보이는 장소 또한 파리 마레 지구의 오래된 보석점으로 결코 평범하지 않다.
유크로니아의 디자이너 줄리앙 세반(위)과 골동품 수집가 앙투안 비요르(아래). © Uchronia
양쪽 벽면에 자리한 거대한 보석 진열장에는 골동품 수집가 친구인 앙투안 비요르 Antoine Billore가 수집한 수백 개의 세라믹 어패류 조각품으로 채웠고, 중앙에는 바다에서 영감을 받은 웨이브 컬렉션 가구가 놓여 있다. 둥근 파도,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고기, 산호의 눈부신 색, 해초들의 움직임 등이 작품에 표현됐다. 세라믹, 레진, 뜨개질 등 다양한 소재와 기술이 어우러져 엮어내는 화려한 색상의 제품을 보고 있노라면, 초현실주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불가사리 모양의 술이 달린 거울, 뜨개질로 제작한 해파리 설치물까지 악동들이 이끌어갈 흥미로운 하이엔드 디자이너 가구의 미래가 한껏 기대된다.
대리석과 레진으로 만든 테이블은 물결치는 바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Uchronia
WEB uchronia.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