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최고의 아트페어 아트 자카르타가 8월 26일에 열렸다. 아트 자카르타에서 발견한 인도네시아 미술 경향은 감탄을 자아냈고, 자카르타 대표 갤러리와 미술관은 꼭 한번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세계 최고 아트페어로 군림하고 있는 아트바젤이 바젤, 마이애미, 홍콩을 오가며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다(팬데믹 기간에는 아트페어의 열기가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올해부터 다시 뜨거워지는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 아트페어가 아트바젤과 나날이 닮아가는 현상이 이어졌다. 항상 등장하는 갤러리와 작가들이 각국 아트페어에 연이어 참여해 굳이 모든 아트페어를 관람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마저 나오고 있는 판국이다. 그런 점에서 아트 자카르타 Art Jakarta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트 자카르타는 아트바젤이나 프리즈 Frieze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 현대 미술에 집중한다.
아트 자카르타 전시장 곳곳의 대형 설치작품이 포토 스폿이 되었다. ISA 아트갤러리에서는 인도네시아 작가 좀펫 쿠스위다난토의 대형 작품을 아트페어 전시장 복도에 설치했다.
인도네시아는 부유한 상류층에서 대대로 컬렉션을 하는 전통이 있으며, 컬렉티브 루앙루파가 이번 카셀 도큐멘타15의 예술감독으로 선임될 만큼 아시아 미술의 강국이다. 중국 작가들이 세계 최대 인구수와 자원에 걸맞는 대륙의 스케일과 역사의 상흔을 담은 작품을 보여준다면, 인도네시아 작가는 중국 뺨치는 시원한 스케일에 아픔도 부드러운 예술로 승화시키는 인간미 넘치는 작품이 특징이다.
2019년 아트 자카르타를 방문했을 때 이미 개성 있는 구성에 감복했기 때문에, 솔직히 이번 페어는 기대하지 않았다. 팬데믹 기간에는 온라인으로 개최 되었으므로, 올해 페어가 2019년보다 특별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아트 자카르타는 더 강력해졌고, 더 스펙터클해졌다. 아트바젤 못지않은 스케일에 동남아시아의 매력적인 콘텐츠를 가득 채운 성공적인 페어였다. 아시아 최고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과 중국 넘버원 아트페어인 상하이 웨스트번드 아트&디자인이 부럽지 않은 행사였다. 올해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JCC)에서 개막했는데, 총 62개의 갤러리가 메인 섹션에 참여했다. 인도네시아 갤러리 39개, 아시아 갤러리 23개가 주인공이다.
말레이시아 아트미스 Artemis 갤러리에서는 인도네시아 작가 데디 수프리아디의 책으로 만든 대형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서구 메이저 갤러리가 하나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참신하다. 그래도 될 만큼 페어의 중심을 이루는 인도네시아 갤러리들의 작품성이 훌륭하다. 아트 자카르타 디렉터는 기업가 출신의 톰 탄디오 Tom Tandio다. 그는 미술에 매료되면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가업으로 이어받은 회사도 그만두고 2019년 아트 자카르타에 뛰어들었다. JCC 로비에는 나무로 긴 테이블로 설치하고, 인도네시아 인기 작가 에코 누그로흐의 작품 등을 곳곳에 배치했다. 동선도 흥미로운데, 기다란 입구를 통해 가벼운 전시를 보면서 들어갔다 메인 공간의 대형 전시와 마주하게 된다. 페어를 모두 보고 나오는 길에 신진 작가, 아트컴퍼니의 작은 부스를 지나며 마지막 쇼핑을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한 15개의 대형 설치작품은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러한 거대한 작품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작가의 대표작으로 아트페어의 특색을 과시하는 마스코트이자 포토 스폿으로 관람객의 관심을 모았다. 미술관, 기업과 같이 대형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수집가의 리스트 일순위에 오르기도 한다. 데디 수프리아디 Dedy Sufriadi는 수만 권의 책으로 만든 3m가 넘는 설치작품으로 모두의 시선을 압도한다. 인기가 높아서 사진 한 장 촬영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린다갤러리에서는 인도네시아 대표 작가 뇨만 누아르타가 구리와 동으로 만든 기차 모양의 5m 작품을 전시장 중앙에 설치했다.
바로 옆에는 뇨만 누아르타 Nyoman Nuarta가 구리와 동으로 만든 기차 모양의 5m 작품이 있는데, 건너편 린다갤러리 부스에서 뇨만 작가의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전시했던 좀펫 쿠스위다난토 Jompet Kuswidananto와 지난해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뮬야나 Mulyana의 대형 작품도 멋졌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갤러리가 총출동한 만큼 자카르타, 발리, 욕자카르타, 반둥 지역의 갤러리 작품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대체로 자카르타에는 컬렉터가 있고, 욕자카르타와 반둥에는 미술대학이 있어 작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카르타 대표 갤러리로는 로 갤러리 ROH, ISA 아트 갤러리, 스리사산티 갤러리, 나디 갤러리 등이 있는데, 이들은 자국 작가를 중심으로 부스에 작품을 설치해 호평을 받았다.
로 갤러리의 바거스 판데가 Bagus Pandega의 설치작품. 바로 뒤에 로의 전시 부스가 보인다.
VIP는 아트 자카르타뿐 아니라 자카르타 대표 갤러리와 미술관도 탐방했다. 로 갤러리는 최근 주택가 건물을 개조해 이전했는데, SNS 시대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티브 트로마마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마칸 뮤지엄 MACAN Museum에서는 인도네시아 작가 아구스 수와게의 개인전이 열렸다. 그는 1990년대 격동의 시대에서 영감을 받은 중견 작가로, 자화상을 통해 희망과 좌절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페어를 찾은 아시아의 VIP는 자카르타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를 투어하기도했다. 마칸 뮤지엄은 인도네시아 작가 아구스 수와게 Agus Suwage의 전시를 축하하며, 밤늦게까지 디제잉 파티를 열었다. 인도네시아인은 한국 사람 능가하는 엄청나게 흥이 있는 민족으로 어떤 행사, 어떤 장소에서도 밤새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일상이다. 아구스 수와게는 1990년대 격동의 시대에서 영감을 받은 중견 작가로, 자화상을 통해 희망과 좌절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주제는 무겁지만, 그의 얼굴로 나타나는 형태는 유머러스해 보이기도 한다. 신생 갤러리 루바나 갤러리, 아트 어젠다 갤러리, 디스트릭트 센니는 도보로 이동 가능한 같은 지역에 위치하니 한꺼번에 돌아보면 좋을 것이다. 루바나와 아트 어젠다는 같은 건물에 있다. 디스트릭트 센니는 쇼핑센터로 유명한 사리나 탐린 빌딩 6층에 위치한다. 루바나 갤러리는 인도네시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아트 어젠다는 근대미술에 집중하는 갤러리다. 아트 어젠다에서 선보인 미술가 포포 이스칸더 Popo Iskandar 작품은 우리나라 근대 추상과 공통점이 있어 더욱 시선을 사로잡았다. 디스트릭트 센니에서는 6개층을 모두 사용하며 인도네시아 근현대 미술가의 그룹 전시가 열렸다.
호주, 싱가포르 거점 갤러리 설리반 플러스 슈톰프 Sullivan + Strumpf는 인도네시아 작가 이판 헨드리안 Irfan Hendrian의 종이 작품으로 아트 자카르타에 참여했다.
VIP는 아트 자카르타뿐 아니라 자카르타 대표 갤러리와 미술관도 탐방했다. 로 갤러리는 최근 주택가 건물을 개조해 이전했는데, SNS 시대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티브 트로마마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프리즈 서울에도 참여한 로 갤러리는 주택가 건물을 개조해 얼마 전 이전했다. SNS 시대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티브 트로마마 Tromama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로 갤러리는 아트 자카르타에 항상 두 개의 부스로 출전한다. 로 ROH와 로 프로젝트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로 갤러리가 진중한 대표 작가의 작품으로 참여한다면, 로 프로젝트 프로젝트는 재기발랄해서 이것이 과연 팔릴 것인지 의문을 주는 작품을 선보인다. 로 프로젝트 프로젝트는 아트페어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갤러리인 것. 가자 갤러리는 싱가포르 거점 갤러리인데, 자카르타에도 2호점을 열어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에리잘 아스 Erizal As 가 파당 지역의 자연을 유화로 그리며, 섬나라 인도네시아의 광활함을 과시하고 있다. 더불어 에코 누그로흐, 해리 도노, 우지 하한 등의 작가들도 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인도네시아 미술 시장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어 아쉽다. 인도네시아의 활발한 현대미술 신에 탄복한 백아트 갤러리가 오는 11월 자카르타에 세 번째 갤러리를 개관할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백아트 갤러리의 수잔 백 대표는 2019년 아트 자카르타에 참여한 바 있다. 자동차와 예술을 접목시킨 전시를 보여주는 현대모터스튜디오 역시 얼마 전 일곱 번째 공간을 자카르타에 열어, 문화 확대를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아트 자카르타의 성공을 보니 우리나라의 대표 아트페어 KIAF와 아트부산에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은 넓고 미술가는 많다. 제3세계의 미술에도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